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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알프스산맥 가까운 숙소에서 자고 일어난 맑은 날 아침에 홍차를 마셔야 할 것 같았어 - 현대약품 제194회 아트엠콘서트 '유다윤 바이올린 리사이틀'

둘 다 유 씨시네, 형제야? 아니, 아니.

by 장유진 에디터
2026.09.18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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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신영체임버홀에 오니 감회가 새로웠다. 마지막이 언제였더라. 이든콰르텟의 연주였는데, 다시 살펴보니 그게 작년 8월 21일의 일이다.


      그 시점부터 지금까지 하는 일은 거의 변함이 없는데, 공연장을 이곳저곳 누비고 난 뒤 다시 찾은 여의도 근방의 공연장은 그 자체로 ‘오랜만이다’라는, 요 근래 만나지 못한 문장 하나를 건네주었다.


      더운 듯하면서도 시원했던 한낮을 지나, 붉그스름한 노을로 넘어가기 전의 푸릇한 오후 6시 무렵, 친구와 나는 공연장과 바로 연결돼 있는 북카페의 2층에 있는 2인용 가죽 소파에 널브러져 앉아 7시 30분의 공연을 기다렸다.


      연차를 쓰고 하루 종일 바쁜 일정을 소화하다 온 친구는 똠얌쌀국수부터 크레페까지 온갖 맛있는 것을 섭렵하고 왔지만, 저녁을 따로 챙겨 먹지 못한 나를 위해 함께 카스텔라를 즐겨주는 센스를 베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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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게 잘라놓은 빵 한쪽을 얼음이 동동 떠 있는 우유 안에 폭 찍은 뒤 입에 얌- 넣고는 친구에게 오늘 공연에는 퀴즈도 있다고, 맞히면 상품도 준다며 관심을 유도했다.


      친구는 “호오?” 하는 표정을 지으며 어떤 퀴즈가 나오냐고 물었고, 정말 아무런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오늘의 바이올리니스트의 이름은..? 피아니스트의 이름은..?! 뭐 이런 거?” 하는 수준의 예시를 떠올렸다.


      그런데 친구는 정말 친구 따라 강남 오듯 나만 보고 공연장에 따라온 터라, 정답부터 알려줘야 했다. 사실 일단 따라오라고 했지, 어떤 공연인지는 제대로 일러주지도 않았다!


      요즘의 나는 클래식 공연을 본 적 없는 친구들을 일단 공연장에 들이닥치게 하는 재미에 들린 것 같다. 이럴 때 아니면 또 언제 맛보여줄 수 있겠나 싶어 냉큼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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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유성호 피아니스트, 유다윤 바이올리니스트 

       

       

      “오늘의 바이올리니스트 이름은 유다윤이고, 피아니스트 이름은 유성호야.”


      “둘 다 유 씨시네. 형제야?”


      “아니, 아니. (당황하여 고개를 도리도리) 우연의 일치야.”


      아, 역시 설명은 이쯤이면 됐다. 말 한마디 더 하는 것보다 공연을 보는 게 낫겠다 싶어, 우리는 7시 10분쯤 혈당 스파이크를 걱정하며 북카페 계단을 내려갔다.

       

       

       

      벨러 버르토크, 랩소디 제1번, Sz. 86


       

       

       

      내가 기억하는 버르토크 중 가장 인간미 있게 웃으며 노래한다 싶었다. 또 그동안 생각해온 그의 질김이 예상보다 훨씬 너풀대는 영역으로 넓어졌다. 그러니까, 사람이 좀 여유로워 보인다는 것 아니겠나?


      다만 그렇다고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애초에 다가서기 쉬운 성미가 아니라는 기색이 곡 전반에 깔려 있다. 연주자는 듣는 이가 버르토크를 꽤 오래 알고 지낸 것처럼 편안하게 따라가도록 이끌지만, 정작 그가 걷는 길을 가만히 살펴보면 꼬박꼬박 골짜기를 넘나든다. 조소와 흥미가 뒤섞인 길을 이곳저곳 탐색하고 나면 2악장이 나타난다.


      2악장에서는 그 접근하기 어려운 기색이 조금 더 가라앉아 있다. 1악장에서 버르토크가 바이올린에게 가지고 놀라며 고무줄 하나를 건네주었다면, 그 고무줄은 워낙 탄성이 좋고 손에 달라붙는 느낌이 절묘했다. 그렇다고 완전히 들러붙지는 않고, 살짝씩 뒤로 튕겨나가는 감각도 있다. 듣다 보면 소리의 끝에서 몸을 한 번씩 뒤뚱거리게 만드는 바이브가 있었는데, 2악장에서는 그것이 조금 사그라든다.


      오히려 긋는 길 안에는 여유로운 숨구멍이 ‘퐁, 퐁’ 나 있고, 속도는 더 붙는다. 바이올린이 ‘챙얼’거리는 소리를 들어보셨는가? 불만족스러워 ‘칭얼’거린다는 느낌과는 다르게, 현악기에서만 들을 수 있는 특유의 밝은 몇 겹의 소리가 있다. 굳이 색으로 따지자면 맑은 청색 혹은 녹색에 가까운 소리. 그걸 버르토크 안에서도 만날 수 있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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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 고개 사이로 과다니니 투린을 바라보며, 버르토크를 연주할 때 유독 즐거워 보였던 몇몇 연주자들을 떠올렸다. 버르토크를 먼저 듣고 바흐나 베토벤을 나중에야 듣게 된 입장에서 바라보면 이렇다. 규제된 느낌이 덜하다. 자유롭다. 다른 작곡가의 곡보다 연주자 본인을 조금 더 투입시킬 여지가 있어 보인다.


      애초에 종잡기 어려운 표현과 길이 그려져 있으니, 그걸 헤쳐나가는 동안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연주자 자신이 막 솟구쳐 나온다. 본인이 거기에 얼마나 들어가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그 재미가 있지 않을까?


      어떤 곡을 연주할 때는 연주자 자신이 한 걸음 살짝 물러나고 바이올린만 조금 더 앞에 나가 노래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런데 버르토크 같은 곡에서는 오히려 사람이 악기 쪽으로 바짝 붙는다. 고개를 숙인다든지, 눈을 꾹 감는다든지, 악보에 달려든다든지 한다.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할 만큼 ‘몰입’한 상태로 이끌려 연주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얼마나 재밌을까?


      거기다 그 특유의 ‘민속적’ 느낌이라는 게 절묘하게 매력적이다. 왜 먹는지도 모르는 채 계속 입에 들어가는 감칠맛 같은 것이 귓가에 아른거린다. 듣는 사람도 그런데, 그걸 직접 만들어내는 사람은 또 어떨까?


      러닝을 한참 뛰고 난 다음, 옷이 다 젖고 이마에서도 땀방울이 툭툭 떨어지지만 고민이고 뭐고 다 사라진 채 숨을 가쁘게 헐떡이는 순간에 맛볼 수 있는 개운함. 온도와 색은 다르겠지만, 그 정도의 중독성이 있지 않을까? 연주자의 손끝에 남는 감촉을 느껴볼 수는 없지만, 만약 잠깐 그들이 된다면 현을 눌렀던 지문 위를 다른 손가락으로 몇 번 매만져볼 것 같다.

       

       

       

      니콜라이 카푸스틴, 바이올린 소나타, Op. 70


       

       

       

      예습을 하나도 안 해가고, 악장 개수가 몇 개인지도 모른 채 듣는 정말 생초면인 바이올린 소나타는 오랜만이다. 시작을 듣자마자 약간 걱정스럽기도 했다. 누가 들어도 처음부터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이라기보다는, 발밑이 자꾸 미끄러지는 바퀴 달린 신발을 신고 뒤로 막 물러난 다음 거기서 무용을 시작하는 것 같았다.


      이 공연을 같이 보자고 데려온 친구의 옆얼굴을 슬쩍 살폈다. 다행히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무대를 향한 친구의 왼쪽 눈동자를 확인한 뒤, 다시 연주자를 향했던 시선을 돌려 황색과 검은색이 번갈아 놓인 벽면을 바라봤다.


      생각이 따라가는 속도보다, 단어나 문장을 얻어가는 속도보다 음악이 훨씬 빠르고 곧게 질러가면 잠깐 길을 잃는다. 바이올린과 인간인 내가 쓰는 언어가 다르니까, 천천히 말해주면 따라갈 수 있는데 한 발 더 앞질러가면 다른 생각을 잠깐 다 막아놓고 그 소리만 따라가야 한다. 이런 걸 보면 음악을 듣는다는 건 모국어가 아닌 언어를 듣는 일과 비슷한 것 같다.


      그런데 이 곡은 낯선 말들을 쏟아내면서도 줄곧 밝은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1악장은 아주 새파란 하늘과 입체적인 구름을 배경으로 하고, 땅 위에는 도로 하나가 길게 깔려 있는 장면이었다. 잔잔하게 머무르는 음악은 아니었다. 잽싸게 흐름을 가지고 놀다가도 두꺼운 호흡을 내뱉고, 어느 순간 휘파람을 불 듯 가볍게 튀어 오른다.


      쉴 새 없이 앞을 향해 가는데 그 방향이 답답하지 않고 환하다. 단정한 하복 차림에 검정 단화를 신고 일직선으로 쭉- 뜀박질하는 검은 머리의 여자애 하나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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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악장은 1악장은 물론이고 앞서 들은 버르토크와도 다른 또 하나의 장이 열렸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 바이올린을 보다 보면 그 나무 한 그루가 어디까지 춤을 출 수 있나 감상하는 즐거움도 있지만, 네가 왜 이렇게 매력적인 악기인지, 왜 사람들이 너를 데려다 이토록 많은 노래를 만들어놓았는지, 네 목소리에 얼마나 많은 표정이 들어 있길래 수많은 연주자가 너를 택했는지 그 이유를 느껴보는 재미가 있다.


      그것도 활을 든 채 현 위를 똑-똑-똑 손가락으로 건드리는 모습을 보면 더 그렇다. 네가 그렇게 매력 있어?


      3악장에 들어서니 1악장에서처럼 낯선 속도에 끌려가기보다, 이제는 같이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운동화 끈을 단단히 묶고 긴 양말을 치켜올린 다음, 앞으로 힘껏 발을 뻗어볼 차례 같았다. 카푸스틴은 이 곡 안에서 계속 앞으로 가는 사람이었다. 단순히 빠른 것이 아니라, 내일이 있다고 믿는 사람처럼 경쾌하게 밀고 나간다.


      처음 만난 작곡가였지만 음표는 꽤 가까이 와 닿았다. 어렵게 자신을 숨기기보다는 듣는 사람을 데리고 움직이는 쪽에 가까웠다. 처음부터 끝까지 밝은 쪽을 보고 달려가는데, 이상하게도 그 색은 마냥 새파랗지만은 않았다. 보랏빛이 조금 섞였는데도 푸릇푸릇했다. 아, 굉장히 보랏빛으로 푸릇푸릇했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제7번 다단조, Op. 30, No. 2



       

       

      사실 이거 들으러 온 게 맞다. 얼마 전에 이 곡을 프란체스코 루제리(Francesco Ruggeri, Cremona 1667)가 노래하는 버전으로 들었으니, 과다니니 투린(J. B. Guadagnini, Turin 1774)은 또 어떻게 달리 걸어갈지가 궁금했다.


      베토벤을 다시 떠올리기 전에는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생중계 녹화 영상을 다시 틀어봤는데, 공연장에서 들었던 것보다 훨씬 하나의 선율로 붙어 있는 느낌이라 신기했다. 신영체임버홀에서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조금 더 의젓하게 각자 혼자 노래하는 것처럼 들렸는데, 녹화본에서는 둘도 없는 사이마냥 착- 붙어 있었다. 한 번의 마이크와 화면을 거치며 두 소리가 조금 더 가까워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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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장에서 만났던 유다윤은 자기 소리를 앞에 내세우기보다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베토벤 안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들렸다. 그렇다고 존재감이 흐려진 것은 아니다. 활을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베토벤 7번이 눈을 웃을 때처럼 동그란 작은 곡선을 하나씩 그리는 것 같았다. 여태 지나온 길에서는 규칙적으로 음표가 웃고 있지는 않았으니까 더 눈에 띄었다.


      더군다나 방금까지 앞뒤로 이곳저곳을 누비고 오다가 갑자기 딱 떨어지는, 중간마다 정지 구간이 놓여 있는 곡을 만나면 재밌다. 꽤 잘 놀 줄 아는 사람이 어느 정도의 정석을 지켜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그래서 지금 ‘베토벤 하는 중, 듣는 중, 또박또박 긋는 중’이라는 게 팍팍 티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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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악장은 내게 아주 흥미로운 두 번째 장면이 되었다. 공연이 다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건물 빛과 가로등 때문에 한낮처럼 밝은 밤길을 걷는 와중에 클래식 공연은 거의 본 적 없지만 대중가요와 관련된 공연은 꽤 많이 섭렵한 친구가 후기를 들려줬기 때문이다.


      “마지막 곡 있잖아. 거기서 두 번째. 딱 알프스산맥 가까운 숙소에서 자고 일어난 맑은 날 아침에 홍차를 마셔야 할 것 같았어. 그 예전 영화인데, 유명한 노래 영화 있잖아. 그… 아! 사운드 오브 뮤직도 생각났어!”


      이 어찌나 귀엽고 딱 맞는 소감이 있을까? 친구가 느낀 포근함에 문장을 조금 덧붙여보기로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나직한 건반 소리 다음에 나타난 바이올린의 첫 그어짐이다. 시작에는 소리가 들어와 앉을 만한 조그만 여백이 있었다. 잘 들어보면 모닥불이 타닥거리는 곳에 앉아 있을 때, 혹은 침대 위에 누워 이불을 한아름 껴안고 있을 때의 포근함이 가장 먼저 놓여 있었다.


      흘러가는 모양새를 살펴보니 조급하지도, 마냥 아련하지도 않다. 한 7시간은 깊이 잠을 잔 덕에 눈살을 찌푸릴 필요도 없이, 한두 번 눈을 깜빡이는 것만으로 창문 밖을 편하게 바라볼 수 있는 정도겠다.


      기지개를 켜기에는 이불 속에 숨어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만족스럽지만, 문 하나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너무나도 맑다. 작은 창틈으로 바람이 소리도 없이 솔솔- 이쪽으로 건너오니 저절로 이제는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오늘은 무엇을 가지고 놀아볼지 슬슬 떠올려보게 되겠다.


      그러니까 마음 한구석에서 기대가 얼마나 부풀겠는가? 당분간은 여유 시간이 충분하니, 비눗방울을 천천히 키워나가듯 긴 숨을 수우우우- 불어넣어도 쉽게 깨지지 않을 행복들이 그려진다. 그 안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차 한 잔이 있었나 보다.


      3악장에 들어서니 이제 별다르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익숙한 유다윤 바이올리니스트의 낌새와 베토벤이 잘 엮여 들어가서, 얼마나 빠르게 4악장으로 건너가 버릴지가 궁금했다. 맑으면 맑은 채로, 쨍하면 쨍한 대로 움직이다가 정말 바로 다음 구간으로 넘어가버렸다.


      4악장에서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음표를 어느 한구석으로 몰고 가는 순간의 박진감이 재밌다. 오히려 본론으로 들어가기 직전이 가장 짜릿하지 않은가? 그와 비슷한 재미가 이 노래 안에도 있다.


      후루룩- 내려가는 부분도 흥미롭지만, 소몰이하듯 질러가면서도 지켜갈 건 다 지켜간다. 발박자를 맞추면서 끝을 장식하는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는 즐거움이 이 안에 있다.

       

       

       

       

      공연이 끝나고 신영체임버홀을 나와 다시 밤길을 걷는데, 친구는 베토벤 2악장을 떠올리며 알프스산맥 가까운 숙소와 홍차 이야기를 했다. 


      덕분에 이제 당분간은 베토벤의 2악장을 들으면, 작은 창문 하나와 맑은 아침, 그리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찻잔을 생각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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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락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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