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이라고 하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세상에는 클래식 전공자부터 클래식 애호가, 클래식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까지 다양한 유형이 존재한다. 전공자나 애호가의 경우 대체로 클래식을 좋아하고, 클래식을 접하는 일에 익숙하다. 그래서 관련 공연을 보러 가거나 음악을 듣는 일에 거리낌이 없다. 여기서 필자가 눈여겨본 것은 ‘클래식에 관심이 없는’ 부류다. 물론 클래식에 관심이 없을 수도, 심지어는 싫어할 수도 있다. 각자의 취향이 있는 법이고 본인과 맞지 않는 것을 억지로 좋아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클래식이 ‘어려워서’ 다가가지 못하고 망설이는 경우는 조금 다른 문제다.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당신의 탓이 아니다. 실제로 깊게 들어가면 복잡하기도 하고 낯선 측면도 있다. 다만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사람들이 클래식을 좋아하지는 못하더라도 어렵지는 않게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이 글은 클래식이 어려운 이들 중에서도 입문 방식을 몰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해하는 ‘클래식 덕후 지망생‘을 위해 작성한 일종의 ‘가이드’이다. 읽고 나서 당장 클래식을 사랑하게 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오히려 ‘별거 없네?’라는 생각이 들었으면 한다. ‘입덕’은 어떤 대상에 깊이 빠져들어 그 세계에 새로 발을 들인다는 뜻이다. 새로운 세계가 어려워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너무 억울하다. 알아보고 다시 이 세계 밖으로 나가더라도, 한 번쯤은 같이 클래식을 이해해 보면 어떨까.
*명시한 숫자는 목차일 뿐 순서가 아니다. 원하는 대로 취사선택이 가능하며, 이외에 다른 방법을 생각했다면 그것도 훌륭하다.
Ⅰ. 재밌는 콘텐츠를 보자 - 쇼츠부터 도서까지
필자의 경우 어릴 때부터 직간접적으로 클래식을 접하며 그에 익숙해졌지만, 본격적으로 좋아하게 된 것은 중학생 시절인 것 같다. 그때쯤 ‘또모(TOWMOO)’라는 채널을 보기 시작했다. 또모는 2019년 설립된 유튜브 채널로,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어 깊이 있는 클래식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콘텐츠로 탈바꿈시킨다. 특히 젊은 세대가 관심을 가질 법한 유쾌한 기획이 많아 부담 없이 보기 좋다. 또모는 국내 최초로 예능형 클래식 콘텐츠를 제작했다. 클래식 음악을 ‘쉽고 재미있게’ 알리며 교양과 재미를 모두 잡는 것을 목표로 했다고 한다.
학생인 척하는 전문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사전 정보 없이 평가하게 하는 ‘교수님 속이기’, 오프라인으로 프라이빗하게만 볼 수 있었던 연주자들의 실제 레슨 방식과 음악에 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마스터 클래스’가 대표적인 콘텐츠다. 실제로 이를 통해 클래식에 관심을 가지게 된 대중이 많으며, 어쩌면 필자도 그 수혜자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겠다.
꼭 클래식 본연의 모습이나 이론을 담은 콘텐츠일 필요는 없다. 클래식에 흥미를 느끼게 할 만한 드라마, 영화, 웹툰도 좋다. 이번에 제작된 송강, 이준영 배우 주연의 드라마 <포핸즈>를 보는 것도 클래식에 익숙해지는 꽤 괜찮은 시작일 수 있다. 과거 작품이긴 하지만 국내 대표 클래식 음악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2008)>나 클래식 음악 학도들의 아슬아슬한 꿈과 사랑을 잔잔하고 현실적으로 그린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2020)>를 보는 것도 좋다.
애니메이션 영화로는 동명의 만화가 원작인 <피아노의 숲>을 추천한다. 필자가 이전에 다른 글로 언급한 적도 있을 만큼 작품 자체의 완성도가 뛰어나며, 그 안에 담긴 클래식 음악도 아름답고 울림이 있다. 주인공이자 라이벌 관계인 ‘이치노세 카이’와 ‘아마미야 슈헤이’를 비롯해 피아노를 사랑하고 좋은 연주를 꿈꾸는 인물들의 눈빛을 보면, 클래식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Opinion] 나만의 피아노, 나만의 음악을 찾아서 - 뮤지컬 '피아노의 숲' [공연]
웹툰으로는 나윤희 작가의 <손 안의 안단테>를 꼭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앙코르, 달 세뇨, 포핸즈 등 모든 소제목에 음악 용어가 쓰였으며, 작품에도 몇 개의 클래식 음악이 삽입되어 있다. 현재 완결된 작품으로, 죽은 피아니스트의 심장을 이식받은 다울과 그 피아니스트의 연인으로 상실 속에 삶을 마치려던 연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는 살아갈 것이다. 안단테의 리듬을 한, 이 사람의 심장으로.”라는 작품 소개는 많은 것을 담고 있다.
그 외에도 김겨울 작가의 <아무튼, 피아노 : 모든 것은 건반으로부터 시작된다>, 김호경 작가의 <아무튼, 클래식>도 읽어보기를 권한다. 때로는 무언가를 향한 진심이 담긴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충만해지기도 한다. 그들이 기꺼이 클래식의 세계에 들어가게 되고 사랑하게 된 이유를 알아보는 것도 좋은 시작이지 않을까 싶다.
Ⅱ. 좋아할 만한 아티스트를 찾아보자
어떤 장르에 서슴없이 뛰어들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덕질’할 대상을 찾는 것이다. 사랑하면 미친다고 하지 않나. 평소라면 주저할 일들도 오직 그 사람을 보기 위해, 그 사람의 음악을 듣기 위해 기꺼이 수고를 감수하게 된다. 덕질의 대상이 될 존재로는 작곡가, 연주자, 지휘자 등이 있을 것이다. 그들 중 ‘최애’를 어떻게 만드느냐고 묻는다면, 사실 별거 없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아이돌과 배우를 예시로 들어보겠다.
필자도 수많은 아이돌을 좋아하며 다양한 ‘입덕’ 루트를 거쳤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우선 외적인 요소들이 작용하기 마련이다. 우연히 보게 된 사진 속 얼굴이 취향이라서, 등장하는 영상에서 본 몇 초가 매력적이라서, 퇴근길 영상을 보는데 팬들에게 잘 대해주어서 등등의 사유들 말이다. 아이돌에게 음악방송이나 인터뷰 영상이 있듯, 연주자나 지휘자에게도 그런 사진과 영상, 인터뷰가 있다. 또한 점점 인스타그램이나 X(구 트위터)에서 팬 계정을 운영하는 애호가들도 증가하는 추세이니 이를 확인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만으로도 유의미한 시작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욕심을 조금 보태자면 그것만으로 덕질은 완성되지 않는다. 아이돌을 좋아할 때도 얼굴로 입덕했더라도 결국 음악 취향이 갈리거나 실력이 부족하면 마음이 오래가지 못하지 않던가. 당연히 클래식에서도 좋은 ‘음악성’이 뒷받침해 줘야 한다. 그러니 ‘덕질’ 대상을 찾는 두 번째 방법은, 당연하게도 그 사람의 ‘음악’ 자체에 빠져드는 것이다. 우연히 한 배우의 연기를 감명 깊게 보고 다른 필모그래피를 찾아보게 되는 것처럼, 마음에 든 연주자의 다른 연주에도 귀를 기울여 보게 되는 것 말이다.
요즘은 직접 현장에 가지 않아도 양질의 음악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다. 알고리즘이 갑자기 클래식 음악을 추천해 주는 경우도 있고, 음원 사이트에서도 주제별로 묶은 좋은 클래식 플레이리스트를 찾아 들어볼 수 있다. 공부하듯이 듣지 말고, 배경 음악을 틀어두듯이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보자. 그렇게 하나둘 듣다 보면 내 마음에 닿는 연주가 있을 것이다. 필자도 그러했다. 유튜브가 추천해 준 양인모 바이올리니스트의 ‘우아한 유령’과 '죽음의 무도' 연주 영상을 접한 후 관심이 생겨 앨범을 찾아 듣다가 그를 진심으로 응원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같은 곡도 연주자마다 ‘해석의 차이’로 인해 곡의 길이, 강약 조절, 속도 등이 달라 새로운 곡처럼 느껴지는 것이 클래식의 매력이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클래식 곡 중 하나인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만 해도 신창용, 선우예권, 조성진, 백건우를 비롯한 여러 피아니스트의 연주 버전이 있다. 그것들을 비교해 보며 마음에 와닿는 연주자를 찾아보는 재미도 있으니, 시간이 된다면 한번 그렇게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Ⅲ. 나와 결이 맞는 음악을 찾아보자
앞에서 ‘연주자’를 팔로우하며 음악과 작곡가를 알아가는 방식을 소개했다면, 반대로 ‘작곡가’를 팔로우하는 방식도 있다. 현재 약 14만 명의 구독자를 지닌 유튜브 채널 ‘클래식 좀 들어라’는 좋은 곡들을 모아 플레이리스트로 만든다. 채널이 만드는 독특한 제목과 섬네일(Thumbnail)은 한 번쯤 ‘클릭’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해당 채널이 업로드하는 영상 ‘모차르트좀들어라’, ‘바흐좀들어라’, ‘이게 바람인가요? 드뷔시 클래식’ 등은 같은 작곡가의 음악 몇 곡을 선정하여 소개한다. 영상의 댓글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으니, 귀로는 음악을 듣고 손으로는 스크롤을 내려 댓글들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떨까.
또 다른 유튜브 채널로는 ‘탱로그’가 있다. 현재 음악교육학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인 탱로그(본명 권태영)는 음악 유튜버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콘텐츠로는 음악 다큐멘터리 패러디, 대학교 박사 과정 브이로그, 그리고 클래식 작곡가 리뷰(가스라이팅)가 있다. 작곡가에 대해 알고 싶다면 클래식 작곡가 리뷰나 클래식 작곡가 이상형 월드컵, 음악대학 입시곡 맛보기 시리즈를 추천한다. 열변을 토하며 작곡가와 그 음악의 매력을 영업하는 순수한 열정과 투박함에 웃음이 나오면서 자연스레 설명에 몰입하게 된다. 실제로 한 시청자는 “입시생도 아니고 관련 전공도 전혀 아니지만 정말 순수하게 재미를 느껴서 보는 1인… 클래식 대중화는 이런 것 아닐까.”라고 댓글을 작성하기도 했다.
조금 차분하게 알아보고 싶다면 ‘1분 클래식’ 채널을 추천한다. 해당 채널에서 업로드하는 영상 중 쇼츠의 경우 대체로 길이가 1분을 넘지 않는다. (배속을 하면 더 짧아진다.) 부담 없는 길이의 영상을 보다 보면 곡 안에 담긴 이야기를 알아갈 수 있다. 당연히 ‘그냥’ 음악을 틀어두고 느끼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이때 설명을 들으며 어렵지 않게 ‘감상 포인트’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이 채널의 장점이다.
Ⅳ. 가성비 좋은 공연들을 보자
이렇게 영상, 음악, SNS 등 다양한 매체와 방식을 통해 클래식을 알아가다 보면 슬슬 공연이 보고 싶어진다. 그런데 들어가서 예매를 하려고 보면 적게는 2만 원부터 많게는 40만 원, 그 이상의 가격까지 천차만별의 티켓 비용을 마주하고 뒷걸음질치게 된다. 그 주저함을 이해한다. 이제 막 좋아하기 시작한 사람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좋아해 온 사람이라도 몇십만 원이 되는 가격의 티켓을 보면 선뜻 가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벌써 포기하지는 말자. 앞선 경험들로 클래식이 매력적인 장르라는 것을 알게 되지 않았는가. 물론 돈을 모으거나 한번 경험한다고 생각하며 큰마음 먹고 가보는 것도 좋다. 그리고 모든 공연이 값비싼 것도 아니니 그중에서 가볼 만한 공연을 찾고, 본인에게 해당하는 할인 혜택을 적극적으로 찾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번에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또 하나의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세종문화회관에서 기획하여 운영 중인 ‘누구나 클래식’이라는 문화 충전 프로젝트다. ‘누구나 클래식’은 더 많은 시민에게 풍성한 공연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시작된 세종문화회관의 대표적인 사회 공헌 프로그램이다. 각 공연은 추첨제로 운영되고, 어렵게 느껴지지 않도록 해설 등의 다채로운 구성을 더했다. 또한 공연장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1천 원부터 1만 원까지 관람객이 원하는 금액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관람료 선택제’로 운영된다.
올해도 1월부터 12월까지 좋은 연주자와 오케스트라가 ‘누구나 클래식’과 함께하고 있다. 1월에는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의 협연, 5월에는 KBS 교향악단과 피아니스트 신창용의 연주 공연 등이 진행되었다. 다가오는 10월에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피아니스트 박재홍의 연주가 예정되어 있다. 필자는 4월에 진행된 강릉시립교향악단과 함께한 문태국 첼리스트의 공연에 다녀왔다. 객석과 로비에 북적이는 다양한 연령대의 관람객들과 편안한 관람 환경을 보며 즐겁게 다녀왔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니 시간이 된다면 신청 접수 일정을 잘 확인해 당첨자가 되는 행운을 얻기 바란다.
Fin. 주저하지 않고 가보는 것
“실전은 기세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덕질’도 기세라고 생각한다. 이 글은 당신의 ‘기세’를 응원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중요한 것은 그냥 들어보는 것, 그냥 공연장에 가보는 것이다. 혼자 가도 좋고, 친구나 애인을 데리고 가도 좋고, 심지어는 가지 않아도 좋다. 다만 이것만은 알아주었으면 한다. 클래식은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음악이라는 언어로 구성된 아름다운 세계다. 많은 이들이 대중화를 위해 애쓰고 있기도 하다. 다시 말하지만 정말로 별거 없으니까, 오랜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진입해도 충분하다.
끝으로 하나 고백하자면, 필자는 클래식 전공자가 아니고, 매일 클래식 연주회에 가거나 음악을 듣는 ‘성실한’ 클래식 애호가도 아니다. 현재 아트인사이트에 주로 기고하고 있는 분야인 연극만큼 어느 정도의 공부를 한 것도 아니다. 그 때문에 전통적인 가이드와는 달리 전문성이 부족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적어도 읽기에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저 좋아하는 것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으로 썼다.
학창 시절부터 피아노와 바이올린 등의 악기 연주에 관심이 많았고 또 연주를 듣고 보는 것도 좋아했다. 연주를 반복 재생하며 위로받는 순간도 많았다. 감정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칠 때 귀에 이어폰을 끼고 소리를 키워 눈을 감은 채로 클래식 음악을 듣던 밤이 생생하다. 신창용 피아니스트의 리사이틀에 가서 직접 연주를 듣는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고, 선우예권의 라흐마니노프를 들으며 다사다난했던 입시 기간을 버텼다. 덕분에 좋은 기억을 좋은 사람과 쌓아갈 수 있었다. 클래식에 빚졌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글로써 그 빚을 조금이나마 갚아보고 싶었다. 이 이상한 입덕 가이드가 ‘좋은 것’을 경험하는 데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
다들 행복한 클래식 덕질하시길!
p.s. 마음의 혼란이 잦아들지 않을 때마다 나를 위로하던 음악 하나를 소개한다. 백건우 선생님의 유령변주곡이다. 들을 때마다 ‘좋은 어른’의 다독임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든다. 실제로 현장에서 들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