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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재능이 없어도 예술을 할 수 있을까요 [만화]

애니메이션 〈왼손잡이 에렌〉

by 정진영 에디터
2026.07.29 20:08

개인적인 이야기로 시작해 볼까. 초등학교 때 나는 화가를 꿈꿨다. 방과후 미술 수업이 재밌었고 선생님도 나에게 칭찬해 주었다. 하지만 한 아이의 그림을 보는데 정말 하늘이 무너진 것 같았다. 걔는 이미 화가였다. 아마 이런 경험을 예술가라면, 예술을 꿈꾸는 이라면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아니, 지금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기 전에 고민하겠지, 재능과 예술의 상관관계에 관해서. 여기 같은 고민을 안은 한 청년이 있다. 바로 애니메이션 〈왼손잡이 에렌〉의 주인공 아사쿠라 코이치다.


이야기는 아사쿠라가 고등학생일 때에 시작한다. 아사쿠라는 자기가 가장 잘 그리는 줄 알았다. 적당히 잘 그려서 적당한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 했다. ‘천재’ 에렌과의 만남 전까지는. 에렌은 뛰어난 그림 실력과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심미안을 가진 그야말로 ‘천재’다. 에렌이 길을 가던 중, 미술 공모전 우수작들의 포스터가 붙은 벽을 보게 된다. 그런데 그림들이 너무 형편없다. 이에 분노한 에렌은 그 위에 그라피티로 그림을 그린다. 이건 진짜 그림이 아니라고. 다음 날, 에렌의 그림은 동네에 떠들썩하게 화제가 된다. 궁금한 마음에 그림을 보러 간 아사쿠라는 그곳에서 충격을 받고 만다. 나보다 잘 그리는 애가 존재하다니!


아사쿠라는 에렌의 그림을 보고 더 잘 그리고 싶어 한다. 하지만 에렌을 만나게 되면서 아사쿠라는 자기가 못 그린다는 사실을 마주한다. 아무리 열심히 그려도 에렌보다 부족할뿐더러, 다른 입시생들보다 한참을 못난 실력이다. 에렌은 화를 내며 말한다. 재능이 없는 사람이 (예술에) 인생을 걸어봤자 불행해질 뿐이라고. 그런 에렌에게 아사쿠라는 울면서 말한다. 나는 뭔가가 될 거라고. 그게 뭔지 모르지만, 뭔가가 되고 싶다고. 뭔가 되지 못하면 지루해서 못 살 것 같다고.


아사쿠라는 그렇게 평생 ‘재능’과 부딪힌다. 아사쿠라에게도, 우리에게도 재능은 너무나 결정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옆에 에렌이 있으니 더 그렇다. 아사쿠라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에렌처럼 되고 싶지만 우리 모두 그럴 수 없다는 걸 안다. 재능은 타고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탄생만으로 얻을 수 있는 재능은 놀랍게도 우리에게 예술을 할 수 있는 자격증처럼 느껴진다. 재능이 없으면 예술을 할 수 없을 것만 같다. 주변 인물들은 아사쿠라가 미대에 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에서 재능이란 출발선이자 자격증이다. 가진 사람만 발휘할 수 있는 정당한 반칙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지지 못한 사람에게는 영원히 쫓아야 하는 결승선이고 동시에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이데아다. 그렇기에 곱씹을수록 아픈 고통이다.


아사쿠라는 운이 좋게 미대에 들어간다. 모두 아사쿠라의 합격을 운이라고 말한다. 그가 재능이 없기 때문이다. 아사쿠라는 역시 운이 좋게 본인이 원했던 광고 회사에 들어간다. 빛나는 디자이너가 되리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광고 회사에 들어간 아사쿠라는 천재 팀장과 뛰어난 후배 사이에서 재능이 없음을 실감한다. 그러다 자기에게 남은 것은 근성밖에 없다며 최선을 다한다. 그렇게 근성밖에 없다는 걸 증명하려다가 기절하기까지 하지만 말이다. 아사쿠라는 그렇게 노력한다면 천재 팀장에게 인정받고 에렌과 같은 풍경을 바라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광고 회사의 일이란 그리 간단치 않다. 하나의 작품에도 세 사람의 아이디어가 동시에 들어가고, 이 아이디어가 오직 팀장의 것으로 칭송받기도 한다. 잘했으면서도 경력을 이유로 중요한 프로젝트에서 빠지거나, 전혀 관계없는 영업의 일을 뛰어야 하기도 한다.

 

 

왼손잡이 에렌_!.png

 

 

아사쿠라는 이런 일들을 예술이라고 생각할까. 적어도 자기가 꿈꾸는 예술과 멀어 보이지만, 아사쿠라가 마주한 일들이야말로 지금 이 시대에서 예술이 굴러가는 방식이 아닐까. 사회가 분화하고 복잡해진 만큼 예술 역시 어려워졌다. 산업과 자본은 예술과 밀접해 있고 조직이란 이름으로 여러 공정을 거쳐서 예술이 이뤄진다. 신성한 영역처럼 고고하게 솟은 예술의 시대는 갔다. 하지만 어쩐지 예술을 이야기할 때면, 우리는 여전히 한 사람의 재능을 논하고 한 사람의 예술성을 논한다. 예술이 특정한 예술가의 소유물인 것처럼 말이다. 이제 한 사람의 재능으로 예술을 말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듯 말이다. 재능의 발휘로 완성되는 예술만이 예술이라는 듯.


번번이 재능의 벽 앞에서 좌절하던 아사쿠라는 아트디렉터라는 명함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자 혼자만의 세계에 빠진다. ‘잡음을 없애는 것’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귀 기울이지 않고 오로지 혼자서 모든 일을 쳐내는 것을 자기의 일로 즉 예술로 인식한다. 어쩌면 이는 재능을 강조하는 예술의 시대가 예술가에게 요구하던 길일지 모른다. 그러다 아사쿠라는 자기 의견을 무시하던 다른 천재 예술가들과 의견 조율이 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렇게 갈등이 발생한 끝에 아사쿠라는 자기가 그렇게 살았음에도 이들처럼 되지 못했음을 알고 촬영 중간에 빠져나온다. 그곳에서 운명처럼 에렌과 재회한다. 여전히 그라피티를 그리고 있는 에렌을. 에렌은 그림을 통해서 코이치에게 이렇게 말한다.


믿는 건 언젠가 꿈이 이뤄지는 것도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도 아냐.

언젠가 떠올렸을 때 자부할 수 있는 걸 믿어!


아사쿠라는 다시 촬영장으로 뛰어가서 사과한다. 재촬영을 부탁하며 허리를 숙인다. 그러자 모두가 아사쿠라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의견을 구한다. ‘아트디렉터님,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하면 될까요?’ 그렇게 아사쿠라는 천재가 되지 못했지만, 근사한 아트디렉터로 거듭난다. 아사쿠라를 그렇게 만든 건 아주 환상적인 재능이 아니다. 책임감과 동료들에게 사과하는 법이었다. 아사쿠라가 근사한 아트디렉터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우리는 목격한다. 예술가로 살아가는 데에 재능보다 더 필요한 게 있을지 모른다고.


아사쿠라는 광고 회사에서 내내 재능의 벽에 부딪히면서 변변치 않은 작품을, 때로는 칭찬받는 작품을 내놓는다. 그 과정에서 동료들과 소통하고 때론 갈등하고 화해한다. 그 과정이 모두 아사쿠라의 작업이었고 예술이었던 게 아니었을까. 재능이란 환상 속에서 우리는 옆에 있는 동료들을, 그 동료들 앞의 우리를 보지 못했던 건 아닐까. 아사쿠라는 앞으로도 멋진 예술가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예술가다. 그가 예술을 한다면, 동료들과 함께 머리를 모은다면, 그렇게 고민하고 수정한 끝에 모두의 시간을 모은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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