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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나의 교향악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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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파가니니려나 싶었는데, 띵동. 시벨리우스가 먼저 찾아왔다. 티켓이 두 장 생긴 덕에 누구와 함께 보면 좋을까 싶었고, 오래 고민할 것도 없이 아는 분께 슬며시 연락을 드렸다.


클래식을 사랑하게 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 첫 시작은 유튜브였다. 그래서 공연을 본격적으로 다니기 시작한 뒤로는 꽤 오랫동안 거의 혼자 다녔다. 그렇게 다닌 지도 벌써 몇 년. 글을 쓰기 시작한 뒤로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인사하게 된 지인분들도 몇 분 생겼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같이 공연을 보자, 하고 약속만 했었는데 클래식을 통해 친구가 된 분과 첫 관람을 교향악축제로 함께할 수 있어 기뻤다. 더군다나 4월 3일, 부산시향과 홍석원 지휘자의 공연이었다. 이 밤의 브람스는 정말, 쉽게 흘려보낼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선물처럼 찾아온 공연이었다. 포장지를 열어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값진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어떻게 그냥 흘려보낼 수 있을까. 어찌 글을 쓰지 않을 수 있을까!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 Op.47 (협연: 요한 달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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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악장


바이올린의 첫 번째 소리가 어땠더라. 생각보다 온도가 있었다. 현악의 뒷바람이 싸늘하게 느껴질 정도였으니, 예상보다 훨씬 다정한 시작이었다. 포스터 이미지에서 먼저 떠올렸던 냉랭함보다는, 훨씬 부드럽고 정돈된 첫인사였다.


어, 생각보다 매정하지 않네? 나의 모든 예상이 빗겨 나가기 시작한 도입부였다. 


몸집을 키우기보다, 감정에 휩쓸리기보다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자리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나아간다. 내가 시벨리우스라는 이름 앞에서 으레 떠올리던 눈보라나 추위 대신, 그날 눈앞에 있던 것은 생각보다 온기가 있는 봄바람이었다.

 

협연자가 감정을 쏟아내기보다 담백하게 노래하니, 오케스트라도 그 온도에 맞춰 조용히 그 주위를 둘러싼다.

 

욕심 없는 정직함으로 올바른 길을 걷는다. 그러니 바이올린이 바닥에 소리를 내리꽂은 뒤 나타난 오케스트라가 한순간에 들이닥칠 때의 웅장함이 더 크게 다가왔다.


처음에는 부산시향도 오늘의 협연자처럼 성량도, 가는 길도 얌전한 편인가 싶었는데 전혀. 오히려 그를 위해 얼마든지 산처럼 커질 수 있음에도 아무 일 없는 척하고 있는 것이었다.


협연자가 눈을 감고 있으면 소리도 눈을 감고 있었고, 오케스트라가 기세를 보일 때는 협연자도 그에 맞는 확신으로 도장을 찍어낸다. 오케스트라가 마이크를 이렇게까지 캐릭터적으로 잘 넘겨받는다고? 그동안 협연자에게만 시선을 뚫어져라 두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바라볼 곳을 잃었다.


그날의 협연자는 딱 나르치스만 같았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라는 책을 본 적 있으신가? 이성과 지성을 상징하는 수도사가 거기 있었다.


방탕과 부도덕함과는 거리가 멀고, 지적이며 금욕적이다. 일부러 절제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선량한 사람이 품어내는 겨울이다. 이러니 얼음이 녹지 않을 수 있겠는가?


대각선으로 쏟아져 내려오는 전율 위에는 매화가 있었다. 시원하고 조금 따뜻한 바람도 있었다. 그때 알았다. 아, 봄이 왔구나.


2악장

 

이렇게 독백자 같은 협연자임을, 그러니까 나르치스임을 눈치챘으니 기대하지 않을 수 없는 2악장이었다. 흥미로운 건 나아가는 길이 조용한데 초연하지도 않고, 놀라울 정도로 욕심도 하나 없다는 점이었다.


길게 끌지 않고, 그렇다고 서두르지도 않는 호흡이 이상하리만치 단단했다. 한 음 한 음이 제 자리를 알고 있는 사람처럼 나아가니, 그 차분함이 오히려 더 오래 남았다.


오케스트라의 품 안에 가만히 서 있는 바이올린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추측했다. 함께 노래하는 마음 안에 누가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처럼 나아갈 수 있을까?


차분히, 정말 차분히 하나하나 헤쳐 나갈 수 있을까. 나도 그럴 수 있었으면. 휩쓸리지 않으면서도 차갑지 않은 사람. 늘 저만큼 담대한 사람이 될 수 있으면.

  

3악장

 

으르렁거리며 뒷받침해 주는 오케스트라의 첫 서두에 다음 곡이 일찍이 기대되었다. 협연자의 사방에 제 편에게만 의리 있는 맹수처럼 둘러싸고 있으니, 퍼포먼스적으로 강렬한 인상이 없어도 눈에 띄었다.


흔들림 없는 협연자 곁에서 부산시향은 훨씬 더 선명한 색으로 움직였다. 바이올린이 연분홍의 바람을 불러오면, 오케스트라는 초록과 바다가 되어 그 곁을 받쳐 주었다.

 

콩쿠르에서 처음 만났던 시벨리우스는 경쟁과 긴장감, 핏기 없는 창백함이 완연했는데, 교향악축제에서의 모습은 확연히 달랐다. 체온이 있었다.

 

아, 이 곡의 끝에 와서야 알았다. 내가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요한 달레네였다.

 

 

앙코르 - 이자이,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5번 2악장 'Danse Rusti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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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는 이자이 바이올린 소나타 5번이었다. 듣자마자 알았냐고? 알았다! 다만 “어, 이자이다! (근데 몇 번이지)” 하고 있었을 뿐이다.


바이올린 협연 공연을 보면 이렇게 짧은 틈으로 이자이의 곡을 연주해 줘서 참 좋다. 명동성당에서 전곡 연주로 한 번 친해지고 나니, 이렇게 인사할 때마다 반갑다. 구면이지 않은가!


오늘의 연주자에게 느낀 여러 형용사들이 정말 그의 색인지 되새겨볼 수도 있다. 이렇게 정해진 영역 안에서 관객에게 젠틀하게 인사할 수 있구나. 가지런한 춤사위로 독무를 펼칠 수 있구나.


피치카토가 저렇게 직선을 따라 똑똑똑 떨어질 수 있구나! 봄내음 가득한 시벨리우스에 연녹빛의 이자이까지. 아는 이의 몰랐던 표정을 볼 수 있어 기뻤다.

 

 

 

브람스, 피아노 4중주 제1번 g단조 Op.25 (관현악 편곡: 아놀드 쇤베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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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악장


나는 가만히 수직으로 서 있었는데, 무대 위에서는 금빛의 물보라가 먼저 가로로 일었다. 그러니까 오케스트라가 지나치게 합이 잘 맞으면 악기의 이름을 잃어버리고 하나의 웅덩이가 되어버리는데, 시작부터 그게 몇 개나 있었다.


봄에 만나는 가을의 무게감. 젊은 날에 만나는 훗날의 정경. 상념과 즐거움이 마구 섞여든다.


평범한 네 곁으로 비장한 움직임이 이곳에 다다른다. 그 생경함이 포근함이라 묘사하기엔 커다랗고, 가볍다고 말하기엔 밀도 있게 다가온다.


새파란 하늘을 더해 볼까, 춤추는 파도를 따라가 볼까.


힘은 어떤가. 크게 한 방을 노린다기보다는 진득하게, 무게감을 잃지 않는다. 사실 어떻게 바다를 가볍게 여길 수 있을까?


가까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자주 만날 수 없는 브람스가 이렇게 찾아와 줌에 반가우면서도, 이렇게 멋진 사람이었어? 하며 얼떨떨한 기분도 든다. 늘 내 세상만 눈앞에 두고 산 탓이겠다.


한 번씩 새초롬한 소리를 내는 타악기가 아주 작은 조명이 되어줄 때의 그 잠깐의 싱그러움이 반가웠다. 현악기가 오른손을 살짝 위로 들어 올리면, 관악기가 슬그머니 담요 속에서 빠져나와 대답한다.

 

가만히 구경하기에 편했다. 눈앞에 놓인 소리의 형상이 제법 웅장한데도, 막 뒤로 물러날 정도로 부담스럽지는 않아서 눈 한 번 깜빡일 필요 없이 브람스를 충만하게 들이킬 수 있었다.


테마파크에 와서 누가 복잡한 생각을 하겠는가? 그냥 속으로 생각한다. “음, 이거지. 이 느낌이야…”


2악장

 

전초전 같기도 하고, 새침한 표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옆태 같기도 했다. 2악장을 다음 일의 예고편처럼 생각하기엔 조금 미안하지만, 이 악장에는 분명 무슨 일이 크게 일어나기 직전의, 되레 아무 일도 없는 듯한 일상성이 있었다.


이를테면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사물들이 차례로 자기소개를 하는 장면 같았다. 가스불 위의 물이 보글보글 끓어오르고, 냄비 뚜껑이 위아래로 들락날락. 커튼이 살짝 열린 창문 틈에서 바람에 소리 없이 펄럭이고, 위잉거리며 사람 손에 몸을 기댄 채 먼지를 빨아들이는 청소기 같은 것들.


평소엔 보이지 않던 먼지가 눈에 들어오는 걸 보니 모든 게 오전의 일이었다. 콧노래까지 들려오는 걸 보면, 오랜만에 여유 있는 아침에 절로 신이 난 사람이 지휘자의 손끝을 타고 있었나 보다.


앞선 악장의 무게와 뒤이어 올 폭발 사이에 이런 생활의 장면이 놓여 있으니 오히려 더 좋았다. 거대한 작품 한가운데에 잠깐 사람의 집 안이 들어와 있는 것 같아서.


3악장


시작에 상상이 접혔다.


오늘 공연을 보기 전에 함께 공연을 관람한 동행이 이 악장을 가장 기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꽤 들을 만하겠는데’ 하는 어렴풋한 기대만 가지고 있었는데, 지휘자를 따라오는 집합의 소리에 저도 모르게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런 말은 없었잖아요.”


관현악이 지휘자의 손끝을 타고 날개를 달아, 관객의 옆자리에 대가 없이 찾아든다. 그때의 생각을 떠올리기만 해도 목이 메이고, 상상만 해도 심장 언저리가 지끈해지는 ‘추억’이 나무의 목소리를 타고 내 앞에 나타난다.


이런 것까지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지휘자의 손끝에 시선을 둘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기 몇 초 전, 지휘자를 보면 알 수 있었다. 소리가 모여들겠구나. 작게 속삭이겠구나. 이만큼 거대해지겠구나.


특히 잊을 수 없는 것은, 다감한 미소의 관악기가 오른쪽으로 소리를 이끌어낼 때였다. 관현악이 지휘자를 중심으로 하늘을 도화지 삼아 붓이 되었을 때, 그 채워지는 수채화를 바라보는 심정을 저들이 알까.


물을 조금 더 많이 묻히고, 물감이 조금 연해진 바람이 되돌아올 적에는, 오랜만에 눈이 따끔따끔했다. 마음이 따꼼따꼼했다.


음악을 늘 마음 안에만 담아둘 수 없게 되면서, 문득 잊고 있던 나를 떠올렸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쓰고 싶어서가 아니라, 자꾸만 안에서 퍼올려졌기 때문이었다. 넘쳐났기 때문이었다.


4악장


이때쯤엔 무대 전면에 드리워진 황금빛에 눈이 부셔서 혼났다. 그러니까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들이 온갖 관악기와 함께 단원들의 움직임에 따라 재빠른 속도감으로 기교와 소리를 쏟아내는데, 지휘자의 신호를 정확히 따라가면서도 살아 있기를 멈추지를 않는다.


지휘봉을 든 자의 손끝이 모아지면 브레이크를 밟는 것처럼 부드럽게 일시정지한다. 그리고 놀라운 건, 지휘자가 점프하면 소리가 같이 점프한다는 것이다.


아래에서 펄쩍 뛰었다가 위에서 소리를 내고, 그 끝에 가벼워지는 건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인가. 말로만 쿵짝쿵짝 하는 게 아니라, 정말 관객 앞으로 쿵 하고 다가왔다가 뒤로 물러나며 짝, 하고 정리된다.


절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수준의 무대가 상영되면 나도 모르게 내 앞쪽의 관객들에게 시선이 간다. 모두가 고개를 내밀고 몸이 굳어 있었다.


관악기가 흥을 끌어올리고, 때로는 사람이 어디 있었냐는 듯 한순간에 돌풍이 일었다. 이 단합은 도대체 무엇일까. 헛웃음이 났다. 부산시향, 진짜 무섭다.


중반부터는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 지휘자를 보자니 사방이 번쩍였고, 그 와중에 몇몇 악기들은 실내악처럼 서로를 주고받고 있었다.


도대체 이 모든 움직임의 중심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브람스인가? 쇤베르크인가? 부산시향인가? 아니면 홍석원 지휘자인가?

 

정말 맹렬했다. 사납고, 거침이 없고, 살아 있었다.


무대의 모두가 기지개를 편 순간, 아니 그보다 조금 더 빨리 관객석에서 ‘으아악’ 소리가 났다. 이 이상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앙코르 - 브람스, 헝가리 무곡 1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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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곡은 4악장의 에필로그처럼 느껴졌고, 앞선 충격에 어안이 벙벙해진 채 평화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그들을 째려보게 만들었다.


더 잘할 필요 없다구욧! 도장 찍기 바빴다. 저 사람들, 아직 지치려면 멀었고 그들의 항해는 아직도 한참 멀었다. 무엇보다 나, 최애 지휘자 생긴 것 같다. (큰일이다) 

 

 

 

공연이 끝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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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공연의 성공 여부는 다 필요 없다. 혼자 간 공연이든 함께 간 공연이든, 누구든 외롭지 않게 만들고 밤 10시에 시원한 안약 하나를 넣은 듯 눈을 개운하게 만들어준다. 동행과 나는 손을 사이좋게 붙잡고 나와 거의 발을 방방 뛰며 예술의전당을 빠져나왔다. 나눈 대화도 아주 교양적이었다.


“브람스 3악장 이렇게까지 좋을 거라고는 말 안 했잖아욧!”

“음원으로 들었을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어욧!”

“4악장 무슨 일이에욧!”

“그러니까요, 내일 또 올 거에욧!”


잔뜩 신이 났고, 마음껏 행복했고, 이래서 좋아했지 싶었다. 이만한 파도가 악보보다 먼저 도착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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