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과 웹툰, 심지어 드라마까지 ‘회빙환’은 이제 공식과도 같은 것이다. 과거로 돌아온 주인공이든, 새로운 누군가에 빙의한 주인공이든, 다시 태어난 주인공이든 간에 이제 그들은 이전의 삶을 벗어던지고 더 나은, 더 강한 삶으로 도약한다. 잠깐, 그 순간을 떠올려보자. 당신이 봐왔던 많은 작품에서 주인공들이 다른 삶과 기회로 넘어가는 바로 그 순간 말이다. 보통은 ‘죽음’이다. 억울하게 죽고, 분통하게 죽는다. 그런데 궁금해진다. 주인공 입장에서 이전의 삶이 아주 끔찍했다고 해도 정말 아무도 그들을 그리워하지 않을까? 전생을 한 사실도 모른다면 누군가는 그들을 위해서 울고 있지 않을까? 남아 있는 이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만화〈우리 아들이 이세계 전생을 한 것 같아〉는 바로 이 질문과 직면한다. 아들을 잃은 여자 ‘미오’는 고등학교 동창이자 엄청난 오타쿠인 ‘도바라라는 남자를 찾아온다. 여자는 남자를 만나자마자 이렇게 말한다. “우리 아들이 이세계로 전생을 한 것 같아.” 열일곱 살 아들은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차에 치여 사망했다. 아들이 죽고 방을 정리하는데 방에 가득 꼽힌 소설들은 전부 라이트노벨이나 애니메이션들… 거기에는 이세게로 갔다는 이야기가 많았고 그러다 보니 생각이 들었다. 아들은 이세게로 간 게 틀림없다고. 그렇게 말하는 여자를 보고 남자는 생각한다. 아들을 잃어 미쳤구나. 하지만 여자는 강하게 밀어붙인다. 나 미친 거 아니고 아들을 이세계로 돌아올 방법을 찾아보자고. 남자는 갑작스레 찾아온 고교 동창인 여자가 슬픈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사랑에 가까운 감정이 아닌, 회피다. 회사와 집을 오가면서 사람과 엮여오지 않았던 오타쿠인 남자는 사람이 죽는 것도, 슬퍼하는 것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이세계로 가는 여정을 나선다.
두 사람은 남자 집의 책장에 꽂힌 책을 읽으며 이세계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본다. 소설 속에서 전생한 그곳에 직접 가보거나 서점에 가서 신작을 읽어본다. 그러면서 서로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여자는 인생이 내내 재미없었고, 남편과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털어놓는다. 그러다 처음으로 아들 때문에 재밌었다고. 남자는 한때 자기가 소설을 써서 출판사 편집자와 미팅을 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러나 곧 연락이 끊겼고, 공모도 번번이 떨어져서 꿈을 포기하게 되었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들의 결핍을 말해준다. 여자는 아들을 잃었고 동시에 사는 의미를 잃었다. 남자는 꿈을 잃었고 동시에 자기가 주인공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이러한 결핍은 이세계로 가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즉 그들은 결핍을 채우기 위해서 이세계를 꿈꾼다. 그들은 같은 ’이세계‘를 찾아 헤매지만, 두 사람의 이세계는 다른 모습이다. 여자에게 이세계는, 아들을 만나서 이룰 진정한 행복의 공간이다. 남자에게 이세계는 한때 포기한 꿈이 있는 공간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이세계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이세계는 당연히 찾아질 리 없다. 두 사람은 불가능한 일을 할 뿐인 것이다.
그러나 여정의 중간중간 두 사람은 새로운 걸 발견하기도 한다. 여자는 남자에게 자기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그러면서 은근하게 자기의 죄책감을 내보인다. 아들이 현실이 너무 싫었기 때문에 이세계를 꿈꿔서 그런 책들을 많이 읽는 건 아니었을까. 남자는 그럴 리 없다고 말하며 이세계를 좋아하는 이유를 말해준다. 여자는 남자 덕분에 아들이 살아있을 적 꿈꾼 세계를 엿본다. 남자는 한때 쓰다 포기했던 원고를 여자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면서 자기를 한심하게 생각하는 증거물이었던 원고가 좋아하는 마음의 증거가 될 수 있음을 안다.
그렇게 이세계를 찾기 위해 모든 공간을 헤매지만, 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여정의 중간에 두 사람은 한 방에 묵게 된다. 그날 밤에, 여자의 꿈에 아들이 나온다. 여자는 아들을 향해서 가지 말라고 소리치지만, 아들은 듣지 못하고 유유히 떠난다. 그렇게 여자는 다시 아들을 놓친다. 꿈에서 깬 여자는 넋을 놓고 다리로 향한다. 잠시 후 역시 잠에서 깬 남자. 여자의 수첩에서 여자가 다리로 간다는 증거를 발견하고는 급히 다리로 뛰어간다. 남자는 다리에 도착하고 아슬아슬하게 난간에 걸터앉은 여자를 발견한다. 죽을 거라는 여자를 남자는 난간에서 털어뜨려놓는다. 그리고 참아왔던 말을 한다. 그 말은 마치 자기에게 향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저는 진심으로 그 세계를 좋아해요. 저에게 이 세계는 구원이고 동경이고 정말 멋진 곳이에요. 그래서, 이세계가 꿈처럼 행복하지만 지어낸 이야기라는 걸 알고 있어요.
여자는 그곳에서 자기가 아들의 이름을 사망신고서에 적었고 자기가 그를 죽인 걸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을 쏟아낸다. 남자는 여자에게 그의 탓이 아니라고 사고 때문이라고 확실히 말해준다. 두 사람은 엉엉 울면서 감정을 털어놓는다.
그들은 자기가 꿈꾼 이세계가 없었음을 인정한다. 그렇다면 이 여정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을까? 이 여정은 여자에게 그 자체로 죄책감과의 이별이었다. 아들에게 대답을 들어야 한다는 집착에서 벗어나는 과정은 애도이기도 했다. 아들이 좋아하는 세계를 훑어보는 그 과정에서 아들의 마음을 짚어봤다. 남자에게 이 여정은 자기의 꿈과의 재회였다. 자기가 얼마나, 어떻게 이세계를 사랑했는지 그 방식을 들여다보고 또 다른 좋아하는 방식을 찾아보기도 했다. 이제 그들의 이세계는 없다. 동시에 여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에겐 타이가(아들)가 없는 지금이 이세계나 마찬가지야.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새로운 이세계로 향하는 여정이다. 여자는 아들이 없어도 잘 사는 이세계를 꿈꾸겠지만, 이로 가는 여정은 매우 힘들 것이다. 이세계를 찾는 것만큼이나. 그러나 여자는 죽지 않겠다는 말로 이 여정을 포기하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남자 역시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다시 쓰기로 한다. 두 사람 모두 이 세계로 향하는 여정이 어떤 건지 알았으니 새로운 이세계로 여정을 나설 수 있다.
우리는 때로 새로운 세계를 꿈꾼다. 현실은 너무나 괴롭고 심지어 주인공이 내가 아닐 때도 있다. 그럴 때 이세게를 꿈꾸는 일은 필연적인 동시에 바보같아 보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곳은 전혀 도달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이 세계로 향하는 과정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도달할 수 없을지라도 나서는 발걸음에서 우리는 누군가와 만나서 지금 내 가방 안에 있던 소지품을 소중하게 여기는 법을 배우게 될 지도 모른다. 그뿐일까, 내가 버려야 할 짐을 발견하고 그것을 버리고 홀가분하게 나서는 법을 배울지도 모른다. 이별과 만남, 버림과 발견이 교차하는 이 여정, 이세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