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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그럼에도, 다시 시작해볼까요 - 연극 '플리백'

같은 자리에서 다시 마주하는 시선

by 유지현 에디터
2026.08.08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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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내용은

연극 '플리백'에 대한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플리백(Fleabag)'이라는 단어는 영어권에서 오래전부터 '지저분한 사람', '누추한 곳'을 뜻하는 표현으로 쓰여왔다고 한다. 2013년 에든버러 프린지에서 시작해 에미상과 골든글로브를 휩쓸고, 10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 무대에 오르기까지 이 작품을 따라다닌 화려한 수식어들을 생각하면, 제목이 품고 있는 이 초라함은 어딘가 어긋난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극장을 나서고 나면, 이 어긋남이야말로 작품의 정직한 자기소개였다는 걸 알게 된다. 플리백은 정말로 엉망이다. 다만 그 엉망을 대하는 태도가, 이 작품을 다른 자리에 세워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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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플리백은 성적인 관계를 맺을 때만 자신이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극을 보고 나면, 그게 단순한 자존감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우정이나 사랑이라는 감정은 본래 실체가 없다. 상대가 나를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 확인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반면 몸으로 이어지는 관계는 즉각적이고 감각적인 반응으로 상대방이 자신을 원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따라서 플리백이 반복해서 무너지는 관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은, 도덕적 결함이라기보다 증명할 수 있는 감각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의 논리적 귀결에 가까워 보인다.


그 논리가 가장 잔인하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지점이 친구인 '부'와의 관계다. 극 전반에 걸쳐 플리백은 이미 세상을 떠난 친구 부의 이야기를 하고, 계속해서 그를 그리워한다. 한편, 결말부에 밝혀지는 진실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플리백은 부의 남자친구와 관계를 맺었고, 그 일은 부의 죽음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도 부에 대한 언급이 극 내내 이어진다는 건, 그가 플리백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우정이라는, 증명할 수 없는 관계의 소중함보다 지금 당장의 감각적 확인을 택해버린 대가로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은 것이다. 그렇게 플리백은 더 깊은 수렁으로 걸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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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극의 시작과 끝을 감싸는 건 면접이라는 장치다. 극은 면접 자리에서 갈등을 일으킨 플리백이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며 시작되고, 다시 그 면접관 앞에서 새로운 시작의 기회를 갖게 되는 것으로 끝난다. 면접이라는 상황 자체가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자리라는 걸 생각하면, 이 구조는 단순한 수미상관이 아니다. 처음엔 자신을 방어하려다 실패했던 플리백이, 이야기를 다 통과하고 나서 같은 시험대에 다시 서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다만 이번엔 숨기려 했던 것들을 이미 스스로 마주한 채로.


이 구조를 무대 위에서 물리적으로 구현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배우가 서 있을 때, 무대 뒤편 스크린에는 배우의 얼굴이 크게 비친다. 연극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클로즈업이, 유독 면접 시퀀스에서 도드라진다.


인간은 결국 상대방이 만든 프레임을 통해 읽힐 수밖에 없고, 그 프레임은 한 사람의 전체가 아니라 부분일 뿐이다. 그래서 극 초반, 스크린 속 플리백의 얼굴은 유난히 불안정하게 흔들린다. 그러다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순간 스크린은 꺼지고, 배우는 의자 하나만 놓인 텅 빈 무대를 자유롭게 걸어 다니며 고백을 이어간다. 화려한 장치 없이 조명과 몸짓만으로 모든 풍경이 제한 없이 구현되고, 관객들은 그의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빨려들어간다.


그리고 결말에 가까워지면서 스크린은 다시 켜진다. 마지막의 면접이라는 프레임도, 클로즈업이라는 장치도 처음과 똑같다. 그러나 관객은 이제 그 얼굴 뒤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다. 같은 프레임인데 완전히 다르게 읽히는 것이다. 그의 얘기를 들으며 자신을 돌아보았던 면접관과 마찬가지로, 프레임 자체는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 안을 보는 관객의 시선도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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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히어라 배우는 원작 특유의 스탠드업 코미디 화법에 충실했다. 관객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걸고, 자신의 치부를 '별거 아니라는 듯' 가볍게 던지며 웃음을 유도한다. 처음엔 이거 웃어도 되나 싶던 관객들도, 그의 태도에 웃음을 터뜨리게 된다. 이 의도된 가벼움은 플리백이라는 인물의 방어기제와 정확히 겹친다. 고통을 농담으로 포장해서 던지는 사람.


그래서 마지막, 그 방어기제가 무너지고 감정이 터지는 순간은 단순한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오랫동안 유지해 온 가면이 마침내 벗겨지는 순간처럼 느껴졌다. 웃기다가 무너뜨리는 이 낙차를 관객이 눈치채지 못하게 끌고 가는 것, 그게 이 배우가 해낸 가장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극의 마지막, 단골손님 조가 다시 카페를 찾아온다. 플리백은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그 역시 몸을 원하는 게 아니냐며 몰아붙이지만, 조는 그저 그가 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성적인 확인 없이도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을 아주 작은 방식으로 증명받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 작은 순간이, 다시 세상과 마주할 용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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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은 바뀌지 않는다. 우리는 살면서 몇 번이고 같은 자리, 같은 질문 앞에 다시 서게 될 것이다. 다만 그 안에 선 우리가, 그리고 우리를 보는 사람의 시선이 달라질 수 있다면, 그 프레임은 더 이상 처음과 같은 무게로 우리를 가두지 못할 것이다. 플리백이 면접관의 시선을 다시 마주했듯, 우리가 두려워하지만 그럼에도 마주해야 할 프레임은 무엇일지, 그 답을 연강홀에서 함께 고민해 보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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