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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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나를 정의하는 일은 늘 기억에서 출발한다. “어디에서 자라고, 어떤 일을 했으며, 어떤 감정을 느꼈고...” 같은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끼리는 친구가 된다. “그때 교실에서, 그때 우리 처음 만났을 때...” 그래서 기억은 선택의 근거가 되고, 새로운 과거를 만듦으로써 연속적인 인과관계로 이어진다.

  

반면 기억되지 못하는 것은 영영 사라진다. 내가 늘 새로운 인형을 사는 것에 은은한 죄책감을 느끼는 이유다. 새 인형을 들이면, 원래 있던 인형은, 그보다 더 전에 있던 인형은 점점 공간과 시간에서 밀려나서, 언젠가 대규모로 짐 정리를 하는 순간에 ‘이런 것도 있었지, 아까워라.’ 하며 버려지는 마지막을 맞이하게 될 테니까.


그래서 인간은 기록한다. 자의 또는 타의로 지워지는 기억과 생애사의 어이없는 변덕에 대한 발악이라고 할 수 있다. 사라져가는 기억을 아무리 영원한 물질에 가두어보려 해도, 결국 ‘인간이 직접’ 기억해 내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기억이란 이렇게 강력하면서도 덧없다.


나에게 다큐멘터리란, 재현되어 보여질 기회가 없는 기억에 대한 기록이다. 그 기억이 왜 다시 누군가의 기억으로 재탄생되어야 하는지, 얼마나 넓은 범위의 타인에게 닿길 바라는지 등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기록자의 마음이다. 그래서 다큐멘터리는 아주 사소한 것부터 매우 광범위한 것까지 무궁무진한 소재를 다루게 되고, 기록자가 대상에게 갖는 감정이 고스란히 담긴다.


나는 ‘기억’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에 갈수록 어려움을 느낀다. 기억이 먼저인지 내가 먼저인지, 기억과 세상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와 같은 답이 없는 질문들 속에서 경외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답을 찾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어떻게 다루어왔는지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기로 했다. 기억에 의해 영감받고, 기억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제안하며, 기억으로 이루어진 인간을 다루는 다큐멘터리 세 편을 가져왔다.

 

 

 

1. 물속의 도시 : 기억할 수 있는 자의 죽음


 

김응수 감독의 2014년 작 <물속의 도시>는 1978년부터 1985년에 걸친 충주댐 건설로 수장된 300여 개의 마을에 대해 다룬다. 카메라는 충주호 위를 누비는 관광 배 위에 올라 사람들을 아무 말 없이 길게 비춘다. 댐의 풍경, 실향민들이 말없이 카메라를 응시하는 컷트, 사라진 마을의 잔해 나 옛 풍경이 담긴 사진들 정도가 화면을 구성하는 전부이다. 그리고 1980년 신군부의 언론 통폐합으로 폐국된 동양 라디오의 ‘밤을 잊은 그대에게’의 마지막 방송이 나온다. DJ는 청자들을 향해 절절한 이별의 송사를 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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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호의 물색처럼 푸른 색감의 영상들이 두 눈을 새파랗게 적신다. 스산한 분위기에 침전된 관객은 한때 따뜻한 온기로 살아 숨 쉬던 고향을 송두리째 잃는 경험은 어떤 마음일지 자문한다. 다큐멘터리의 서문에 나오는 실향민의 말처럼, 고향이란 ‘까마득해도 어떤 건 눈에 선한’ 것이다. 눈을 감으면 보이는, 수없이 걸었던 길과 속속들이 알고 있는 풍경. 기억이 그러하듯이, 공간도 나의 일부인 것이다.


이런 쓸쓸한 인상보다 더한, 먹먹한 슬픔으로 다가오는 것은 후반부에 이어지는 장면들이다. ‘망향비(望鄕碑)’라고 새겨진 비석에는 마을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그 후 호수를 바라보고 선 빨간 벽돌집에 사는 노인의 모습. 풍경이 한참 이어지다가, 생각에 잠긴 듯 천천히 걷는 노인을 다시 비추고, 벽돌집에서 들것에 실려 응급차로 옮겨지는 누군가가 흑백 화면으로 전달된다.


물속의 도시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만 재현될 수 있었다. 과거는 부서진 흔적으로 남아있고, 이젠 그 기억을 가진 사람들도 점차 사라져간다. 그리운 마음은 씻겨나간다기보다는 몰아치는 파도 속에 잠겨간다.


기억은 어디까지 생존할 수 있는가? - 물속의 도시는 이 다큐멘터리로 조금 더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잔존할 것이다. 그곳을 만나본 적 없는 관객의 기억 속에도, 희미한 그리움의 감상으로. 그러나 그 후에는? 자연스럽게 연속되지 못한 기억의 절단부는 쉽사리 아물지 못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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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연히 나는 아름다움의 섬광을 보았다 : 기록으로 기억하기


 

‘망향비’를 보며 기록에 담긴 인간다움을 느꼈다. 존재했음을 증명해야 할지 몰랐을 과거를 오늘에 새겨놓음이다. 이렇게 종종 우리는 기억의 의미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묻게 된다.


리투아니아에서 미국으로 온 이민자이자, 미국 실험영화계의 거장으로 불리는 요나스 메카스의 <우연히 나는 아름다움의 섬광을 보았다>는 하나의 긴 영상 일기이다. 장장 4시간 40분에 이르는 이 영화에는 결혼, 아이들, 가정생활, 여행, 계절과 자연 등 감독 본인의 일상 촬영본들이 두서없이 편집되어 있다. 그리고 그가 영화 안에서 재차 강조하듯, 아무 사건도 벌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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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영화를 얼마나 집중해서 어떻게 봤을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나는 대부분의 러닝타임에 기억에 대한 잡념에 사로잡혀있었다. 인간이 어떤 것을 기억하는 방식은 주로 이렇게 깨진 조각으로 남아있어서, 영상을 보면서 어느 옛날 나의 추억과 동시에 연결되어 노스텔지어를 느낄 수 있다. 모든 것에 의해 총체적으로 이루어졌던 ‘현실’의 일부가 시청각적으로 재현될 수 있다는 것이 새삼 엄청나게 느껴지는데, 이러한 영상 기록은 다른 매체보다 훨씬 순수한 현실에 가깝고, 그래서 공고한 환상을 만드는 것에 강하기 때문이다.


기록은 기억을 거듭 재정의한다. 어떤 기록의 유무에 따라 – 그것이 다른 사람의 기억, 예를 들면 증언의 형태일 수도 있다 – 과거는 몇 번이고 새로 태어날 수 있는 것이다. 한참이 지나 기억의 의미를 묻게 된다. 세상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자 모든 의미를 함축하는 것들의 반복이다. 의미는 결국 부여될 뿐이다. 비교적 중요한, 혹은 결정적이라 부르는 순간이 있지만, 결국에 중요하지 않은 순간이 없다는 것, 살아있다는 건 그런 일 같다.


현재에 집중하라. 이 말에 모든 진리가 담겨있다는 듯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말에 거의 동의한다. 하지만 어떤 포부보다는 경험으로서, ‘현재에 집중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실재적으로 느껴진다. 그런 순간엔 나의 온 정신과 육체를 현재와 완벽히 합일하고 싶어진다. 이 영화의 전체를 이루는, 드라마틱할 필요 없이 평범하고 완벽한, 저녁 식사 자리나 낮의 피크닉 같은 장면이다. 삶이라는 긴 영화 속 한 부분으로 있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몇몇의 아름다움은 필름에 수집되어 영원히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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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액트 오브 킬링 : 기억의 탈태


 

기록이 기억을 재정의하고, 이어서 자아를 재정의하는 과정이 비단 미묘하고 시적인 차원에서의 변화가 아니라 인생 전체를 뒤엎는 것이라면 어떨까.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액트 오브 킬링’은 1965년 인도네시아 대학살 당시 학살의 주범이었던 고문 기술자 ‘안와르 콩고’에 대한 이야기이다. 군부 정권 아래 국민 영웅으로 추앙받아 호화로운 일생을 산 그는, 그가 과거에 저지른 학살을 재연하는 영화를 직접 제작할 것을 제안받는다. 한 치 부끄럼 없는 자부심으로 그는 제안을 받아들이고, ‘액트 오브 킬링’은 마치 그가 제작하는 영화의 메이킹 필름처럼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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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얼굴은 이런 것일까. 해맑게 웃으며 무용담을 펼쳐놓는 그를 볼 때 우리는 전에 본 적 없던 파렴치와 공포를 느끼게 된다. 가해자들과 나도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에 몸서리치면서, 이들을 혐오함과 동시에 어떻게든 논리 또는 심리를 이해해 보려는 역겨운 시도를 거치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안와르 콩고가 영화를 연출하면서 자신이 기억하는 과거를 자연스럽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가 세웠던 논리에 반하는 말을 하고, 페르소나마다 완전히 다른 도덕관념이 작용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이러한 이중성에서 관객은 그가 진실을 외면하고 정당화한 과정을 가늠하게 되고, 놀랍게도 안와르 콩고 자신도 종국에 평생 지켜온 신념의 붕괴를 맞는다.


기억을 실제에 가깝게 재현하는 과정에서, 그는 이제껏 기억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서서히 깨달았고, 그 모든 기억이 이제는 온통 돌아서서 자아를 멸살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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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짧은 사고로는 아직 이해할 수 없는 너무 큰 담론을 가지고 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원래 알던 것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해도, 다시 확인한다는 의미로서, 다큐멘터리에서 발견한 몇 가지 사실들을 기록하고 글을 마친다.


: 기억은 파편화되고, 휘발되고, 왜곡된다. 이에 인간은 기록으로 기억의 영속을 시도한다. 그 기록은 원래의 기억을 재가공하기도 하며, 아예 새로운 기억을 창조하기도 한다. 아름다움은 순간순간에 있고, 그것을 잃었다는 상실감과 상관없이 인생은 진행된다. 기억은 현실과 함께 숨 쉰다. 과거, 현재, 미래의 총체적 결과로서의 기억은 다른 사람에 의해서는 절대 같은 방식으로 기억될 수 없다. 그렇기에 기억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오롯이 내 몫이며, 나의 해석이 현실과는 너무 다를 때, 그 기억은 엄청난 기만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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