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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소설 작가인 '마키오'는 어느 날 절연하다시피 한 언니의 사고 소식을 듣게 되고, 그 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조카 '아사'와 함께 살게 된다.

 

악의와 무례함으로 가득한 어른들 사이에서 아사를 데려오기로 결심한 마키오지만,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이 언제나 지독하게 어려웠던 그에게 아사와의 동거 생활은 시작부터 쉽지가 않다.

 

아사 역시 지금까지 봐 온 일반적인 어른들과는 다른 이모의 모습이 신기한 한편, 단숨에 바뀌어 버린 자신의 환경에 혼란을 느낀다.

 

중학교 졸업을 앞둔 천진한 소녀 '아사'와 일생 고독과 함께한 '마키오'가 한집에 살며 마주하게 되는 일상, 그리고 삶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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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구성이 있다면 질문과 대답일 것이다. 아사는 묻고, 마키오는 대답한다. 아사는 이모가 하는 말은 다 너무 어렵다고 말하고, 마키오는 스스로 생각하라고 이야기한다.


아사는 끊임없이 궁금해하고, 묻고, 정답을 갈구한다. 작게는 소설가인 마키오가 쓰는 어려운 단어의 의미에서부터,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지, 엄마와 아빠는 정말로 나를 사랑했는지, 나는 이제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등 보다 깊은 질문에 이르기까지, 부모님의 죽음 이후 아사의 삶은 질문투성이다.

 

 

"그녀(마키오)는 나를 아직 무리에 넣어주지 않았다. 내 무리는 이제 없는데."

 

 

이와 같은 행태는 아사가 느끼는 외로움에 기인하고 있다. 아사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자신이 딛고 서 있는 바닥이, 자신의 발밑이 흔들리고 무너지고 있다고 느낀다.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얘기하며 방향을 제시해 주고, 어리석은 짓을 하면 꾸짖어 주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아사는 계속해서 불안해하고 이제 엄마는 줄 수 없는 정답을 찾아 줄 사람을 찾아 헤맨다.


하지만 마키오는 절대로 정답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아사를 존중하기 때문에 더욱 아사가 자유롭게 고민하고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주고자 한다. 하지만 아사는 더욱 혼란스러울 뿐이다.

 

 

"나는 절대적으로 옳은 진실을 원했는데, 그녀는 결코 그런 것을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왜 내가 듣고 싶은 거짓말이 뭔지 알면서 설령 임시방편에 불과할지라도 절대 해주지 않는 걸까. 어째서?"


 

작품을 계속 따라가다 보면, 실상 아사가 원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옳은 정답보다는 마음을 편하게 해줄 수 있는 거짓말이었음을 알게 된다.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 놓여 버린 것이 무섭다.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선택의 책임도 나에게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알게 되는 것 역시 힘든 일이다.


내가 느낄 일 없었던 나의 바닥, 그 바닥을 지탱해 줄 수 있는 버팀목의 부재, 그것이 아사에게 안겨준 것은 한없는 두려움이다.


게다가 아직 어린 아사는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조차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다. 감정을 느끼는 것은 무언(無言)으로 지나가지만,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언어가 필요하다. 사용하는 언어가 풍부할수록 내가 느끼는 감정을 더 잘 설명할 수 있고, 나 자신에게도 그 감정의 이유와 양상을 납득시킬 수 있다. 그런 만큼 나조차 나를 이해할 수 없게 만드는 언어의 한계는 아사를 더욱 고민하게 한다.

 

 

"만약 언어를 그녀(마키오)처럼 예리하게 만들 수 있다면,

'외롭다'와 '열받는다' 이외의 어떤 말이 내 마음을 꾸밀 수 있을까."

 

 

그렇기에 아사는 끝없이 고민하고, 외로워하고, 때로는 분노한다. 물론 작중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며 아사 역시 성장하고 자신을 만들어 나가지만, 그렇다고 작위적인 해피 엔딩을 맞듯이 그래서 모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라는 식으로 아사의 고민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렇게 되기에 3년은 다소 짧다) 가끔은 아사 자체가 답답하고 짜증 날 정도로.


그럼에도 자신 안의 두려움과 분노를 마주하고 도망치지 않는 아사의 모습은 아름답다. 아사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질문을 통해 자신을 형성하고, 방향을 찾아나간다. 그 과정에서 물론 많은 방황을 하지만 수없이 오갔던 문답은 결과적으로 아사를 나아가게 한다.


아사가 겪은 상실의 슬픔은 보편적이지 않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아사의 고민과 두려움은 보편적이다. 가야 할 길도, 할 수 있는 일도 모르겠는데 나 스스로를 책임져야 하는 것은 나뿐임을 실감하는 순간을 겪는 것이 과연 드물까. 나 역시도 살아가면서 몇 번씩이나 그 순간을 마주치지 않았던가.


마키오가 아사에게 정답을 주지 않았듯, 작품에서도 마지막까지 정답이라 할 만한 것을 지시하지 않는다. 그저 고민하면서도 나아가는 아사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위로를 줄 수 있다는 것이 이 작품이 갖는 수많은 가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아사가 사랑스러운 이유이기도 하다.



* 2편(마키오의 이야기)에서 위국일기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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