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인사이트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시간이 꽤 흘렀다. 매주 한 편의 영화를 붙잡고 나의 시선으로 풀어내는 일을 이어오다 보니, 글은 자연스럽게 아카이빙되어 갔다. 어떤 글은 아쉬움으로 남았고, 어떤 글은 아직 낯설며, 또 어떤 글은 오래 공감의 온기를 지니고 있다. 많지는 않지만, 그 시간 속에서 마주했던 영화들을 다시 꺼내어 이번에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정리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만의 작은 영화제를 기획해보기로 했다. 내가 써온 리뷰들 가운데 몇 편을 골라 색을 기준으로 다시 배치했다. 새로운 해석을 덧붙인 것은 아니고, 나의 시선을 다시 바라보는 작업에 가깝다. 개인의 감상과 해석은 절대 같을 수 없기에 그저 나의 방식대로 생각하고 나눠봤다.
색을 기준으로 나누기로 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예전에 전시를 관람하며 벽면의 색으로 시대를 구분했던 기억이 오래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작품을 설명하는 문장보다 먼저 공간의 색이 기억에 남았고, 그 색은 자연스럽게 감정의 결을 정리해주었다. 흔한 분류법이긴 해도, 영화 역시 장르나 서사보다, 그 영화가 남긴 ‘온도’를 색으로 묶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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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나만의 작은 영화제의 프로그램 노트, 영화제 카탈로그다. 관객이 되어 천천히 동선을 따라 걸어도 좋고, 프로그래머의 마음으로 섹션의 의도를 읽어도 좋다. 어쩌면 이 작은 큐레이션은, 내가 어떤 영화를 어떻게 타인에게 소개하고 싶은지 보여주는 또 하나의 재미난 기록이 될 것 같다.
RED: 가장 사람에 가까운 색
빨강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색이다. 피의 색이고, 상처의 색이며, 생명과 동시에 죽음의 색이기도 하다. 영화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와 <시라트>가 이 섹션을 구성한다. 두 영화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메인으로 내세운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두 영화 모두 ‘빨강’이라는 색채에 더할나위 없이 어울리는 영화이지만 각기 다른 맥락으로 해석될 수 있다.
영화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는 피로 맺어진 관계, 가족에 대한 세 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인물들 사이를 흐르는 감정의 결 역시 피처럼 진하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묶여 있지만, 그 관계는 마냥 따뜻하거나 냉소적인 방식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피로 이어졌지만 조금은 어색한, 사실은 감추는 것이 많은, 혹은 진심으로 의지하는 서로의 모습을 드러내며 관객들의 공감을 자아낸다. 때문에 이 영화의 빨강은 상징이면서 동시에 감각이다. 사람과 가장 가까우며 혈연이라는 물리적 연결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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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라트>는 죽음과 폭발, 전쟁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다른 무엇보다 화면 자체가 품고 있는 에너지가 끓듯이 뜨거워서 영화가 관객을 강렬함으로 압도한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린다고 본다. 차분히 감정과 상황을 쌓아가는 듯 보이다가 순식간에 관객을 한가운데로 밀어 넣는다. 인물들이 서 있는 자리 자체가 점점 극단으로 치닫는다. 그래서 이 영화의 빨강은 생과 사가 맞닿아 있는 경계의 색, 그리고 상황 자체의 강렬한 비유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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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 표면보다 뜨겁고 깊은 색
파랑은 겉으로는 차분해 보이지만, 가장 깊은 곳에서 타오르는 색이다. 불꽃이 가장 뜨거워질 때 푸르게 변하듯, 감정 역시 극단에 다다르면 오히려 차갑게 보인다. 피부 아래 물든 멍의 자국이며 우울의 색이기도 하다. 영화 <나의 이름은 마리아>와 <위플래쉬>가 이 섹션을 구성한다. 두 영화는 폭력과 그에 얽힌 자들을 다룬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또한 이 영화 속 피해자들은 모두 푸른 불꽃을 튀기며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세상 앞에 나선다.
영화 <나의 이름은 마리아>는 영화 산업에서 발생했던 폭력의 피해자를 다루었다. 단순히 우울이라는 단어로 묶을 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는 단순히 사건의 자극성과 우울에 집중하지 않는다. 가해자의 스토리를 궁금해하지도, 애써 설명하려 하지도 않는다. 오직 ‘피해자’에게 집중하여, 그녀의 삶과 인간으로서 그녀의 모습을 비극적이지만 담담히 풀어낸다. 그녀가 꿋꿋이 견뎌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시간을 통과했다는 사실이 만들어내는 묵직한 힘이야말로, 붉게 타오르기보다, 깊고 조용하게 타오르는 푸른 불꽃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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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위플래쉬>는 예술계의 냉혹함과 사제간의 폭력과 신경전을 다루었다. 몰입력이 굉장히 뛰어나며 상당히 집요하다. 집요함은 정밀하고 차갑게 응축된다. 스승과 제자 사이의 폭력적인 긴장, 재능을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강박, 예술계의 냉혹함. 그 모든 장면은 마치 마지막 시퀀스의 핵폭발을 위해서 차곡차곡 쌓는 푸른 빛의 점화 과정처럼 느껴진다. 때로는 격렬하게, 때로는 냉소적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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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 뜨거움과 차가움 사이에서
보라는 단순한 색이라기보다 빨강과 파랑, 두 온도가 겹쳐진 상태에 가깝다. 빨강의 체온과 파랑의 냉기가 완전히 섞이지 않은 채 공존하는 순간. 그 모호함이 굉장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과 <컴패니언>이 이 섹션을 구성한다. 두 영화는 뜨거움과 차가움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다만, 그 비율과 출발점에서 차이를 지니고 있다. 어떤 영화가 어떤 비율을 지녔는지는 개개인의 해석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붉은 보라빛의 영화와 푸른 보라빛의 영화를 모두 확인할 수 있다.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겨울에 피어오른 인간의 따뜻한 본성을 다루었다. 겨울의 추운 밤, 석탄의 더운 열기, 그리고 크리스마스라는 상징적 시간은 화면 속에서 조용히 일렁인다. 겉으로는 차갑고 절제되어 있지만, 그 안에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작은 온기가 분명히 존재하는 보랏빛 경계에 놓여 있다. 차가운 밤이 서서히 아침으로 넘어갈 때 잠시 머무는 빛처럼, 묘하게 보라빛을 띠는 순간을 딱딱한 석탄과 낭만적인 크리스마스의 대조 아래에서 영민하게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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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컴패니언>은 인간과 유사한 피지컬 AI와 진짜 인간 사이의 갈등으로 진정한 인간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루었다. 인간의 감정과 기계의 논리가 섞여 있기에 빨강으로 상징되는 인간의 욕망과 충동, 파랑으로 상징되는 기계의 냉정함이 한 화면 안에서 공존한다. 영화는 그 둘을 대립시키기보다, 묘하게 뒤섞는다. 그래서 관계는 익숙하면서도 낯설고, 더 잔혹하면서도 매력적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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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에디터로서 한 편씩 써 내려간 글들은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축적되었다. 이번 큐레이션은 그 기록들을 다시 읽어보며 나의 취향과 시선을 재확인하는 자리였다. 앞으로 또 다른 색이 더해질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는 이런 온도의 영화들을 오래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아트인사이트에 남긴 기록들은 그렇게 나의 작은 영화제가 되었고, 아마도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앞으로 더 나아질 나의 모습과 나의 큐레이션을 셀프로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