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Review] 뿌이뿌이! 평범한 것들의 이상한 변신 - 서울인디애니페스트 2026 [영화]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드는 상상력

by 김수민 에디터
2026.09.29 18:40
이 브라우저에서 최근 읽은 글입니다.
      이전에 읽던 글입니다.

      서울인디애니페스트2026 트레일러 스틸컷.jpg

       

       

      〈사랑의 하츄핑〉과 같은 대형 작품이 우리나라 극장에서 큰 흥행을 거두는 가운데, 여기 독립 애니메이션의 가치에 주목하는 영화제가 있다.


      올해 22회를 맞이한 서울인디애니페스트는 독립, 실험, 열정, 비전의 가치를 내세우며 다양한 한국 독립 애니메이터들을 위한 장을 마련하고 있다. 한국 유일의 독립 애니메이션 영화제인 서울인디애니페스트는 이제 아시아의 다양한 작품들에도 주목하며 세계적 영화제로 나아가고자 한다.


      9월 20일, 해외 초청의 '토모키 미사토: 천진난만한 영웅과 애잔한 악당들의 세계'와 '한국 파노라마: 파란만장 종합미디어상가'를 관람하게 되었다.

       

       

       

      토모키 미사토: 천진난만한 영웅과 애잔한 악당들의 세계



      06[0].jpg

       

       

      폭넓은 작품 세계를 자랑하는 일본의 스톱모션 연출가 토모키 미사토. 그의 학부 졸업 작품부터 최신 작품까지 모은 섹션이 ‘토모키 미사토: 천진난만한 영웅과 애잔한 악당들의 세계’이다. 이 섹션을 감상하게 된 것에는 〈뿌이뿌이 모루카〉라는 작품이 계기가 되었는데, 귀여운 캐릭터들 사이에서 우리의 일상 속 쌉쌀한 면들이 언뜻언뜻 비치는 부분이 인상적이어서 이전부터 좋아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토모키 미사토의 작품은 AI 시대에 인간의 손길이 담긴 스톱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점 외에도 주목할 부분이 많다. 앞서 설명한 〈뿌이뿌이 모루카〉와 같이 귀여운 작품에도 어딘가 차가움이 느껴지고 공포스러운 작품에도 따뜻함과 웃음이 담겨있다. 이 모순적인 단어들이 조화를 이루는 그의 작품 세계를 두 작품을 통해 들여다보자.



      〈My Little Goat (나의 어린 양)〉

       

      03[169].jpg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그림 동화 늑대와 일곱 마리 아기 염소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원작 동화에선 아기 염소들이 늑대의 배에서 금방 구해져 어미 양과 아기 양들이 행복하게 살게 된다. 여기서 ‘만약 늑대의 배에서 소화가 꽤 진행되고 어린 양이 구해졌다면?’이라는 상상을 더 해 나의 어린 양이라는 작품이 만들어졌다.


      늑대 배 속에서 6형제들은 구해지지만, 첫 번째로 잡아먹힌 첫째 양 ‘토루코’는 끝내 배속에서 찾지 못하는 것이 영화의 첫 장면이다. 이후 어미 양이 토루코라며 한 남자아이를 집으로 데려오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절대로 문을 열지 말라며 어미 양이 신신당부한 후 남자아이를 찾으러 온 아버지가 등장한다. 유괴당한 아이를 찾으러 온 선량한 부모처럼 보였던 아버지가 아이에게 폭력을 가하려 하며 늑대로 변신하게 된다. 작품은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변환점을 맞이한다. 〈나의 어린 양〉에서는 낯선 늑대가 사실은 너무나도 가까운 존재인 아버지로 그려지며 ‘낯선 사람에게 문을 열어주면 안 된다.’라는 원작 동화의 교훈을 비튼다. 낯선 이에 대한 공포로 알려진 동화를 비틀어 가정폭력을 이야기하며 그 주제가 더욱 선명해진다.


      그리고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이 다음 장면에서 등장한다. 늑대의 폭력에 맞서 아기 양 7마리가 합체하여 어미 양과 함께 늑대를 물리친다. 여기서 양들이 합체하는 장면은 관객에게 웃음을 유발하는 동시에 작품 전체에 감돌던 긴장감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 이 잔혹 동화 같은 이야기 속에도 따뜻함을 담아내며 상반된 키워드를 조화롭게 엮어낸 인상적인 작품이다.

       


      〈My Melody & Kuromi (마이멜로디 & 쿠로미)〉

       

      09[0].jpg

       

       

      산리오의 인기 캐릭터 마이 멜로디와 쿠로미가 각각 가게를 열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리는 〈마이 멜로디 & 쿠로미〉는 넷플릭스와 함께한 작품이다. 대형 회사와 함께한 만큼 완성도 높은 세트와 카메라 워킹이 돋보인다.


      더하여 귀엽고 순수하기만 할 것 같은 산리오 캐릭터에게도 의외의 요소를 덧붙인 점이 인상적이다. 극장에서는 마이 멜로디와 쿠로미의 추격전 장면이 담긴 회차가 상영되었는데 그 추격전의 연출이 마치 액션 소년 만화와 같이 보였다. 귀여운 캐릭터들이 손에 땀을 쥐는 추격전을 한다는 장면의 신선함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상영된 회차 외에도 마이 멜로디가 꾸는 꿈에서 호러스러운 장면이 등장한다든지 의외의 이미지들이 작품에서 등장한다.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캐릭터의 이야기임에도 뻔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이질적인 키워드를 흥미롭게 조합시킨 연출가의 힘때문이지 않을까.

       

       


      한국 파노라마: 파란만장 종합미디어상가



      여기 ‘한국 파노라마: 파란만장 종합미디어상가’에서는 작품의 형식과 스타일, 주제까지 제각각인 작품들이 한곳에 모여있다. 사소한 일상의 장면, 도발적인 상상력을 시작으로 한 뾰족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세 작품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치열한 전쟁〉

       

      01[895].jpg

       

       

      한 평범한 소녀의 입안에서 이빨들이 틀어지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치열한 전쟁〉은 ‘치아 교정’이라는 시술 과정을 발랄하게 그려낸다. 좁은 입안에서 이빨들이 사투를 벌이며 생존하고자 하는 장면이 기발하게 연출되는 한편 철이 박히고 UV 광선을 쬐는 이빨의 모습 등 직접 경험하지 않고선 쉽게 그려내기 힘든 사소한 디테일들이 살아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글쓴이도 치아 교정을 해본 입장에서 시술대 앞에서 온갖 고통스러운 생각이 스쳐 지나갔던 경험이 있다. 나에겐 고통스러운 기억이었던 치아 교정 과정에 발랄한 상상력을 더한 작품이었기에 더욱 기억에 남는 〈치열한 전쟁〉이었다.

       


      〈나의 죽이는 에로비디오〉

       

      01[893].jpg

       

       

      〈나의 죽이는 에로비디오〉는 남자와 닿기만 해도 쓰러져 버리는 주인공 새미가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개성 있는 작화와 연출 덕분에 한 인물의 개인적인 트라우마를 길게 끌고 가는 구조임에도 몰입감이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학창 시절 트라우마를 다루는 방식이 다소 설명적으로 느껴진 점이 아쉽지만, 새미의 감정선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필요했던 과정이었다고 느껴졌다. 특히 트라우마를 심어준 대상에게 마법 소녀로 빙의해 돈가스를 물려주는 도발적인 상상력이 인상적으로 다가왔기에 더욱 그랬다.

       


      〈나는 당신에게 무언가를 느낀다〉

       

      01[891].jpg

       

       

      〈나는 당신에게 무언가를 느낀다〉는 ‘편지를 쓴다.’라는 한 문장에서부터 시작한다. 선들이 일률적인 행동을 하다가 하나둘 이를 거부하며 선 밖으로 나가며 각기 다른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이 지점에서 '나는 당신에게 무언가를 느낀다'라는 제목이 편지를 쓰는 대상에게 향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엇나가고 있는 주변 선에 영감을 얻은 움직임을 의미하는 것과도 같이 느껴진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KakaoTalk_20260929_181201071.jpg

       

       

      해외 유명 작가의 인디팬던트 시절 작품부터 대중적 작품까지 그의 작업 세계를 폭넓게 살펴본 뒤, 현재 한국에서 살아가는 독립 애니메이터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감상하였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다양한 상상력을 만나며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앞으로도 다양한 독립 애니메이션을 만나길 기대하며!

       

       

       

      컬쳐리스트 태그.jpg

       

       

      이 이야기는 어떠셨나요?

      김수민 에디터의 인기글

      많이 읽힌 글 3편
      1. 01 [Opinion] 테크노는 죄가 없다 [문화 전반]
      2. 02 [Opinion] 풀컬러로 존재하는 법 [미술/전시]
      3. 03 [Opinion] 킹앤프린스 2.0 [사람]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