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끝.
길어지는 그림자를 바라보며 오늘도 어제와 같은 하루를, 내일은 오늘과 같은 시간을 보낼 것이라 생각하면 괜스리 한숨이 나오는 순간이 있다. 반복되는 일상의 무한함 속에서 드라마 속에서 봐왔던 기적이나 행운은 왜 나에게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나는 왜 이리도 평범한 사람인 걸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안전한 울타리 안이라고 생각했던 곳을 표류하는 섬처럼 갑갑하게 느끼는 때가 갑작스럽게 찾아오곤 한다.
늘 더 나은 순간을 고대하고 방황하는 모두에게 필립 예니카는 말한다. 나만의 행운을 ‘발견’ 해보라고.
‘필립 예니카’는 독일 뮌헨 출신의 현대 미술가로,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발견한 행운과 우연의 순간들을 작품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는 법학과 경영학을 공부하고 NBA 선수를 꿈꾸던 시절도 있었지만 건강 문제로 고민하던 중 좋아하는 작가를 따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보그, 유니버설 뮤직, 아디다스 등 수많은 글로벌 브랜드와 아티스트들이 필립 예니카와 함께 협업을 희망했고 그는 패션, 광고, 예술 분야를 넘나들며 현재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정규 미술 교육을 단 한 번도 받지 않고 우연히 든 붓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표현한다. 물감이란 세계적인 것이라며 그림으로 소통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필립은 이번 전시를 통해 전 세계를 누비며 그려온 115점의 원화와 리미티드 에디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길을 잃어야 보이는 행운
<필립 예니카 기획전 : 럭키 럭키 럭키>는 홍대에 위치한 '띠아트뮤지엄'의 건물 전체를 누비며 즐길 수 있다. 지하 2층부터 지상 3층까지 총 6개 챕터로 이루어져 있어 건물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작가가 표현한 전 세계 풍경에 둘러싸여 행운의 '아트 호캉스'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관람을 시작할 때 안내 리플릿으로 'Jenikae PASSPORT'를 받게 되는데 여행을 앞두고 공항에서 체크인을 한 여행자처럼 설렘으로 마음이 들뜨기 시작한다. 비행기를 탑승할 때 문이 닫히고 열리는 순간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지는 것처럼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릴 때마다 각양각색의 예니카 세상 속으로 출국하게 된다.
각 챕터에는 필립의 발길이 닿은 모든 장소 속에서 발견한 행운들로 가득하다.
첫 번째 챕터 'LOST IS THE NEW LUCKY'에서는 사람들로 가득 찬 세계 여러 도시의 풍경을 통해 길 잃은 곳에서 만난 새로운 행운을, 두 번째 챕터 'LUCKY WAVE'에서는 푸른 물결이 밀려오는 휴양 속에서 찾은 여유와 행복을 듬뿍 담아내고 있다.
세 번째 챕터 'WIN OR LOSE, STILL LUCKY'에서는 한때 NBA를 꿈꾸던 작가의 스포츠맨십에 대한 긍정적인 자세로 유명한 스포츠 인물과 풍경 등을 역동적으로 담고 있다.
네 번째 챕터 'LUCKY NIGHT'은 공간 가장 위층에 위치한 곳으로 문이 열리는 순간 뉴욕의 루프탑 바에 방문한 것 같은 밤의 열기를, 다섯 번째 'LUCKY ROOM'에서는 네 번째와는 상반되는 밝고 차분한 작가의 방을 구현해 내고 있다.
다섯 번째 챕터와 마지막 챕터인 'FILLIPP SEOUL'은 한 공간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작가가 직접 서울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장에서 작업한 '서울 에디션' 신작이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공간이다.
각 챕터를 따라 세계의 도시와 휴양지, 그리고 스포츠와 밤의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걷다 보면 필립 예니카라는 사람의 인생을 따라 함께 여행하는 느낌이다. 누군가의 전기를 통해 타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예술 문화가 제안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색다른 방법이지 않을까?
그만의 아트적 시선이 가득한 이 공간에서 나만의 새로운 시선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필립 예니카가 말한 길을 잃어야 보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캔버스 위 춤추는 강렬한 색채의 리듬!
필립 예니카의 작품 속에는 생명력이 가득하다. 홍콩, 방콕, 뉴욕 등 대도시의 건물과 사람을 캔버스가 모자라 보일 정도로 가득하게 표현하고 있다. 도시 사람이라면 매일 평범하게 지나쳤을 풍경을 예술 작품으로 옮기며 작가는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잠시 헤매던 순간 안에 숨어있었는지 모릅니다.'라고 말한다.
도시는 그에게 거대한 영감의 원천이며 도시 설계 또한 예술같이 느껴져 거대한 세트장 같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날씨나 빛에 따라 사람들이 입은 옷이나 머리 색, 도시에 반사되는 색채 등 개개인의 개성이 다르게 느껴진다는 작가의 말처럼 그의 캔버스 위에는 컬러풀한 색채들이 도시의 열정적인 열기를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다.
특히 네온사인의 빛처럼 눈에 띄게 밝은 '네온 색'을 포인트 컬러로 활용하여 자신만의 개성 있는 시선을 팝아트적인 느낌으로 과감하게 표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그가 표현하는 하늘색은 시선을 사로잡힐 정도로 아름답다. 시간에 따라 변화되는 빛을 다양하고 선명한 색채로 그려내고 있어 그림을 통해 나의 시선으로 봤던 노을의 아름다움, 일출의 눈부심이 생각나 마음 한편이 따뜻해진다.
그의 그림은 작품마다 감상하는 시간이 유독 길어지는데 멀리서 보면 화려한 도시의 역동성이, 가까이서 보면 도시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사람 한 명 한 명의 개성과 표정이 전부 상이하게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트럼펫과 색소폰의 리듬이 춤추는 경쾌한 재즈가 울려 퍼지면 당장이라도 움직일 것만 같은 그림 속 에너지는 영화 <라라랜드>의 장면들을 떠올리게 한다.
필립의 살아 움직이는 힘은 스포츠 인물과 장면들을 표현한 작품에서도 빛을 발한다. 그가 사랑하던 농구뿐만 아니라 야구, 테니스, 축구 등 모든 스포츠 장면을 역동적으로 표현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새로운 생기를 불어 넣어주고 있다. 특히 운동선수와 그를 관람하는 관람객들까지 디테일하게 표현하여 스포츠맨십이 갖고 있는 긍정적인 기운을 독보적인 스타일로 보여주고 있다.
개성 강한 그의 시선으로 바라본 '서울'은 어떤 모습일까? 작가는 경복궁과 홍대를 직접 방문하여 그린 작품을 특별히 이번 전시에서 미공개 서울 에디션으로 최초 공개하였다. 홍대는 활동적이고 젊음이 느껴지는 흥미로운 곳, 경복궁은 왕궁의 위엄과 뒤에 위치한 커다란 산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아름다운 공간으로 느꼈다 한다.
필립이 표현한 홍대 거리에는 한글이 유독 도드라지게 표현되고 있었는데 그는 인터뷰를 통해 한국어가 갖고 있는 독특한 모양이 무척이나 개성 있고 아름답게 느껴졌다고 답하였다. 건물마다 다른 색채와 질감을 띄는 홍대 거리의 특별한 개성을 느낄 수 있어 전시장을 방문할 때에는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시선이 재밌게 느껴졌다.
매일 지나가는 거리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점이 홍대 거리가 갖고 있는 취지와도 잘 맞는 것 같아 그가 서울을 표현하는 데 있어 이 곳을 택했다는 점 또한 궁합이 잘 맞는 '행운'으로 느껴진다.
행운 발견! 참 쉽죠?
나에게만 행운이 오지 않는다고 느낀다면 전시장 곳곳에 있는 체험을 통해 그 방법을 재밌게 알아낼 수 있다. 'Jenikae PASSPORT' 속에는 각 챕터마다 비치된 스탬프를 모을 수 있는 사증을 통해 행운의 여정을 시작하는 여행자들의 설렘을 기록할 수 있게 하였다. 입국 심사장에서의 떨리는 기대를 담아 스탬프를 꾹 찍고 챕터에 들어갈 때면 새로운 마음으로 작품을 맞이할 준비를 할 수 있게 된다.
각 챕터마다 테마에 맞는 체험 또한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는데 도시를 표현한 곳에는 언제 울릴지 모르는 전화기가, 통통 튀는 스포츠 챕터에선 직접 쳐볼 수 있는 골프 구간과 스포츠 관련 행운의 이야기가 마련되어 있다. 가장 인상적인 공간은 다섯 번째 챕터인 'LUCKY ROOM' 속 체험 공간들이었는데 나만의 행운 경로를 실로 이어 표현하거나 지금 나의 상황에 맞는 행운의 우편들, 현재의 나를 찍을 수 있는 '럭키 픽쳐'같은 체험을 통해 작품 속 긍정의 기운을 받고 나를 다시 돌아보며 생각하여 나만의 행운을 발견할 수 있게끔 하고 있다.
특히 이번 체험이 재밌게 느껴지는 이유는 행운은 이런 것이다!라고 통칭하여 정의하고 있는 것이 아닌 '나'의 상황에 맞는 행운들을 다양하게 준비하여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있는 점이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관객과의 깊은 교감 중요시하여 자신의 그림으로 관객 개인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길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작가의 바람처럼 긍정의 시선에서 나를 돌아보는 체험을 통해 '나만의 행운'을 발견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법학과 경영학, NBA를 거쳐 화가가 되기까지 그가 잃었던 모든 길에서 만난 모든 방황을 행운으로 발견하여 행복으로 그려내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북적이는 도시에서도 행복을 찾고 자신만의 길을 발견한 작가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매일 비슷한 루틴의 하루 속에서 자신만의 행운을 발견할 수 있는 나만의 시선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행운 발견의 이정표 <필립 예니카 기획전 : 럭키 럭키 럭키>는 오는 9월까지 띠아트뮤지엄 홍대에서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