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만 가지 발차기를 한 번씩 연습하는 사람보다 한 가지 발차기를 만 번 연습하는 사람이 두렵다.” 무술가이자 액션 배우 이소룡이 남긴 유명한 명언이다.
이는 문화예술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자극적 요소와 다양한 변형이 넘쳐나는 요즘, 한 작품을 수만 번 다듬어 만들어진 무대는 그 자체로 깊은 울림을 준다.
2004년 초연 이후 꾸준히 재공연된 연극 <짬뽕>이 그 주인공이다.
잘하는 법을 너무 잘 아는 연극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전개의 속도감이었다.
수많은 재공연을 거친 작품답게 장면에서 장면으로 넘어가는 타이밍에 군더더기가 없다.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은 과감히 생략하고 필요한 순간에 정확히 힘을 준다. 이 호쾌한 전개는 높은 몰입감으로 이어진다.
노련함은 극 내용에만 있지 않다. 공연 시작 전, 작중 인물이 관객을 무대 위로 불러들여 짜장면과 짬뽕을 함께 먹는 장면을 연출한다. 이 짧은 순간이 공연 전체 공기를 바꿔놓았음을 느꼈다.
관객과 배우, 관객과 관객 사이에 유대감이 쌓이고 객석 분위기가 풀어진 채로 극이 시작된다. 개그 신이 많은 작품인 만큼 이 분위기가 중요하게 작동한다. 작품만큼이나 극장에서 함께 웃고 울었던 경험 자체가 소중하게 다가왔다.
연기 역시 마찬가지이다. <짬뽕>의 코미디는 몸을 사리지 않는다. 배우들은 정확한 타이밍에 적절한 톤과 액션으로 ‘여기 웃긴 장면입니다’라고 관객에게 친절하게 말을 건넨다.
사실 이런 전통적 개그 방식은 자칫 촌스럽게 느껴지지 쉽다. 하지만 <짬뽕>의 개그는 관객과 소통하는 법의 아는 개그였다. 웃겨야 할 순간을 정확히 알고 그 순간을 정직하게 밀어붙이는 것.
웃기지 않은 장면에서 웃음을 강요당하는 듯한 순간을 자주 겪어온 터라, <짬뽕>이 보여준 정직함은 관객에 대한 배려처럼 느껴졌다.
소시민의 삶으로 돌아본 5월
<짬뽕>은 한 중국집 배달원 개인이 겪는 사건에서 출발해, 1980년 5월 광주라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으로 서서히 확장되어 간다.
극 중 인물들은 눈앞의 사건에 조금씩 다른 입장을 가진다. 누군가는 두려워하고, 누군가는 분노하고, 누군가는 애써 외면한다. 그런데도 서로 다른 입장들이 모두 이해가 된다.
이런 입체적이고 다양한 캐릭터 설정은 개연성을 낳고, 이는 몰입으로 이어진다. 소시민들의 서사로 5.18을 되짚는 만큼 관객들이 인물들에게 애정을 갖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짬뽕>은 이 과제를 정확히 해낸다.
<짬뽕>은 형식만 놓고 보면 전형적인 연극이다. 차돌 짬뽕도, 마라 짬뽕도 아닌, 그냥 짬뽕. 그런데 그 평범한 한 그릇을 이렇게까지 맛있게, 이렇게까지 재밌게 뽑아내면 관객은 별수 없이 좋아하게 된다.
<짬뽕>은 러닝타임 내내 독특한 재료 없이도 충분히 강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다.
정통의 힘이라는 것을 오랜만에 온몸으로 느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