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수아즈 사강(Françoise Sagan)은 1935년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프랑수아즈 쿠아레(Françoise Quoirez)로, ‘사강’이라는 필명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그녀가 스물넷이던 1959년에 출간되었다. 첫 소설인 『슬픔이여 안녕』이 전 해에 이미 영화화가 되었을 만큼 젊고 유망한 작가였던 사강은, 마음 깊숙한 곳을 매혹적으로 비추는 소설을 쓰는 데에 특기가 있었다.
본 작품은 실내 장식가 폴을 중심으로, 약 6년간 그녀와 연애해 왔던 연상의 사업가 로제, 그리고 새롭게 폴을 좋아하게 되는 변호사 시몽의 관계를 섬세한 심리 묘사와 함께 전개한다. 사강의 문장은 너무 길지 않은 호흡으로 쉽게 읽힌다. 그러나 문장들은 차곡차곡 쌓이면서 인물의 내면을 예리하게 드러낸다. 담담한 듯 보이지만, 한 줄 한 줄이 독자의 마음을 파고든다.
그녀는 좀 더 울고 싶기도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싶기도 했다. 익숙한 그의 체취와 담배 냄새를 들이마시자 구원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울러 길을 잃은 기분도. (민음사, p.156)
스물넷이라는 나이에 대체 어떤 사랑을 겪었길래 스물다섯의 시몽부터 서른아홉의 폴, 마흔이 넘은 로제의 심리까지 이토록 정교하게 표현할 수 있었을까. 어린 나이부터 발표한 작품들이 전부 인기를 끌며 번 돈으로, 여러 이슈를 일으키면서도 자유롭게 생활하던 그녀의 삶이 소설의 밑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시몽과 브람스, 폴과 클라라
민음사 판의 작품 해설에서 언급되었듯, 당시 프랑스에서 요하네스 브람스는 대중적으로 사랑받지 못했다. 브람스의 중후하고 비장한, 자칫 무겁게 들릴 수 있는 음악은 프랑스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느껴지는 이미지가 아니었던 듯하다.
시몽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은 폴로 하여금 ‘자신의 자아를 잃어버렸는가’, ‘자신의 생활 너머의 무언가를 좋아할 여유나 열정이 남아있는가’라는 진지한 사유로까지 이어진다. 프랑수아즈 사강은 제목의 끝에 물음표가 아닌 말줄임표가 붙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시몽의 질문 자체보다는 폴이 곱씹으며 하는 생각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일까.
그녀는 자아를 잃어버렸다. 자기 자신의 흔적을 잃어버렸고 결코 그것을 다시 찾을 수가 없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녀는 열린 창 앞에서 눈부신 햇빛을 받으며 잠시 서 있었다. 그러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그녀가 아직도 갖고 있기는 할까? (민음사, p.60)
사강이 이 물음 속에 담은 은유는 어쩌면 이런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브람스는 자신의 선생이었던 슈만의 아내, 클라라를 연모했다고 알려져 있다. 클라라와 브람스의 나이 차이는 폴과 시몽의 나이 차이와 동일한 14살이다. 클라라는 슈만의 좋지 않은 품행과 성격에도 평생 그를 뒷바라지하며 살았고, 슈만 사후에도 브람스와 친분을 유지했을 뿐 그 이상의 관계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결국 브람스는 결혼하지 않은 채, 평생 클라라 곁을 맴돌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 1년 후에 사망한다.
그들의 관계를 알고 보면, 브람스를 좋아하냐는 물음은 다소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시몽의 “당신이 브람스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제겐 큰 상관이 없어요.”라는 말은, 작품 속 인물의 대사로써는 깊은 의미가 담겼다는 느낌은 없다. 그러나 작가의 의도를 생각해 보면, 시몽이 폴에게 품고 있는 열정을 ‘평생동안 클라라를 사랑한 브람스’에 비유했다는 생각이 든다.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끝난 본 작을 생각하면, 그 감정이 얼마나 더 지속될지는 알 수 없지만.
특히나 프랑수아즈 사강의 “제가 믿는 건 열정이에요. 그 이외엔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사랑은 이 년 이상 안 갑니다. 좋아요, 삼 년이라고 해 두죠.”라는 말과, 작중 시몽의 “나는 현재 당신을 사랑하고 있고, 앞으로도 아주 오랫동안 당신을 사랑할 거야.”라는 대사, 폴의 ‘십 년 뒤에 그녀는 혼자가 되거나 로제와 함께 지내게 되리라.’라는 독백을 생각하면, 결말 이후 셋의 행로에 대해 더 상상하게 된다. 서른아홉이 지나고 마흔이 된다고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니니까.
그는 스물다섯 살이었다
사강은 백육십 페이지 남짓의 짧은 작품 안에서 많은 대조를 보여준다. 읽는 내내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폴과 시몽, 시몽과 로제의 대조는 눈치채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뚜렷하다. 그러나 내가 이 작품을 완성도 있다고 여기게 만든 부분은, 폴과 시몽의 대조가 지닌 짜임새가 너무나도 훌륭했다는 점이다. 둘의 첫 만남에서부터 대조는 시작된다. 폴의 ‘새로운 사람에 대한 두려움’과 시몽의 ‘새로운 사람에 대한 기대’. 마지막 장면에서는, 폴이 시몽의 열정을 부러워하는 듯한 독백을 남기며 혼잣말한다. “시몽, 이제 난 늙었어. 늙은 것 같아…….” 그리고 이어지는 묘사.
그는 두 눈에 눈물을 가득 담은 채 층계를 달려 내려갔다. 마치 기쁨에 뛰노는 사람처럼 달리고 있었다. 그는 스물다섯 살이었다. (민음사, p.157)
마지막 장까지 읽고 다시 첫 장을 넘겨 폴의 회상을 읽어본다.
그녀는 스물다섯 살이었다. 문득 그녀는 행복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모든 것이 잘되리라는 번개 같은 깨달음과 함께 자신의 삶 전체와 세상을 받아들였다. (민음사, p.10)
살아있는 한 평생 맞닿지 못할 나이라는 평행선에서, 과거를 미리 보여줌으로써 폴과 시몽의 현재가 극명하게 대비된다.

비록 그녀 곁에 있어 주지는 않지만 그녀를 ‘정상성의 범위’ 안에 들게 만드는 로제에 대한 애증 어린 집착, 열정적이고 의존적이지만 어쩌면 숨 막히게 느껴질 법한 시몽의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폴. 그녀는 결국 로제를 선택했다. 이 선택이 그녀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흐릿하게 상상이 가면서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해피엔딩만이 좋은 이야기인 것은 아니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는 현실처럼 모순, 흔들림, 불완전한 완결과 같은 것들이 존재하며, 이것에 대해 독자에게 생각해 볼만한 여지와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