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바번 항목은 거짓입니다. …… 여러분의 주인을 만나보십시오그분은진정한보리심이자인의로써자신의고토를더럽힌여러분바저감싸ㅇㅣ아야ㅗㅠ방,ㅡ,한국사 이상현상 연구원, p. 131
공포의 근원은 익숙함의 해체와 관련이 있다. 러브크래프트가 ‘가장 강력한 공포는 미지에 대한 공포’라고 주장할 만큼 우리는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두려워한다. 이런 와중 나폴리탄 괴담의 하위분류로 웹상에서 처음 등장한 ‘규칙 괴담’은 그런 공포를 조금은 덜어주면서도, 동시에 어떤 면에서는 더 심어주기도 하는 재미있는 콘텐츠다.
어떤 상황에서는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고 명확히 정해주다가도, 또 다른 어떤 상황에서는 죽는 것밖에 답이 없다고 단정 짓기도 한다. 혹시라도 규칙끼리 하고 있는 주장이 부딪힌다면 어떤 말을 믿고 따라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규칙서를 믿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괴담이 《한국사 이상현상 연구원》에서는 국내 사적지에 대한 ‘탐사 지침서’의 형태로 등장한다. 이름처럼 사적지 곳곳에서 발생하는 이상현상을 연구하고 고립된 실종자들을 구출하는 이 기관은, 각 장소를 탐사하며 탐사 지침서를 작성하고 확보해 두었다.

독자는 이상현장 탐사 지침서를 읽으며 세계관에 몰입을 시작하게 된다. 지침서 곳곳에 각자 다른 색과 글씨로 쓰여있는 등장인물들의 낙서는 읽는 재미뿐만 아니라 인물들에 대한 ‘정’ 역시 불러일으키는 바 있다.
총 6개의 지침서 파트가 《한국사 이상현상 연구원》의 시작부터 끝까지 큰 틀을 잡아준다. 그리고 각 파트 사이에는 기존 소설 형식부터 녹취록, 탐사 일지, 보고서, 안내문, 채팅방 기록까지 다양한 연출을 통해 분위기와 몰입감을 조성한다.
‘해당 시대 공법에 맞추어 특수 제작한 종이로 작성되었다’라는 설정에 맞추어 탐사 지침서는 한지 재질 문양으로 프린트가 되어 있다. 많이 살펴본 탓인지 여기저기 커피 자국도 남아 있다. 첨부되어 있는 탐사 기록은 종이를 잘라 붙인 듯하며, 추가 사항도 포스트잇으로 붙어 있다. 자세히 보면 각 페이지 상단에 스테이플러 자국까지 보인다. 이 모든 것이 꼼꼼하게 편집되어 책 속 소설 한 장이 아닌 실제 문서를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배경이 역사 속이라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한국사 이상현상 연구원’의 탐사 요원은 기본적으로 한국사를 전공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상 현장에 등장하는 ‘이상 개체’들은 저마다의 별명으로 불리나 역사에 존재했던 인물들인데, 작중 명확하게 나온 한 예로 B-K-3-02 ‘상사불’이 있다.
라. 그것의 비통함이 적절히 고조되었을 때 “왕비님의 옥안을 보여드릴 수 있다”라고 말한 뒤, 상단의 ‘주의 사항’ 2-다번 내용대로 노국대장공주 영정을 꺼내 보이십시오. 그것은 영정 속 얼굴을 확인하고 통곡하며 귀하에게 감사를 표할 것입니다. 이때 실종자 구출 및 탈출을 부탁하십시오.한국사 이상현상 연구원, p. 126
‘노국대장공주’라는 이름을 들으면 함께 떠오르는 것이 고려 제31대 공민왕이다. 정략결혼이었지만 좋았던 금슬과 아내의 요절 이후 평생을 그리워했다는 사랑 이야기. 맥락상 ‘상사불’이 바로 그 공민왕으로 보인다. 이처럼 한국사 고증에 공을 들인 것은 최인서 작가의 전공 역시 사학과였기 때문이다.
독자는 보통 창작물의 배경으로 많이 사용되는 조선시대를 포함해, 고려시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탐사 일지와 녹취록을 통해 탐사 과정을 함께한다. 별명으로 불리는 이상 개체들이 어떤 인물일지 추측하는 재미도 있다. 그뿐 아니라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이 현상을 헤쳐나갈지 궁금해하는 것은 책장을 넘기는 것을 멈출 수 없게 만든다.
‘한국사’라는 다루기 쉽지 않은 주제를 공포와 연관 지은 것도 흥미로운데, 책이 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는 무척이나 현실적이라 더 와닿는다. 역사 속의 비극, 비극 속의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이 가진 한. 몰입해서 읽다 보면 책을 덮은 후 깊은 여운이 남을 것이다.
한국사 이상현상 연구원
다이브. 최인서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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