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만 되면 생각나는 앨범이 있다. 앨범 전체가 마음에 드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이 앨범은 수록된 10곡 모두 좋아 무더운 여름이 찾아오면 자연스럽게 다시 찾게 된다. 시원한 사운드 덕분에 더운 날씨에도 부담 없이 듣기 좋은 바비의 첫 솔로 앨범 [LOVE AND FALL]이다.
앨범 표지부터 시원한 파란색으로 여름을 연상시킨다. 실제로 수록곡 대부분이 이지 리스닝 계열의 곡들로 구성되어 있어 더위에 모든 것이 무겁게 느껴지는 요즘 가볍게 듣기 좋은 앨범이다.
바비를 떠올리면 여전히 쇼미더머니 시즌 3 우승자라는 이미지 때문에 강렬한 힙합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LOVE AND FALL]은 바비의 첫 솔로 앨범으로 기존에 알려진 바비의 이미지와는 다른 스타일을 보여준다.
사랑해
앨범의 더블 타이틀곡 중 하나인 [사랑해]는 제목만 보면 사랑을 고백하는 노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오랜 연인과의 이별을 담아낸 곡이다. 함께한 시간이 길어진 연인의 권태와 끝을 그려내며 제목과는 다른 방향으로 곡이 전개된다.
사랑을 노력한다는 건 이미 사랑이 아닌 걸
설렘이 빠진 사랑에게 남는 건 결국 정뿐인 걸
보통의 이별 노래는 상대를 붙잡고 싶어 하거나 헤어진 것을 후회하는 마음을 담아내지만 [사랑해]는 여전히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 있음에도 설렘은 사라지고 오랜 시간 함께하며 쌓인 정이 더 큰 게 남은 관계를 이야기한다. 그래서 후렴구에서 반복되는 ‘사랑해’라는 가사는 다시 돌아와 달라는 외침이 아니라 서로를 미워하기 전에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기고 싶은 마지막 인사처럼 들린다.
또 하나 인상적인 부분은 가사와 멜로디의 대비다. 오랜 연인과의 권태와 이별을 이야기하지만 곡은 여름을 연상시키는 청량하고 경쾌한 사운드로 전개된다. 이는 서로를 원망하며 끝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했던 시간을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한 채 서로의 앞날을 응원하며 관계를 마무리하고자 하는 마음이 곡 전반에 자연스럽게 담겨있다.
RUNAWAY
사랑해와 함께 또 다른 더블 타이틀곡인 [RUNAWAY]는 청춘이라면 한 번쯤 꿈꿔봤을 '일탈'을 노래한다. 하지만 이 곡이 말하는 일탈은 단순히 어디론가 떠나는 일이 아니다. 실패를 두려워하며 움츠러든 마음에서 벗어나고 싶은 청춘의 불안과 현실을 담아냈다.
실수를 실패로 생각하는 버릇이 생겨서
실패를 하기 싫어 자꾸만 시도를 그르쳐
다치기 싫어서 새로운 만남을 기피해
혼자 우는 쪽이 편해 눈치 볼 필요 없어서
‘실수를 실패로 생각하는 버릇이 생겨서’라는 가사는 단순히 실패가 두렵다는 고백이 아니다. 실수와 실패를 구분하지 못할 만큼 끊임없이 결과를 평가받는 데 익숙해진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청춘을 다룬 많은 노래가 결국 희망으로 귀결되는 것과 달리 [RUNAWAY]는 희망을 말하기 전에 먼저 왜 우리가 힘든지에 대해 다룬다. 그렇게 현실 앞에서 작아진 자신, 실패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이처럼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방식은 올해 발표된 AKMU의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과도 닮아 있다. 이 노래가 슬픔 또한 마음의 일부이니 애써 밀어내지 말자고 이야기한다면, [RUNAWAY] 역시 무작정 '힘내'라고 다독이기보다 '그럴 수도 있다'며 지친 마음을 먼저 이해해 준다.
LOVE AND FALL
괜찮아질 거야 멀리
이 긴 방황의 저 끝에
내가 찾는 내 모습이
날 기다리고 있길
[RUNAWAY] 가사
여름은 양면적인 계절이다. 뜨거운 햇살 아래 누군가는 열정에 박차를 가하는 반면, 또 다른 누군가는 한 해의 절반을 지나며 소진된 마음으로 계절을 보낸다. 같은 여름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설렘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방황으로 기억된다.
어쩌면 LOVE AND FALL이라는 앨범명도 그런 여름을 닮아 있는지 모른다. FALL은 계절인 가을을 뜻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언가에 빠지고 흔들리는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사랑도, 청춘도 하나의 감정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앨범이 담아낸 다양한 감정과도 맞닿아 있다.
계절은 매년 같은 모습으로 돌아오지만, 그 계절을 살아가는 우리는 매번 조금씩 달라진다. 그래서 같은 앨범도 해마다 다르게 들린다. 올해의 여름에는 [RUNAWAY]의 가사가 오래 남았고, 내년 여름에는 또 다른 곡이 마음을 두드릴지도 모른다.
분명한 건 [LOVE AND FALL]은 그 변화하는 계절과 마음을 오래도록 함께할 수 있는 앨범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