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가 알지 못했던 드넓은 애니메이션의 세계 - 서울인디애니페스트2022

글 입력 2022.10.03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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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영화, 독립 출판, 인디펜던트 음악씬이 존재하듯 애니메이션의 세계에도 독립 애니메이션이 존재한다. 서울인디애니페스트는 독립 애니메이터들의 실험적 시도와 가능성에 주목하고, 애니메이션의 영역 확장을 통해 비전을 제시하고자 하는 독립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이다.

 

올해 나는 아시아 파노라마관에서 '선택한 운명'을 주제로 11개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시청하고 왔다. 만남과 헤어짐에 대한 각양각색의 작품을 접하고 왔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네 가지 작품에 대한 감상평과 간단한 한줄평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미꾸라지> - 미꾸라지의 감촉만큼 께름칙한 인간의 모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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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꾸라지>는 아기, 아기의 엄마가 해당하는 여성, 수레꾼, 부유한 의사가 미꾸라지에게 잡아먹히는 상황을 그린 작품이다.

 

미꾸라지가 아기의 생식기를 물면서 사건이 전개된다는 점부터 어딘가 찜찜하다. 시종일관 침침하고 기괴한 분위기 속에서, 괴상한 미꾸라지만큼이나 인간의 욕망을 추악하고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미꾸라지를 겨우 탈출하고 돈과 총, 배 모든 것을 얻은 여성은 돌봐줄 대상들과 심지어는 돌보아야하는 대상 모든 것과 자신의 의지로 작별한다.

 

인체의 관절을 하나하나 그려내어 인형처럼 캐릭터를 움직이는 방식도 독특했지만, 직선적으로 장면을 전환하는 연출에 눈이 가는 작품이다. 사건의 흐름대로 줄거리를 전개하는 영화와 다르게, 프레임 위쪽에서 등장한 인물은 수레를 계속해서 아래로 끌고 내려가면서 프레임 밖으로 나간다.

 

찜찜한 결말만큼이나 일반적으로 공간을 인식하는 방식과 다르게 장면을 연출한 점이 인상적이다.

 

 


<산불> - 순식간에 달려오는 불길의 손길이 마음까지 사로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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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보았던 프랑스 애니메이션 <프린스 앤 프린세스>가 어렴풋이 떠올르게 만드는 <산불>은 실루엣 애니메이션이다. 동양풍의 배경 속에서 실루엣 애니메이션을 접하게 되니 낯설면서도 반가웠다.

 

산속의 고요하고 한적한 마을에 불길이 덮치는 단순하지만 강렬한 여운이 남는 작품이다. 각기 다른 네 마을의 가족들을 평화롭고 단순하게 보여주다가, 후반부에는 마을을 뒤덮는 산불을 보여준다.

 

대피하지 못한 집을 빠르게 덮쳐오는 불길을 수십 개의 손과 팔로 묘사한게 인상깊었다. 곧 들이닥칠 불길이 아내의 눈동자 속에 비치는 장면 역시 아찔했다. 끔찍한 작별에 대한 이야기를 대사 하나 없이 효과적으로 전달한 점이 인상깊었다.




<크랩 소다> - '갑충'에서 '갑각류'로 '변신'한 상실된 인간성. 작품을 들이키고 나면, 소다의 청량함이 아니라 무거운 게딱지가 얹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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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랩 소다>는 직장을 그만 두고 게 장사를 하기 시작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지위를 잃고 급기야는 인간성마저 상실하게 되는 아버지의 처참한 모습을 자녀의 시선으로 그려냈다. 애니메이션을 보는 내내 카프카의 <변신>이 떠올랐다.

 

<변신>이 인간이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는 과정에서 인간을 갑충으로 변신시켰다면, <크랩 소다>는 아버지의 얼굴을 게딱지료 묘사한다.

 

비유를 통해 극단적으로 치닫는 상황을 비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참으로 처참하고 잔혹하다. 넋이 나간 눈으로 금화를 좇다 금화 속에 생명체가 비치는 연출은, 모든 걸 돈으로 치환하는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하는 메시지를 관통한다.

 

소다 하나 마시고 싶었던 아이는 마지막에 크랩 소다를 마신다. 하지만 관객들은 청량감 대신, 무거운 게딱지가 하나 더 얹히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푸쿨라포타스와 숲속의 이야기> - 정교하게 빚어낸 시간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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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쿨라포타스와 숲속의 이야기>는 우리 삶에서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존재, 푸쿨라포타스를 다루고 있다.

 

고지대에서 슬로우 라이프를 실천하던 한 남성이 어느날, 아리에티처럼 조그마한 생명체를 발견한다는 내용을 내레이션으로 들려준다. 숲의 수호자 푸쿨라포타스를 만나고, 바쁜 일상으로 돌아감에 따라 작별하게 되는 장면 내내 따뜻한 정서가 두드러진다.

 

실존하는 숲의 경치를 인형 캐릭터와 절묘하게 배합해낸 <푸쿨라포타스와 숲속의 이야기>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다. 스톱 모션은 애니메이션 촬영 기술로, 대상의 모형을 1프레임 단위로 계속 촬영해 편집하는 방식이 특징이다.

 

푸쿨라포타스가 행운을 가져다주는 존재가 아니라, 행복을 만끽할 만큼의 여유가 있어야만 푸쿨라포타스를 발견할 수 있다는 작품의 주제 의식을 고전적이면서도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스톱 모션 기법을 통해 전달했다는 점이 특히 흥미로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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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인디애니페스트에서 접한 작품들은 실험적이고, 실험적인 만큼이나 하위 장르를 규정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덕분에 주류 애니메이션에 대해 갖고 있는 고정관념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미취학 아동 시절부터 핑구, 패트와 매트, 윌레스와 그로밋을 보고 자랐고, 이후로는 지브리 스튜디오와 디즈니, 픽사의 애니메이션들을 보고 자란 나에게 애니메이션은 따뜻한 영상 매체라는 인식이 존재했다. 창작 캐릭터를 통해 연령대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따뜻하고 가족적인 정서가 존재하는 상상력을 그리는 영상 매체라는 점에서 영화보다 다양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해온 모양이다.

 

아시아 파노라마에서 접한 단편 애니메이션들이 갖고 있는 각기 다른 매력은 보편적인 정서를 갖는 영상 매체라는 편견을 깨주었다. '만남과 헤어짐'의 순간을 앞서 언급한 것처럼 따뜻하고 활기차게 표현하는 작품도 있었지만, 냉소적이거나 사회비판적인 시간을 통해 차갑게 표현하는 작품들도 존재했다. 주제 의식뿐만 아니라 기법이나 그림체 등 모든 방면에서 공통점을 찾기 어려울 만큼 개성 넘치는 작품들이 많았다.

 

애니메이션의 세계를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독립 애니메이션 축제의 존재를 깨달을 수 있는 진귀한 시간이었다.

 


[박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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