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라는 매체는 우리 주변에 늘 존재하는 것을 한껏 압축해 보여주기도 하고, 반대로 무의식 한켠에 숨겨진 무엇을 한껏 극대화해 보여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특별함이다. 남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를 전달한다면, 소위 말하는 개성을 갖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필자가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감독은 기예르모 델 토로와 음악 감독, 하비에르 나바레테이다.
기예르모 델 토로의 매력은 비인간적인 형체를 통해 인간의 심연과 본질을 탐구한다는 점과, 동화와 현실을 넘나드는 마법적 리얼리즘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시각적 측면에서 누구보다 독창적인 입지를 가진 인물인 만큼, 오늘의 오피니언에서는 그의 영화 속 음악이 보여주는 청각적 가능성에 귀를 기울이고자 한다.
[악마의 등뼈]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초기 고딕 공포 영화로, 1939년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어린 소년 카를로스가 고아원에서 겪게되는 미스터리한 사건을 다룬다. 기예르모 감독의 작품 중에서 가장 드라마적인 구조를 취하는 영화이고, 관객들이 현재의 기예르모에게 기대하는 기괴함과는 거리가 먼 작품이기도 하다. 감독이 꾸준히 그러하듯이 상징적인 소재들을 많이 섞어넣는가 하면, 전체적으로 우울하고 황폐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러한 영화의 분위기를 견인하는 데에는 다양한 음악적 요소가 사용되었는데, 스페인 출신의 영화음악 작곡가 하비에르 나바레테가 그 역할을 톡톡히 한다.
많은 영화 음악이 그렇듯 반복되는 테마와 멜로디를 취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만, 영화의 중심적인 정서가 인간의 상실과 뒤따르는 죄책감을 다루고 있기에, 반복되어 되돌아오는 테마의 사용은 영화 서사의 정서적 축을 형성한다. 1번 트랙과 13번 트랙은 ‘Fantasy’라는 요소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유령이라는 존재 자체를 음악적으로 정체화하는 테마라고 볼 수 있다.
현악기를 중심으로 한 클래식 음악은 이후에 존재하는 변주나 불협화음에서 큰 역할을 하기도 한다. 바이올린과 비올라와 같은 전통적인 현악기와 이에 지지 않는 공간감은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들의 공간이 삶과 죽음 사이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영화 속 음악은 나레티브 자체에 대한 표현 뿐만 아니라 문화적 레이어를 가미하기도 한다. 탱고 및 클래식 풍의 곡들을 적절하게 배치하며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대성과 장소성을 강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트랙 수가 꽤 있는 편이고, 다양한 분위기의 곡이 수록된 만큼, 장면과 음악을 배치해 보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판의 미로]
동일한 음악 감독인 하비에르 나바레테와 함께한 작품인 ‘판의 미로’는 감독의 최고작으로 불리며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악마의 등뼈와 동일하게 스페인 내전 직후, 오펠리아라는 소녀가 잔혹한 현실 속에서 신비로운 미로와 판타지적 존재를 만나며 성장과 구원을 향한 모험을 하는 이야기이다. 기존에는 ‘악마의 등뼈’와 이어지는 시리즈물로 구상되었지만 이내 내용 자체가 바뀌게 되어 현재의 ‘판의 미로’로 재탄생했다고 한다. 앞에서 소개한 ‘악마의 등뼈’와 확연하게 다르게 느껴지는 점은 영화 자체의 동화적 면모이다. 관객에게 판타지와 현실의 경계를 더욱 뚜렷하게 체험하도록 하는 ‘판의 미로’ 속 서정성은 주인공 오필리아의 목소리처럼 느껴지는 허밍을 시작으로 한다. 합창과 피아노 선율, 현악기가 하나되는 트랙 속은 마치 꿈 속을 유영하는 듯한 신비감을 제공한다.
동화적인 선율과 폭력적인 현실의 충돌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이 지점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악기는 하프이다. 초반 사운드트랙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지만, 중간중간 등장하는 하프 선율이 미스터리하면서도 몽환적인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2번 트랙 The Labyrinth는 판이라는 등장인물 자체의 신비성과 공간적 불안정함이 절로 느껴지는 트랙으로 필자가 좋아하는 트랙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가장 압권인 음악은 영화의 가장 마지막 부분에 있다. 오펠리아는 실연을 겪고 최종적으로 판의 세계에서 약속된 왕국의 딸이 되기로 하는데, 이와 대조되는 현실에서는 장교의 폭력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현실과 판타지 세계가 병치되며, 음악은 판의 미로에 있을 때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테마가 지속된다. 부드럽고 서정적인 선율로 희생된 순수함, 그리고 구원의 정서를 보이는데, 현실의 잔혹함이 결합되어 모순적으로 더욱 아름답다.
이처럼 나바레테 감독이 보여주는 영화 음악의 세계는 그만의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그가 음악 생활 초기에 보여준 실험적인 일렉트릭 사운드는 현재 작업하고 있는 여러 오케스트레이션의 기초가 되어준다는 평을 얻고 있다.
곧 세상에 나오게 될 기예르모 감독의 ‘프랑켄슈타인’에서 볼 수 있을 그의 독창성 역시 기대해본다. 이번 음악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과 ‘셰이프 오브 워터’로 합을 맞춘 알렉상드르 데스플라가 참여했다는 소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