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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영화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짐 자무쉬의 영화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는 세 개의 가족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는다. 서로 다른 공간, 다른 세대, 다른 관계로 구성된 이야기들이지만, 영화는 대사와 색감, 반복되는 상징을 통해 이들을 느슨하게 연결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누군가의 부재가 놓여 있다.
내가 모르는 행복에 대한 안심
첫 번째 이야기는 ‘파더’다. 혼자 사는 노인 아버지를 찾아온 중년의 남매는 그를 여전히 다 알지 못한다. 아버지는 실없는 농담을 하고 외로워 보이며 형편이 어려워 아들의 용돈에 의지해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집을 정리하는 그의 모습은 청소라기보다는 괜히 무언가를 숨기는 행위에 가깝다. 남매가 집을 떠난 뒤에야 드러나는 진실은 웃음을 자아낸다. 아버지는 검소한 척했을 뿐, 사실은 멀쩡한 차도 있었고 연인도 있었으며, 가짜라고 했던 롤렉스 시계는 아무래도 진짜인 모양이다.
이 에피소드는 묘한 안심을 남긴다. 부모를 부모로서만 알고 살아온 자식에게, 그들이 한 사람으로서의 삶을 따로 살아왔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이상하게도 불안보다는 위안을 준다. 자식이 모르는 고통과 어려움이 있겠지만, 그 동시에 자식이 모르는 귀여운 비밀과 자기만의 소소한 기쁨을 간직한 삶을 산다는 것. 그 비밀이 불러오는 건 배신감이 아니라 묘한 안도감에 가깝다.
노력해도 어색한 건 어쩔 수가 없다
두 번째 이야기는 ‘마더’다. 두 딸과 어머니는 최근 들어 관계를 회복하려 애쓰는 중이다. 어머니는 상담을 받고, 식사를 준비하고, 두 딸에게 안길 케이크까지 챙긴다. 딸들 역시 노력한다. 하지만 이들의 대화와 행동에는 늘 어색함이 배어 있다. 특히 작은 딸은 이 집의 분위기와 끝내 섞이지 않는다. 그녀의 핑크빛 탈색 머리와 어딘지 모르게 과감한 행동은 조용하고 우아한 집과는 어딘가 동떨어져 보인다. 어머니는 딸들의 거짓말과 핑계를 눈치챈 듯 보인다. 하지만 무릇 어머니들이 그렇듯, 괜히 들추지 않고 모르는 척한다. 딸들 역시 그런 어머니의 시선을 느끼지만, 끝까지 온전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가족에게 사랑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그들의 눈빛은 서로를 염려함과 동시에 염려를 끼치고 싶어하지 않아보인다.
당장 감당하지 않아도 돼
마지막 이야기는 ‘시스터, 브라더’다. 불의의 경비행기 사고로 부모를 갑작스레 잃은 쌍둥이 남매는 파리에서 부모의 집을 정리한다. 이들은 앞선 두 가족과 달리 유난히 다정하고 이상적인 남매처럼 보인다. 서로를 믿고, 티격태격하면서도 애정을 숨기지 않는다. 새끼손가락에 낀 비슷한 반지는 이들이 얼마나 닮아 있는지를 말해준다. 그러나 이 이야기 역시 부재를 중심에 둔다. 부모님이 떠나간 집에서 그들의 흔적을 느끼며 생각에 잠긴 스카이는 슬픔을 감추지 못한다. 반면 빌리는 담담하게 그녀를 위로한다. 부모님의 짐을 옮겨둔 낡은 창고 문 앞에서 스카이는 말한다.
"지금 당장 감당해야 해?"
빌리는 말한다.
“지금 당장 감당할 필요는 없지.”
그리고 둘은 부모님의 짐을 정리하지 않은 채 창고 문을 닫고 돌아선다. 모든 것을 알아야만 애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당장 짊어지지 않아도 되는 슬픔이 있다는 사실을 이 에피소드는 조용히 보여준다.
같은 색을 입고, 같은 물을 마시며
이 세 이야기를 관통하는 것은 반복되는 빨강과 물이다. 등장인물들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같은 색의 옷이나 액세서리를 착용하고, “우리 비슷한 옷 입었네”라는 대사를 주고받는다. 특히 빨간색은 피와 혈연을 떠올리게 한다. 서로 어색해하며 거리를 두어도 이미 연결되어 있는 핏줄이 이어진 관계로, 빨강은 이 영화에서 따뜻한 가족애보다도 부정할 수 없는 연결의 흔적처럼 작용한다.
물 역시 끊임없이 언급된다.
“물은 가장 순수한 음료다.”
“물 맛이 곧 차 맛이다.”
“물은 약이다.”
물은 모두에게 필요하지만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마시지는 않는다. 수돗물, 정수, 텀블러 등, 같은 물이라도 각자의 방식이 있다. 혈연이 주어진 연결이라면 관계를 유지하는 방식은 선택의 문제다. 세 번째 이야기에서 빌리가 빨간 텀블러에 담긴 물을 마시는 장면은 이 두 상징이 겹쳐지는 순간처럼 보인다. 피로 연결된 관계를 각자의 방식으로 삼켜내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끝내 말하는 것은 가족의 이상이 아니라 부재 이후에도 계속되는 삶의 태도다. 우리는 부모를, 형제를, 자식을 끝내 다 알 수 없다. 그러나 알지 못해도, 모두 감당하지 않아도, 그럼에도 우리는 같은 색을 입고 같은 물을 나누며 계속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