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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삶을 살아가는 힘에 대하여


 

Project 당신에 자기소개 글을 기고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아트인사이트>라는 플랫폼에서만 할 수 있는 자기소개를 하고 싶었다. 내가 연극/뮤지컬과 같은 공연예술에 몰입하고 싶어 하는 이유와, 그것으로부터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은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나만의 사소한 몰입점: 공연이 좋은 이유


 

나는 걱정이 많다. 정말, 유구하게, 아주 어릴 때부터 걱정이 많았다. 그 양상도 다양하다. 과제가 부실했으면 어떡하지, 하는 현실적이고 가까운 걱정, 취업을 할 수 있을까, 하는 현실적이고 약간은 먼 걱정 (점점 멀지 않은 일이 되어 가고 있긴 하다), 지구 온난화로 극지방에 얼어 있던 고대 바이러스가 제 2의 팬데믹을 일으켜 인류를 멸살하면 어떡하지, 하는 나와는 아주 먼 걱정까지.

 

불행한 것은, 나는 그 다양한 양상의 걱정을 한 번에 한다는 것이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머리가 항상 터질 것 같다. 반추와 걱정이 좋지 않은 습관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의식적으로 생각을 그만하려고 하지만, 북극곰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면 북극곰이 계속 생각나는 법이다. 그 때문에 나에게는 생각을 차단할 만한 외부적인 자극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문화 콘텐츠에 몰입한다. 특히 몰입하기 좋은 공연예술을 자주 소비한다. 극장에 가서, 휴대폰을 끄고, 웬만해서 퇴장할 수 없는 강제적 공간이 나에게 강렬한 몰입의 경험을 선사해 준다. 객석이 암전되는 순간, 바깥 세계는 더 이상 나의 알 바가 아니다. 현실에 대한 나의 모든 걱정은 멈추고, 나와 그 세계만이 남는다. 그 순간은 말하자면 나에게, 로캉탱의 재즈 음악 같은 순간인 것이다.

 

공연장의 암전 속으로 숨어드는 일은 나에게 일종의 안전한 도피였다. 현실의 층층이 쌓인 걱정들로부터 잠시 눈을 돌리고, 타인의 세계에 완벽히 매몰됨으로써 얻는 일시적인 평온함.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뮤지컬 <렌트>는 나를 단순히 숨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무대 위 인물들 역시 나만큼이나, 아니 나보다 더 혹독한 현실과 내일에 대한 두려움에 직면해 있었다. 에이즈라는 죽음의 그림자, 가난과 소외라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그들은 결코 동굴로 숨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 막막한 어둠 속에서 '오직 오늘뿐'이라고 외치며, 두려움을 기꺼이 껴안고 사랑을 노래한다.

 

도망치고 싶어 찾았던 공연장에서 도리어 삶을 정면으로 응시할 힘을 얻었다. 공연이 끝난 뒤, 극장 문을 열고 나설 때의 나는 이전과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쉼 없이 쏟아지는 일상의 파도에 휩쓸려 가는 대신, 1년 52만 5,600분이라는 거대한 시간의 더미 위에서 나만의 이정표를 세워보고 싶어졌다. 누군가는 사랑으로, 누군가는 그저 숫자로 시간을 잰다고 하지만, 나는 나만의 아주 감각적이고 사소한 방식으로 나의 일 년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렌트.png

 

 

 

어떻게 재요, 일 년의 시간


 

그렇다면 한 해를 어떻게 잴까, 날짜로, 계절로, 커피로, 혹은 사랑으로?

 

나는 향으로 한 해를 잰다. 매년 1월, 한 해에 이루고 싶은 목표 100가지를 다이어리 맨 앞 페이지에 적는데, 그중 하나는 꼭, ‘새로운 향기 제품 구매하기’다. 때로는 향수, 보통은 핸드크림, 트리트먼트나 섬유유연제일 때도 있다. 한 해에 꼭 하나만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기분에 따라, 계절에 따라 즐기는 향은 달라지지만, 1월에 구매한 ‘올해의 향수’는 특별한 날, 소중히 기억될 날에 뿌리고 나간다. 그러면 나중에 그날의 기억은 그 향에 가두어진다. 나중에 그날을 꺼내 보고 싶을 때, 그 향기를 꺼내는 것이다.

 

구체적인 제품명을 이야기하면 광고가 되어 버릴 것이므로, 제품명은 말하지 않고 에피소드 몇 개만 꺼내어 보겠다. 열아홉에서 스물로 넘어가던 겨울, 친구에게서 핸드크림 선물을 받았다. 사용하던 것들 중 가장 향이 강한 제품이었고, 나는 그것이 썩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스무 살이 되고 난 뒤에 무언가를 처음 시도해 볼 때마다 그 핸드크림을 발랐다. 칵테일이나 에스프레소를 마시거나, 혼자 미술 전시관을 돌아다니거나 하던 날에.

 

지금의 나에게 칵테일, 에스프레소, 미술관은 더 이상 새롭지 않다. 그러나 때때로 그것을 처음 누리던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은 날이 있다. 지금 나에게 당연해진 것들이 너무 슬퍼지는 날. 그럴 때마다 나는 그 핸드크림 향을 맡는다. 눈을 감고 천천히 그 향을 느끼다 보면, 그 안에 가두어진 기억이, 감각이 되살아난다.

 

그때 느껴지는 새삼스러운 감각은 아주 기묘하다. 무언가를 처음 경험했을 때의 그 떨림과 즐거움이 다시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과거의 내가 그 떨림을 즐겼다는 사실이 감각적으로 느껴진다. 그 감각은 나를 떨리게 할 수 있는 것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 내가 기록할 것들이 아직 무한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 그 새삼스러운 자각은 오늘을 다시 충만하게 소진할 수 있는 힘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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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좋아합니다. 폭넓은 문화 향유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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