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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미지의 세계를 그리는 사람, 알렉상드르 데스플라 [음악]

그의 음악은 거대하고 비밀스러운 미지의 세계를 천천히 들여다보는 행위 같다.

by 손혜림 에디터
2026.09.08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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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이 없는 <세이프 오브 워터>를 상상해본다.

       

      괴물과 처음 마주하는 순간도, 엘라이자가 물속에서 춤추듯 움직이는 장면도,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까지. 과연 음악이 없었다면 이 영화가 주는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을까?


      영화음악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위해 영상을 음소거한 채 장면을 분석하다 보면, 같은 장면인데도 전혀 다른 감정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일수록 음악의 존재를 더 선명하게 의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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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음악을 들을 때면 감정의 해상도가 높아진다. 그의 음악은 화면에 담긴 빛과 색, 인물의 감정과 영화가 가진 고유한 분위기를 음악만의 언어로 확장시킨다. 단순히 화면의 움직임을 보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음악과 장면 사이의 균형을 섬세하게 아우른다. 

       

      그의 작품 중 개인적으로 <세이프 오브 워터>만큼이나 좋아하는 영화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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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보고 있으면 영화 속 색채가 음악으로 옮겨진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베르메르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고요한 빛깔들, 그 안에 숨겨진 그리트의 감정은 음악을 만나면서 더욱 섬세하게 드러난다.

       

      데스플라는 화면에 비춰지지 않는 내면의 소리까지 대신하여 그려낸다. 보이지 않는 것을 음악으로 그려내며 자신만의 미지의 세계를 펼쳐 보이는 그의 음악을 마주할 때면, 그 깊이에 새삼 경외의 마음이 든다.

       

       

       

      1. The Shape of water


       

       

       

      영화의 제목과 같은 이름을 가진 이 곡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물”을 표현하는 곡이다. 데스플라는 이 오프닝 음악을 만드는 것이 곧 영화의 핵심을 찾는 과정이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영화의 전체적인 톤과 어울리는 음악을 만들기 위해 악기와 음색을 세심하게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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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정하게 반복되는 아르페지오 선율은 물이 일렁이는 모습과 닮아 있다.

       

      같은 음형이 반복되면서도 악기의 음색과 질감은 조금씩 달라진다. 마치 물의 “형태”를 정확하게 규정할 수 없지만 끊임없이 움직이는 모습과 닮아 있다. 물속에서 들리는 듯한 흐릿하고 불분명한 감각. 선율도 마찬가지로 분명하게 시작하고 끝나는 음악이라기보다, 어디선가 계속 흘러나오는 소리처럼 느껴진다.


      주제곡만큼이나 흥미로운 소리가 있다. 바로 엘라이자의 휘파람이다. 말을 할 수 없는 엘라이자는 영화 속에서 종종 휘파람을 분다. 데스플라는 그녀가 등장할 때마다 이 소리를 반복적으로 활용해 하나의 모티프로 삼는다.

       

      자신의 목소리를 말로 건넬 수 없는 만큼, 휘파람은 그녀의 존재와 감정을 대신해서 관객에게 전하는 또 하나의 목소리가 된다.

       

       

       

      2. Griet’s Theme


       


       

      영화의 오프닝, 주인공 그리트가 양파를 까는 모습과 함께 음악이 시작된다.

       

      이 음악은 플루트와 비올라를 중심으로 외롭고 쓸쓸한 모습의 주인공을 담아낸다. 비교적 음량이 풍부한 첼로 대신 울림과 소리가 선명하지 않은 비올라를 선택함으로써, 여린 모습의 그리트라는 인물의 특성을 더욱 잘 표현한다고 느껴진다.


      이 곡은 영화 전체에 걸쳐 그리트의 심리와 그림이 가진 신비롭고 모호한 분위기를 담아낸다. 데스플라는 음악의 진행과 음색을 통해 화면에 직접 드러나지 않는 인물의 감정을 조금씩 드러낸다.

       

      특히 그림에서 붓의 터치가 그러하듯, 악기의 섬세한 음색, 강약 조절, 리듬감은 음악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화면에 보이는 색채와 빛이 음악을 통해 또 다른 감각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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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만으로도 이야기가 충분히 전달되지만, 음악이 들어오는 순간 화면에 숨어 있던 미묘한 감정들이 더 선명해진다. 데스플라의 음악은 깊이 숨겨진 내면의 소리를 발견하는 재미를 느끼게 한다. 악기의 음색과 강약의 변화, 선율 사이의 짧은 쉼까지 놓치지 않는 그의 섬세함에 감탄하게 된다.


      그의 음악은 거대하고 비밀스러운 미지의 세계를 천천히 들여다보는 행위 같다. 화면에 보이는 것 너머의 감정을 발견하고, 미처 들을 수 없었던 마음의 소리까지 깊숙이 파고들게 만든다.

       

      데스플라의 음악은 늘 그렇게 감정의 해상도를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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