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PRESS] 붓 끝에서 번져가는 평온이 당신의 마음을 닮아서 - 조은 원화전: 오늘의 정원 [전시]

먹과 한지로 담아낸 가장 현대적인 언어, 당신의 오늘이 일궈낸 정원들

by 이상아 에디터
2026.07.23 14:06

 

 

길을 가다 문득 바람 한 줌에 시선이 머무는 풍경이 있다. 때로는 나를 멈추게 하는 것이 햇살 한 뼘이 되기도 하고 꽃과 눈 한 송이가 되기도 한다. 흩날리는 나무와 그 속에서 마음껏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그림 같은 풍경이네 하며 흘러가는 시간 속에 생각을 맡기고 유유히 떠내려간다.

   

‘정원’이라는 공간은 단순히 식물과 꽃이 자라는 장소에서 나아가 하루를 살아낸 개인의 내면이 조용히 드러나는 풍경이다.

 

 

조은_kv_1080x1350_260513_6.jpeg

 

AAA00678.JPG

 

 

<조은 원화전: 오늘의 정원>은 이색적인 한국화를 통해 사람과 자연이 한데 어우러진 평화로운 풍경을 현대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다양성이 부족한 거리에서 우연히 발견한 옥상 텃밭 풍경에 오묘한 희망을 느꼈다 말하는 작가의 세계 속에는 걸어 다니는 모든 생명체들이 작게 느껴질 만큼 푸르른 식물들이 무성히 피어있다.

 

각지고 거친 현실 속에서 발견한 작은 생명을 누구보다 풍성하고 탐스럽게 키워낸 작가의 세계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평온한 일상 속 오늘을 만끽할 수 있다.

 

 

 

그곳은 빼곡히도 비어있다


 

조은 작가의 작품을 미디어를 통해 처음 만났을 때 이렇게 현대적인 그림이 한국화라니 작품을 보기 전부터 감탄이 절로 나왔다.

 

뜨거운 전류가 흐르는 스마트폰 액정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한지의 질감이나 먹의 번짐을 느낄 수 없어 하루빨리 전시에 가는 날이 오길 손꼽아 기다렸다. 마치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날을 기다리는 설레는 감정이 한지 위에 퍼지는 먹물처럼 끝없이 마음을 채워갔다.

 

 

AAA00680.JPG

 

AAA00689.JPG

 

 

도시의 모습들로 문을 연 전시는 숲과 물, 나아가 한마을의 풍경들을 담아내고 있다. 바람이라도 불면 잎사귀가 살랑거릴 거 같은 그림들에 나도 모르게 정원을 거닐 듯 걸음이 느려진다.

 

좋아하는 풍경의 모습들을 편집하여 하나의 세상으로 담아낸다는 작가의 그림에는 토토로의 숲처럼 계속해서 커져 갈 것만 같은 푸르름들이 빼곡하다. 그리고 그 아래 공존하는 사람들의 일상 또한 그림 속에 가득히 존재하고 있다.

 

 

AAA00701.JPG

 

AAA00719.JPG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은 작가의 작품 속엔 비어있는 ‘여유’가 느껴진다.

 

초점이 중심이 되는 인물이나 공간이 없고 화면 곳곳에 흩어져 있는 한국화 특유의 '산점 투시'를 따르고 있기 때문일까. 도시의 창마다 자리하고 있는 식물 사이로 비치는 실내의 온기가 시멘트와 벽돌로 지어진 건물의 직선적인 리듬을 깨고 있고, 숲으로 둘러싸인 공간에도 호수나 연못 같은 물을 배치하여 고요한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울창하게 자라난 나무 사이사이로 일상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관람객들은 나만의 경험과 기억을 투영하면서 자신만의 정원을 조금씩 채워갈 수 있다.

 

 

 

굽이굽이 흐르는 길  


 

동양의 경치를 그린 ’산수화‘ 속에는 높게 솟은 산봉우리와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물결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마을과 산 사이의 경계 없이 모든 선이 곡선으로 휘어져 있는 풍경은 자연과 하나 된 장엄한 느낌을 풍기곤 한다. 조은 작가의 작품 속에서도 이와 같은 경치들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작품들은 밑그림 없이 시작된다고 한다. 한지는 먹의 번짐을 끊임없이 받아들여 때론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길로 거침없이 퍼져 나간다. 그래서일까 조은의 세계에는 강물처럼 굽이굽이 휘어진 좁은 길들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 길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 보면 어느 길을 향해도 녹음 진 수풀을 걸을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염없이 눈으로 산책을 하다 보면 높은 산을 향하고 있는지, 먼 마을을 향하고 있는지 모를 길의 끝에서 겹겹이 쌓여있는 자연들을 마주한다. 왠지 그 너머엔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만 같은 장엄함이 깃들어져 있다.

 

 

AAA00706.JPG

 

AAA00695.JPG


 

갈림길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숲으로 이어지듯, 우리의 삶 또한 무수한 선택과 뜻밖의 마주침을 통해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

 

- <조은 원화전: 오늘의 정원> 도록 중

 

 

AAA00740.JPG

 

 

우리는 삶에서 얼마나 많이 길을 잃어 왔고 또 잃어가는지 생각해 본다. 누구나 한 번쯤은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지 못하고, 졸업 후에는 전공과 다른 직업에 적응하려 애쓰고, 아픈 줄도 모르고 매일 같이 바쁜 삶을 살아온 자신의 삶에 좌절하곤 한다. 물리적으로 주저앉고 난 후에야 자신이 위치한 곳을 인지하려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AAA00734.JPG

 

AAA00731.JPG

 

 

그러나 그곳이 길의 끝은 아니다. 작품 속 길에서 헤매어도 결국엔 이어지듯 새로운 환경을 향해 우리는 나아간다. 그렇기에 울퉁불퉁하고 굽이진 조은 작가의 풍경 속에는 휘어져도 부러지지 않는 고요한 강인함이 물들어져 있다.

 

이 평온한 세계를 구축하려 수많은 길의 토양을 다졌을 작가의 길처림 오늘을 살아가는 당신의 땅도 어느새 다져진 양질의 토양들이 훌륭한 정원을 피워내고 있을 것이다.

 

 

 

살아있다는 것의 흔적


 

조은 작가의 전시장에는 한 작품을 유독 오래 보는 관람객이 많다. 멀리 보아도 아름답지만 가까이에서 보았을 때 숨은 디테일들이 계속해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한지와 먹, 안채와 봉채 등의 한국화 재료들을 사용하고 있지만 때론 전통 재료에만 머물지 않고 서양 물감이나 아크릴을 섞어 생동감을 더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녀의 작품을 반드시 원화로 봐야하는 이유는 모니터 너머로 느껴지지 않는 특유의 질감과 결에 있다.

 

 

AAA00724.JPG

 

AAA00686.JPG

 

AAA00699.JPG

 

 

작가의 풍경들 속에는 나무들이 빼곡히 존재하지만 그 어떤 나무도 똑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지 않다. 나무의 종을 다양하게 섞거나, 잎의 질감을 다르게 표현하여 쌓여있는 잎들 사이에 원근감을 주고 있다. 바람이나 해의 방향도 세밀하게 묘사되고 있는데 특히나 휴양지를 표현한 작품들 속나무들은 마치 제각기 춤을 추고 있는 모양의 나무들이 많아 관광지 특유의 활기찬 분위기를 잘 담아내고 있다.

 

해의 방향에 따른 나무들의 색이 다르게 표현된 것 또한 인상 깊다. 취미가 ‘관찰’이라고 말하는 작가의 말처럼 오래 보아야 알 수 있는 세밀한 묘사들이 촘촘하게 쌓여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근사한 풍경을 만들어 낸다.

 

 

AAA00707.JPG

 

AAA00712.JPG

 

 

그림 속에서 풍기는 바람이나 햇볕의 결을 따라 자유로이 작품을 여행하다 보면 그 속에서 일상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에 모습에 또 한 번 매료된다. 같은 공원이지만 누군가는 캐치볼을, 누군가는 선탠을 하며 각자의 오늘을 누리고 있다.

 

특히 수영장에서 물속을 떠다니는 사람들이 가장 인상 깊었는데, 그들의 움직임으로 만들어낸 작은 파동들이 숲의 미로처럼 또 다른 길로 이어져 물의 미로를 자아내고 있어 살아있는 것들의 흔적을 만들어 내고 있다.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자연과 생명의 역동적인 연결 속에서 꿈꾸던 유토피아를 본 것만 같다. 현실의 조각들을 이어 평온의 세계를 그려낸 작가의 붓 끝에서 그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사랑이 유유히 흘러가는 풍경들에 시선을 떼고 싶지 않아진다.

 

 

AAA00714.JPG

 

AAA00716.JPG

 

 

유영하듯 작품에 빠져 전시장을 걷다 보니 어느새 출구 앞에 서 있었다. 검은색 커튼 너머엔 작가가 그토록 가리고 싶어 했던 딱딱한 직선들이 가득할 생각을 하니 이 세계에 갇혀 나가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 넓은 거실 한복판을 가로지를 만큼 커다란 작가님의 원화를 집으로 모셔와야지 하는 새로운 목표를 결심한 뒤에야 아쉬움을 삼키고 전시장을 나올 수 있었다.

 

 

AAA00718.JPG

 

 

막상 다시 현실 세계로 복귀하니 회색 시멘트 사이에도 비집고 생명을 틔워낸 푸르름들이 눈에 들어왔다. 텃밭 풍경에서 오묘한 희망을 품은 조은 작가의 시작처럼 평범한 오늘 속에서 나만의 정원 속 조각들을, 나만의 평온을 담은 풍경들을 찾아내고 싶어졌다.

 

<조은 원화전: 오늘의 정원>은 2026년 7월 17일부터 11월 19일까지 그라운드 시소 이스트에서 만나볼 수 있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