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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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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글에는

연극 <빅 마더>에 대한

강력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프랑스 연극계의 최고 권위 몰리에르상의 5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연극 <빅 마더>가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에서 4월 25일까지 상연한다. 알고리즘 리터러시, 데이터 리터러시가 동시대의 큰 문제로 떠오른 지금, 연극 <빅 마더>는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의한 ‘편리한’ 감시 사회, ‘빅 브라더’가 아닌, ‘빅 마더’의 세계를 110분간 치열하게 제시한다.

 

 

대선을 앞둔 미국에서 현직 대통령의 성 추문 영상이 공개되며 사회는 극심한 혼란에 빠진다.

 

뉴욕 탐사 기사들은 영상의 진위를 추적하던 중, 사건의 배후에 ‘보이지 않는 조작 시스템’이 존재함을 발견한다.

 

사건은 점차 단순한 정치 스캔들이 아닌 거대한 시스템과의 갈등으로 이어지는데…

 

진실을 폭로하려는 기자들과 이를 막으려는 권력의 숨 막히는 추격전이 펼쳐진다.

 

연극 <빅 마더> 시놉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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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공론장, 그리고 알고리즘


 

예전에 ‘인터넷은 공론장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들었던 것이 생각난다. SNS가 한참 확장되던 시기였고, ‘유튜브’라는 것이 생겨나고, 10대 아이들이 페이스북을 사용하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그때의 나는 인터넷이 공론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의견을 더 자유롭게 표현하고, 자유롭게 토론하고, 진정한 ‘자유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기술의 발전을 통한 직접 민주주의 실현, 얼마나 달콤한 말인가. 그러나 2026년, 인터넷 세상에 관한 연구가 어느 정도 진행된 지금, 우리는 이것이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모든 사람이 그동안 정치적 의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러므로 디지털 기술이 있으니, 모든 정치적 의제에 의견을 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오히려 게으른 일이며, 정말 필요한 것은 투명한 절차의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리즘 큐레이션은 편리함인가, 편향성인가?’ 공교롭게도 이 연극을 관람하던 날 오전, 대학 수업에서 제기되었던 토론 질문이었다. 알고리즘은 분명 편리하다. 검색 없이도 내가 관람할 콘텐츠, 소비할 제품들, 내 정치적 성향에 맞는 뉴스를 추천한다. 그러나 이것이 편향을 낳는다는 것 역시 분명하다. 내가 SNS에 하나의 의견을 게시하면 플랫폼은 나와 생각이 맞는 사람을 추천해 주고, 그런 게시물을 피드에 띄운다. 나는 나의 생각과 일치하는 내용의 글을 읽고, ‘좋아요’를 누르고, 비슷한 내용의 글을 또 다시 게시하며, ‘내 생각이 확장되고 있다’라는 착각에 갇혀 버리게 된다.

 

작중 <빅 마더> 프로젝트는 디지털 세계에 올라온 모든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한다. 본래의 목적은 국가 안보 유지였지만, 이 프로젝트의 개발자는 이 기술을 다르게 이용한다. 기술을 통해 직접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다는 착각을 퍼뜨리고, 여론을 조작하여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을 심고, 알고리즘을 통해 사람들에게 편리함을 준다.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본인들이 직접 민주주의 사회의 일원이라는 게으르고 편안한 가짜 자부심 속에서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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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기꺼이 기만당하기를 원할 때


 

작중 이 <빅 마더> 프로젝트의 정체를 파헤치는 것은 ‘뉴욕 탐사’의 기자들이다. 그들은 참 기자들이다. 베트남 전쟁의 실체를 고발했던 기자들처럼, 국가 안보를 무너뜨릴지도 모른다는 협박에도 불구하고 <빅 마더> 프로젝트를 끈질기게 추적한다. 공익을 위해, 투명한 정치를 위해, 그들은 말 그대로 목숨을 걸었다. 그리고 목숨을 걸고, 그들은 마침내 기사를 낸다. 빅 마더 프로젝트의 실체와 시민들의 정보가 정치 스캔들에 어떻게 이용되었는지의 내용 전부를. 여론 조작, 무법적 데이터 수집, 기만적 투명성이 ‘빅 마더’ 프로젝트의 진실이었음을 정리하여 기사로 낸다. 그러나 기사가 공개되었음에도, 시민들은 이 빅 마더 프로젝트의 개발자를 대통령으로 선택한다.

 

기사가 설득력이 부족했을까? 아니다. 언론사의 인지도가 부족했나?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을까. 모든 진실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프로젝트의 개발자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이 진실에 관심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널리즘은 말한다. 언론은 공익을 위한 글을 써야 한다고. 그러나 언론사는 사기업이다. 공익을 지향하는 사기업이라는 언론사의 이중적 성격은, 대중, 즉 소비자가 공익을 원한다는 전제하에서 유효한 것이다. “정치권이 우리를 기만할 수 없도록 너희 언론이 권력을 감시해라.” 시민, 즉 소비자들이 언론에 기꺼이 돈을 지급하며 내리는 명령은, 공익을 추구하는 사기업인 언론사가 굴러갈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시민들이 기꺼이 기만당하고 싶어 한다면, 저널리즘의 원칙은 무너지고 만다. 나아가 건강한 민주 시민 사회의 담론 역시 무너지고 만다. 개인정보가 정치적으로 이용된 것에 대해 분노하지 않는 것, 머리 아픈 정치적 의제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 잘 정리된 진실을 ‘입맛에 맞지 않는다’라는 이유로 소비하지 않는 것.

 

이 이야기의 결말은 결국, 우리에게 ‘사유하라’고 말한다. 입맛에 맞지 않는 사실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고. 알고리즘의 편안한 버블에서 벗어나 예민해질 필요가 있다고. 피곤하고 지치는 일이지만 그것을 감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아직 다가오지 않았지만, 다가올지도 모르는, 혹은 이미 어느 정도 다가온, 새 방식의 편안한 디스토피아를 경계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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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좋아합니다. 폭넓은 문화 향유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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