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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페미니즘의 등장은 세상을 바라보던 지금까지의 시각을 바꾸었다. 남성주의적 사회를 폭로하는 페미니즘은 당연하게 여겨졌던 사회 구조와 기준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이를 뒤바꿀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한국 사회는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로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살아왔음을 되돌아보고, 이를 뒤바꾸고자 노력해왔다. 그렇게 대표적으로는 탈코르셋 운동이 일어나고, 성범죄 피해를 폭로하는 미투운동 역시 일어나며 지금까지 감추어져 있던 폭력과 혐오가 언어화되어 드러났다.

  

그렇다면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떠한가. 10년이라는 시간은 페미니즘의 파도가 만들어 낸 충돌의 현장을 그대로 목격하는 시간이었다. 10년이라는 시차를 둔 현재와 리부트 당시의 페미니즘은 확연히 다른 모습을 띄고 있다. 여전히 젠더갈등도 치열하다. 이제는 기존의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 이분법을 다시 한번 뒤트는 퀴어들을 마주하며, 이제 현 세대의 페미니즘은 어떻게 변화해가고 있는 것일까. 페미니즘의 마주한 후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화했으며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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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의 시차>는 페미니즘을 선악과에 비유한다. 낙원인 에덴 동산에 살던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먹은 후 선과 악을 알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죄로 낙원에서 쫓겨나 끊임없는 대립과 갈등이 가득한 삶을 살게 되었다. 연극은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를 활용해 선악과를 먹기 전, 즉 페미니즘이 가시화되기 이전의 시기와 그 이후의 시기를 연결지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사건은 우서대학교 총학생회장 단일 후보로 출마한 오민혁의 교제폭력에 관한 제보가 접수되고, 비상대책회의가 열리며 시작된다. 대책위 위원 이상훈과 표나영, 가해지목인 오민혁, 그리고 피해호소인 백이수의 대리인 장혜주까지 총 4명이 참석한 가운데 고등학교 시절 오민혁의 교제폭력에 대한 판단과 앞으로의 대처를 고민하는 논의가 이루어진다.


백이수의 동창인 장혜주는 과거 학교 선생과의 그루밍 성폭력 피해자였으며, 피해자로 정의하고 사건을 공론화시킨 자신과 같이 이수 역시도 오민혁의 교제폭력을 폭로할 것을 종용한다. 하지만 이수는 스스로를 피해자로 정의하지 않으며, 민혁의 행동이 교제폭력이 맞는지 혼란스럽다. 교제 당시 오민혁과의 나이 차, 그리고 권력의 차이가 두 사람의 관계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민혁이 성관계 전 이수의 의사를 명확하게 묻지 않고, 신뢰를 꺠뜨리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백이수가 스스로를 피해자로 정체화하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게 의사 표현을 하지는 않았지만 자신 역시도 성관계를 원했다는 점, 그리고 오민혁이 피해를 준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 역시도 상해를 입히는 식으로 정리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수는 민혁에게 상처를 내는 등 명백한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관계가 문제시되지 않았던 것은 당시의 백이수와 오민혁 모두 둘 만의 기준으로 서로를 정의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페미니즘이 등장하며 둘 사이의 불명확하고 불확실한 기준 대신 더 명료한 기준이 제시된다. 그리고 사회에서는 이 기준에 더욱 힘을 싣는다. 그 기준에서 오민혁이 이수의 명확한 의살르 묻지 않은 것, 전 애인과의 관계를 명확히 정리하지 않고 만남을 이어온 것은 오민혁의 완전한 잘못이 된다. 그리고, 장혜주는 이 부분을 파고들어 오민혁을 공론화하고자 한다.


선악과를 먹고 난 후 이들의 삶은 완전히 뒤바뀐다. 장혜주는 자신의 일을 그루밍 성폭력으로 정의하고 적극적으로 공론화에 나선다. 그런 혜주에게 페미니즘은 자신의 피해를 명확히 언어화하고 공론화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이다. 오민혁은 이후 이수와의 관계를 되짚어보며 인권의제를 적극적으로 공부하는 모습을 보이며, 공론화 이후 자신이 정말 가해자가 맞는지 확인받고자 한다. 그리고 이수는 자신이 지금까지 느껴왔던 감각에 의문을 가지며, 이 모든 상황을 조망하는 위치에 선다.


선과 악을 따지기 시작한 이들의 모습과 구도에서 누가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용기 있는 모습을 보여준 장혜주는 백이수 본인의 의사를 존중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힘을 잃으며, 오민혁의 행동은 두 사람의 기준에서는 가해가 아니었다. 피해자로 보호를 받는 백이수는 오히려 두 사람의 관계에서 높은 권력을 차지하고 있는 가해자로 보이기도 한다. 모든 문제의 시작인 과거가 직접적으로 연극 내에서 형상화되기에, 관객은 이들을 선과 악 그 어느쪽으로도 판단하기 힘든 상황에 놓인다.


관객과 함께 이들을 판단해야만 하는 대책위 위원들도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다. 부위원장 표나영과 같이 페미니즘의 언어로 사건을 바라본다면, 오민혁은 말할 것도 없이 가해자이며 총학생회장으로서의 자격이 없다. 그러나 위원장인 이상훈은 이미 오민혁은 가해자라는 답을 내려놓고 문제를 마주하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한다. 그러나 페미니즘의 언어가 지배적인 위원회 안에서 오민혁의 유죄는 10분만에 만장일치로 결정되며, 이상훈의 문제제기는 생물학적 남성이라는 이유로 묻히고 만다. 이상훈은 자신이 남성이 아닌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라고 밝히며 반박하지만, 성별은 생물학적으로 정해진다며 화장실 문제를 꺼내는 나영의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열매의 시차>는 사건을 둘러싼 이들의 선악을 판단하기보다는 모호해진 선악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들을 그려내는 데 중점을 둔다. 과연 현재를 살아가는 관객은 이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페미니즘의 언어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밝혀내기 위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이를 고민하며 새로운 언어를 찾아나가는 간격을 연극에서는 새로운 선악과가 자라나기까지의 시차로 비유한다.


 직접적으로 사건과 연계된 이들이 판단이 모호한 상태에서, 사건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으며 관객과 함꼐 판단을 내려야만 하는 위원들에게 시선이 간다. 이상훈과 같이 기존의 성별 이분법 구조에 명확하게 포함되지 않는 존재의 등장은 성별 이분법을 명확하게 따르고 있는 페미니즘의 세계에 있어 새로운 선악과의 등장을 암시한다. 연극 밖의 세상 역시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10년, 이제는 젠더를 두고 여러 의견과 치열한 갈등이 존재한다. 시차가 있다는 말은 기존의 것과 비교되는 새로운 무언가가 존재함을 말한다. 극은 새롭게 등장할 선악과를 예고하며, 선악과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해야 함을 제시하며 끝난다.


이상훈과 표나영이라는 인물의 존재는 페미니즘이 범하는 또 다른 타자화의 문제를 보여준다. 남성권력으로부터 여성을 보호하고자 하는 태도는 이분법 구조에 포섭되지 않는 존재를 한번 더 타자화하며, 페미니즘 이전 남성 권력이 그랬던 것과 같이 다른 존재에게 폭력을 가하는 행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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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10년, 페미니즘이 처음 등장했을 때 기존의 사회 구조가 남성중심적임을 폭로하는 쾌감과 잘못 살아왔다는 놀람의 시간은 지나고 이제 새로운 언어라는 또 다른 도구를 들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해야만 하는 시기가 되었다. <열매의 시차>가 포착했듯 페미니즘 이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다르며, 기존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젠더 자체에 관해서, 그리고 새로운 권력에 구도에 대해 생각해보아야만 한다.


현재와 과거를 명확하게 포착해내어 극화시키면서도, <열매의 시차>에서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과거의 낭만화이다. 극에서 페미니즘이 등장하기 전의 세계는 걱정도 없었던, 마치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기 전의 낙원과도 같은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지금에 와서는 여러 방면으로 논의가 되고 있는 문제라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페미니즘이 공론의 장을 열었음을,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의의이다. 현재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 과거를 향한 낭만화가 된다면, 미래로 시선을 돌리기 어려워진다. 페미니즘의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 과거를 형상화하는데 있어서는 조금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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