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두 눈으로 보는 따뜻함 - 햇빛 마중 [도서]

글 입력 2022.11.28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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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햇빛은 유난히 따뜻하다. 여름의 것처럼 작열하는 태양으로부터 오는 뜨거움은 아니지만. 수직으로 떨어지는 뜨거운 공기와는 다르지만. 베일 듯 날카로운 추위 속 드문드문 찾아오는 햇빛은 언 마음을 천천히 녹인다.


사람들은 저마다 가장 좋아하는, 유난히 마음이 가는 계절이 있다. 나는 차가운 기운이 느껴지는 계절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문을 닫아도, 닫아도 바깥의 추위를 막을 수 없는 계절이 되면 몸도 마음도 얼어붙는 게 느껴진다. 건조해진 피부에 차가운 바람이 닿으면 모르는 사이, 어딘가에 긁힌 것처럼 상처가 난다. 작은 자극에도 쉽게 상처가 나는 계절이 반갑지 않았다.


빙판 길을 걷는 것처럼 아슬아슬 살다가도 햇빛이 내렸다. 언제 매서운 추위가 있었냐는듯, 세상은 원래 따뜻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는데 무슨 소리야, 말하듯이 다정한 햇빛이 세상을 덮었다. 그러면 정말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추운 때일수록, 차가운 마음일수록, 따뜻하고 포근한 이야기들을 찾아 나서야만 했다.

 

 

 

햇빛 마중 가는 길


 

문진영 작가의 신간 ‘햇빛 마중’이 나왔다. 따뜻함이 느껴지는 책의 제목과 표지의 그림이 좋았다. 믿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 손을 꼭 붙잡고 햇빛이 시작되는 곳으로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햇빛 마중_표1.jpg

 

 

따뜻한 희망이 감도는 표지에는 사랑스러운 비밀이 있었다. 문진영 작가와 표지를 그린 일러스트레이터 박정은 작가는 특별한 인연이 있었다. 두 사람은 13년 전 어느 날, 도쿄의 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났다.

 

우연히 둘뿐이었던 방, 마음이 통하게 된 두 사람은 여행의 부분 부분을 함께 했다. 시간이 흘러 문진영 작가가 첫 작품을 냈을 때, 박정은 작가의 그림이 책의 표지가 되었다. 그 후로도 글과 그림을 함께 하면서 두 사람은 마음을 나누었다.


책장을 펼치면 시작되는 이 이야기에서부터 겨울에만 느낄 수 있는 따뜻한 햇볕이 내리고 있었다. 함께 한 시절을 이야기한 문장들 사이, 몇 줄의 글 속에 모두 담기지 못했을 수많은 이야기가 그려졌다.

 

누군가와 나눈 마음들을 떠올리면서 책장을 넘겼다.

 

 

 

달고 고소한 옥수수


 

‘햇빛 마중’엔 짤막한,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단편 30편이 수록되어 있다. 어딘가로 향하는 길, 자리에 앉을 때면 천천히 책을 펼쳤다. 그중에도 마음을 가장 사로잡은 건 ‘서쪽으로’였다. 어김없이 마음이 동하고 마는 이야기들이 있다.

 

 

기웅은 홀어머니와 둘이 살다가 스무 살 때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다. 그날 밤, 술을 마시다가 기웅이 엄마가 보고 싶다며 울었고, 그렇게 취한 채로 셋이서 인천까지 걸어간 적이 있었다. 기웅의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정오가 가까워 있었다. 우리는 기웅 어머니가 차려 주신 푸짐한 점심상을 허겁지겁 해치우고 여기저기 누워서 잠들었다.


새벽에 눈을 뜨자 또다시 배가 고팠다. 주워 먹을 게 없을까 해서 부엌에 갔더니 한솥 가득 찐 옥수수가 있었다. 멋대로 그걸 집어 들었다. 달고 고소했다. 잠시 후에 재형이 부스스한 얼굴로 나타났고, 곧이어 기웅이 나타났다. 아침에 텅 비어버린 냄비를 보고 기웅 어머니는 기가 막히다는 듯이 웃으셨다. 그리고 옥수수를 한솥 더 쪄주셨다. 나는 여름이 되면 항상 그때 먹었던 옥수수 맛이 생각난다. 그렇게 맛있는 옥수수는 이후로 다시는 먹어보지 못했다.


- '서쪽으로', p.55-57

 

 

한 시절을 함께 했던 친구들, 더는 함께 할 수 없게 된 한 친구, 그리고 남은 친구들의 이야기였다. 매번 웃게 되는 우리만의 이야기와 그 안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편안함과 애정, 그런 이야기는 봐도 봐도 좋았다.


떠난 친구와 함께 약속했던 여행. 남은 친구들은 여행을 취소할까 고민하지만 그러지 않기로 한다. 단풍 구경에 나선 그들은 이내 마음을 돌려 서쪽으로 향한다. 달고 고소한 옥수수를 한 아름 먹었던, 기웅의 어머니가 계신 서쪽으로 달린다.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는 건, 사람을 살려내는 건 뭘까. 쉽게 정의할 수도, 정의하고 싶지도 않은 작고 분명한 감정들을 책은 이야기한다.

 

 

 

우리는 우리의 궤도를 따라


 

네 개의 장으로 나뉜 책에서, 마지막 장의 이름. 우리는 우리의 궤도를 따라.


‘햇빛 마중’은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과 그 속에서 마주하는 다채로운 감정을 들려준다. 가까운 가족부터 오래전 함께 했던 연인, 어린 시절의 친구, 새벽녘 우연히 마주친 낯선 이까지 선택하건 그러지 않았건 시간을 공유하게 된 다양한 사람들을 불러온다. 익숙하고 낯선 관계 속에 안정감과 위로를 느끼기도, 미묘한 어색함과 불안을 떨쳐내지 못하기도 한다.


복잡한 삶 속 우리는 늘 혼자이지만, 온전히 혼자일 수는 없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얼마나 깊숙이 들어오든, 얕게 스치고 마는 존재이든,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영향을 받는다. 나 역시 그 사람들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주면서 살아간다. 삶의 비애도, 기쁨도 그 속에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의 궤도를 따라 살아간다.


세상의 다양한 것들이 다양한 이유로 싫지만, 실은 그렇게 미워하고 싶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었을 때, 함께 햇빛을 향해 마중에 나섰으면 좋겠다.

 

 

 

컬쳐리스트 명함.jpg

 

 

[이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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