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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리뷰는
영화 ‘하나 코리아’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하나 코리아'는 탈북 여성의 정착 과정을 그린 실화 모티브 영화다. 덴마크 출신 감독 프레드릭 쇨베르는 약 5년에 걸쳐 30여 명의 탈북민을 인터뷰하며 작품의 기틀을 다졌고, '기생충' 오스카 레이스의 통역가로 주목받은 샤론 최(최성재)가 공동 각본에 참여해 언어적 뉘앙스를 보완했다. 지난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플래시 포워드 관객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파친코'의 김민하가 탈북 여성 혜선 역을 맡았고, '오징어 게임 1'의 김주령이 숙희 역을, '옥자'의 안서현이 보미 역을 맡아 함께 호흡을 맞췄다.
자유를 찾아 국경을 넘은 혜선에게 남한은 꿈꾸던 해방이 아니라 살아남아야 할 현실이다. 탈북민 교육기관 하나원에서 서울 아파트로의 독립까지, 모든 것이 낯설고 버겁다. 그동안 탈북민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분단 현실이나 남북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낸 경우가 많았다면, '하나 코리아'는 새로운 사회에 정착해 살아가는 한 여성 개인의 삶에 시선을 둔다. 탈북과 소외에 대한 내면의 고뇌와 외부적인 시선이 만나는 교차점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결국 어떤 종점에 도착하게 될지, 잔잔한 호수와 같은 이야기임에도 눈을 뗄 수 없다.
침묵이 말하는 것들
여느 영화와 달리 파스텔톤의 암전을 뒤로하고 영화는 시작된다.
고향을 떠난 사람은 마음 한 구석에 구멍이 난 것과 같다.
하나원에 입소한 이들에게 원장은 이렇게 전한다. 그의 사려 깊음은 이어지는 말에서도 드러난다. 자신이 그들의 아픔을 다 알 수 없을 거라고 말한다. 사실임과 동시에, "안다, 이해한다"는 말보다 값진 위로다. 그의 말처럼 영화는 보여줄 수 있는 것을 보여주되, 물음표로 남겨두어야 할 지점을 그대로 둔다. 그것은 관객의 몫이다.
말하지 않아도 된다.
대화 중에 종종 말을 잇지 못하는 혜선에게 숙희가 말한다. 영화는 이 대목에서 대사로 풀어내고 회상으로 설명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는다. 그저 공백을 숙희의 말과 혜선의 표정으로 채운다. 이 대사는 이 장면에서 밖에 나오지 않지만, 어쩌면 이야기의 전반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혜선은 말이 없다. 할 말이 있음에도 삼키는 경우가 많다. GV에서 최성재 작가는 실제로 이러한 연출에 공을 들였다고 전했다. 그리고 그 간극을 배우 김민하가 메워주었다. 혜선이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는 영화 전반에 걸쳐 그녀 내면을 드러내는 중요한 장치로 작용하며, 김민하의 열연은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허물며 영화의 몰입도를 높인다. 삶이라는 것이 말로 대변될 수 없듯, 대사 없이도 전달력이 깊었다.
영화란 사랑이라는 말 없이도 사랑을 표현해야 한다고들 한다. ‘하나코리아’야말로 그 표현에 적합하다.
불행 포르노가 아닌 생존자의 주체적인 이야기로
영화를 보기 전 으레 예상하게 되는 것이 있다. 탈북민의 이야기라면, 선명한 피해와 뚜렷한 가해가 있고, 극적인 탈출 장면과 눈물이 있어야 할 것 같다는 기대 혹은 편견. 이른바 '불행 포르노'의 문법이다. '하나 코리아'는 그 문법을 따르지 않는다. 선악의 구도가 명확하지 않고, 혜선의 고통은 직접적으로 서술되지 않는다.
가령 혜선과 하나원 동기 사이의 관계가 그렇다. 둘은 탈북 후 중국에서 함께 일하던 사이였다. 돈을 모으기 힘든 구조 속에서 혜선은 몰래 돈을 모았다. 발각되어 맞아 죽을 위기에 처하자, 혜선은 살기 위해 그것이 동기의 돈이라고 했다. 살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그 선택은 누군가의 삶을 뒤흔들었다. 그렇게 원수가 된 두 사람이 하나원에서 다시 마주친다. 영화는 이 관계를 선악의 구도로 가르지 않는다. 혜선은 가해자임과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하다. 생존의 문제 앞에서 인간이 내리는 선택이란 이토록 복잡하다.

영화의 렌즈는 혜선의 시선을 따라간다. 초반에는 제한된 생활 반경 안에서 단순한 화면 구도가 이어지지만, 혜선이 한국 사회에서 정착하고 자신감을 얻어 갈수록 화면은 점점 넓어지고 유연해진다. 생존자의 주체성은 극적인 선언이 아니라, 이처럼 조금씩 달라지는 화면 안에서 자라난다. 인물을 선과 악, 가해자와 피해자와 같은 평면적인 방식으로 소비하지 않고, 삶이라는 다큐에 내러티브를 더할 뿐이다. 혜선의 표정으로, 침묵으로, 그리고 점차 넓고 다채로운 화면으로 보여준다.
서울은 민트
GV에서 최성재 작가와 시소픽쳐스 오희정 대표는 프레드릭 감독이 '하나 코리아'를 제작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을 때 적잖게 당황했다고 전했다. 탈북은 한국인에게도 어려운 여러 이해관계가 중첩된 주제이기 때문이다.
한국전쟁과 분단, 오랜 이념 갈등, 같은 민족에서 점차 적대적 타자로 변해온 북한에 대한 한국 사회의 복잡한 정서, 그 속에서 소수자이자 여성으로 살아가야 하는 탈북민의 삶을 포함한다. 이 모든 층위를 이해하지 못한 채 영화를 만든다면, 오히려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무게를 잘 알기에 제작자의 책임감에서 비롯된 반응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면 결국 이런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어쩌면 나보다 덴마크 백인 감독이 탈북민 여성과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익숙함은 때로 무감각을 낳는다. 우리 사회에서 탈북민의 존재는 너무 자주 정치적 도구로 소비되어왔고, 그 과정에서 정작 혜선이라는 한 사람은 지워지곤 했다. 의도적인 배척보다 의도치 않은 회피가 소외를 만들어낸다. 외부의 시선이 오히려 그 사람을 더 온전히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이러한 이해관계에서 비교적 자유로웠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파스텔 핑크와 민트빛 암전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프레드릭 감독은 회색빛 서울을 '민트'라고 표현했다. 옥상 바닥, 한낮의 한강 물결, 색색의 네온사인···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다. 낯설지만 새롭게 다가온 외부의 시선에서 서울은 이렇게나 밝고 명랑한 색이다.
최근 선거를 거치며 자연스레 북한에 대한 담론도 제기되었다. 그중 SNS를 달군 질문 중 하나가 후보자에게 '대한민국의 주적'에 대해 묻는 내용이었다. 중요한 질문이지만, 안타깝게도 이것은 진영 안에서 편을 가르는 용도로만 소비되었다. 그래서 이보다 더 생산적인 질문들이 많아지길 바랄 뿐이다. 소외된 누군가의 존재할지라도 그 사실만큼은 결코 소외되지 않는 세상을 바라본다.
그건 아마도 낯선 곳에서 처음 서울을 민트로 본 것처럼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작은 시도에서 시작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