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같은 사랑. 훌쩍 떠난 여행지에서 한눈에 반하기. 첫사랑과 10년 뒤에 운명처럼 재회해 결혼하기. 위험에 처한 나를 몇 번이고 구해주는 우연의 연속. 이런 건 다 영화에나 나오는 거니까, 현실을 살아야지. 그래서 적당히 직장이나 모임에서 인연을 찾는 것이 현실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결혼정보회사가 현실이다. 프로필에 따라 등급이 나뉘고 내 ‘계층’에 맞는 짝을 찾기 위한 가입비를 낸다. 사랑과 행복, 반짝거리는 단어들이 반짝거리는 집, 차, 보석 같은 물질로 대체되었다. 말 그대로 ‘인(因)’과 ‘연(緣)’이 상품화되었다. 영화 같은 삶을 살고 싶은 사람들은 점점 더 심하게 영화를 이상화하고 기나긴 현실의 터널에 갇힌다. 그러나 현실이란 대체 어디인가, 이상은 어째서 이상인가?
![[가로축변경][회전]조르주 페렉 사물들.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6/20250605214954_eumbmiyc.jpg)
소설가 조르주 페렉의 데뷔작인 ‘사물들’은 1960년대 프랑스 젊은 부부의 생애주기를 담았다. 그들을 둘러싼 사물들에 대한 묘사가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생소한 단어들도 많아서 연상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그것들이 인물에게 주는 실망이나 열망을 짐작하기에는 충분하다. 산업혁명 이후, 사물들은 우리 주변에 넘쳐흐른다. 값어치가 얼마이고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등을 가늠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고, 이제는 쓸모조차 알 수 없는 사물들이 만연하다. 프랑스 철학가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현대 소비사회에서 사물은 쓰임새가 아니라 ‘mise en scène(미장센)’의 시스템에서 이용된다고 했다. 즉, 하나의 물체는 이제 그것이 상징하는 것, 심지어 사실이 아니라 연극처럼 꾸며졌을지라도 그것이 의도적으로 표현하는 개념에 초점이 맞춰진다. 그렇다면 만질 수 있는 사물 뒤로 우리가 선망하는 그것은 무엇인가? 사물에 대한 소유권한을 부여하는 돈이다.
▶ 누구나 부를 꿈꾸고 부자가 될 수 있는 시대이다. 여기서 불행이 시작된다. - 63p.
현실 속에 무기징역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은 이제 누구에게나 명백하다. 물질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작은 일상의 순간들에서도 충분한 행복을 느껴보았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친구들과 왁자지껄 웃는 순간이나, 예쁜 정원을 산책하다 내쉬는 숨에 섞인 풀 내음을 소중히 여기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나중에는, 지금처럼 좁고 물건이 잔뜩 쌓여 발 디딜 곳 없는 집이 아니라 거실과 방과 부엌, 서재나 창고까지 분리된 ‘어엿한 집’에 살게 되겠지. 지금처럼 매일 따분하게 컴퓨터 앞에 앉아서 타자를 두드리면서 주말만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겠지. 직급이 오르거나 직종을 바꿔서 보다 큰 액수의 돈을 만질 수 있는 직업을 갖겠지. 우리에겐 이런 막연하지만 ‘무조건’ 이루어야 하는 목표가 있다. 사소한 행복은 일시적일 뿐이며, 완전한 안정을 찾기 위해서 추구해야 하는 길은 따로 있다. 부의 축적이 전제이며, 시간이 걸리겠지만 가능성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페렉은 이렇게 현대인의 삶에서 궁극적인 ‘행복’이 마치 ‘부’와 동의어처럼 된 현상에 대해, 부를 추구하는 삶을 합리적이고 의심할 여지 없는 현실로 수용하는 소시민들의 일상을 치밀하게 묘사함으로써 은유한다. 가끔의 기분 전환, 술을 마시거나 영화를 보는 짧은 순간을 통해 희구하는 현실과 자신들이 맞닥뜨리는 현실 사이의 간극을 잊으면서 제롬과 실비는 어떠한 열정도 느끼지 못하는 일에 하루하루를 헌납한다. 이런 고단한 삶 속에서 그들 옆에 놓이고, 그들을 스쳐 가고, 그들의 눈길을 끄는 사물들은 자신들의 극을 쉴 새 없이 펼친다. 사물들은 제롬과 실비의 머릿속에 이미 굳어진 가치관을 더 견고히 한다.
그들이 욕망하는 행복과 자유는 확실히 터널 끝에 있다고. 돈은 그들을 집어삼키거나, 속이고 우롱하는 괴물이 아니라, 차곡차곡 발을 디딜 수 있는 믿음직한 계단이라고.
▶ 뭐라고, 꽃이 만발한 들판을 거니는 대신 창 딸린 사무실 책상 뒤에서 좋은 시절을 다 보내라고? - 64p.
제롬과 실비는 돈과 안락함, 행복이라는 주제에 대해 매일 생각한다. 어떻게 해야 빨리 그들이 원하는 행복에 도달할 수 있을지. 왜 애쓰고 또 애써도 제자리에 고립되는 듯한지. 그러다 서로를 문제로 삼아보기도 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무서움을 느꼈다. 그들은 생각하지 않는 게 아니다. 같은 것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도피의 성패
결국 미래를 위해 희생하는 현재를 도저히 견딜 수 없게 된 이 젊은 부부는, 꽉 붙잡고 쥐어짜던 삶을 손에서 놓고, 튀니지로 향한다. 떠난 후에는 어땠을까? 그들을 너무나 피곤하게 하던 물질 사회에서 신체를 분리함으로써, 깨달음을 얻고 행복을 쟁취했을까? 지나쳤던 욕심을 반성하며 비우고 살아가는 법을 배웠을까? 어떤 결론을 얻었는지가 궁금하다면, 직접 책을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그리고 아마도 소설의 결말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끝이야말로 이야기를 완성하는 중요한 조각이라는 점을 느꼈으리라. 문학은 아무도 비판하지 않을 때 가장 날카로운 듯하다. 자신의 행복을 찾아 성실히 일하고 고뇌하는 인간도, 그런 개인의 삶을 제멋대로 지휘하는 사회의 시스템도, 시치미를 뚝 떼고 무언의 암시를 시현하는 사물들도.
![[가로축변경][회전]IMG_2623.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6/20250605215436_zazrhlzm.jpg)
![[가로축변경][회전]IMG_2625.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6/20250605215436_satpbshq.jpg)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40년 전 프랑스 사회를 묘사하는 소설에 내 이야기가 쓰여있을 때마다, 쾌감과 불쾌감 사이의 그 어떤 알 수 없는 기분이 든다. 행복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미덥지 않고, 행복을 찾기 위해 불행해야 하는 아이러니를 견딜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부자가 되고 싶은 것과 행복해지고 싶은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꽃이 만발한 들판을 거니는 대신, 하루 종일 노트북을 열고, 닫고, 쳐다보고, 두드리고, 그렇게 어제도 오늘도 보내었다. 노란 꽃이 흐드러진 들판에 누워 푸른 하늘을 쳐다보는 상상을 한다. 내가 이 땅을, 하늘을 소유한 게 아니란 말인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게 시간이라던데, 돈이 우리의 시간을 다 가져가는 것 같다.
▶ 그들은 둘러싼 사방에서 삶을 누리는 것과 소유하는 것을 혼동했다. 그들은 시간의 여유를 갖고 싶고, 세상과 거리를 두고 싶어 했지만, 그들에게 무엇 하나 가져다주지 않는 세월은 마냥 흐르기만 했다. - 6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