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저녁 7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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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바흐의 골드베르크를 들어본 사람이 있고, 안 들어본 사람도 있다. 또한 그 곡이 어떤 의의가 있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친근하게 구는 사람도 있고, 친구를 따라 클래식 공연에 왔다가 어쩌다 아리아부터 마지막까지 전곡을 한 번에 듣게 되는 사람도 있다.


3월 21일, 8시 공연 한 시간 전. 언니와 나는 예술의전당 근방에 위치한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뒤, 빨간불 신호등 옆에서 얌전히 파란불을 기다렸다. 일교차가 세다더니 한낮에 비하면 서늘해졌네, 하는 생각을 하다가 오늘 공연이 인터미션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뿔싸!


동행자에게 곡 설명을 간략히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클래식 공연장에 함께 가는 친구들은 대부분 예술의전당 자체가 오랜만이거나, 음악당의 콘서트홀만 주로 방문해본 경우가 많았다.


나는 무대 자체를 하나의 ‘경험’으로 느끼게 하고 싶어서, 어떤 작곡가의 곡인지, 몇 곡이 있는지, 누가 연주하는지를 굳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이날은 프로그램이 아주 ‘비범’했고, 정말 아무것도 모른 채 갔다가는 골드베르크의 탄생 배경과 걸맞게 1시간 30분 동안 꿀잠을 자버릴 가능성이 컸다. 그러니 말을 해줘야 했다.

 

이 곡이 바흐의 곡이고, 아리아와 30개의 변주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부분의 곡이 1~2분 남짓이라는 것. 내가 이유도 없이 좋아하는 변주곡은 18번이고 마지막 곡은 처음으로 되돌아온다는 이야기까지. 우리는 하얀 네모를 건너가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로비에 도착해서는 자판기 거울 앞이나 음악당을 배경으로 광각 사진을 찍으며 온갖 실없는 장난을 치고 공연을 기다렸다. 그러다 오후 8시가 되기 10분 전, QR코드를 찍고 공연장 안으로 들어갔다.


중간 블록에 앉아 오늘의 주인공을 기다리는 피아노 사진도 찍고, 입안을 금세 시원하게 해주는 아주 조그만 민트볼도 하나씩 챙겨 먹으며 바흐를 기다렸다.

 

그때 나는 언니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공연 끝나면 마음에 드는 곡을 하나 알려줘.”

 

언니는 답했다.

“몇 번인 줄 모르는데?”

“그럼 불러주면 되지, 오홍홍~ 하면서.”


언니는 “뭐래” 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동시에 가방에서 하얀 노트와 볼펜을 꺼내 들었다. 변주곡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 메모 덕분에 골드베르크의 길을 떠나는 여정 중간마다 나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아무 생각 없이 곡을 따라가다 보면, 혹은 생각지도 못한 생활 소음이 발생하면 불쑥 찾아오는 잡생각에 ‘어, 지금 몇 번이지?’ 싶은 순간도 있다. 그때마다 언니의 까만 볼펜이 나침반이 되어주었다.


얌전하고 경건하게 들어야 할 것 같은 골드베르크 앞에서, 괜히 마음이 들떠 있었다. 어찌 그럴 수 있겠냐 싶겠지만, 왼편에는 나의 친구가 있고, 앞에는 골드베르크를 제대로 다뤄본 연주자가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모두가 이 작은 공간 안에서 내가 오래 궁금해하던 것을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 시간 자체가 무척 소중하게 느껴졌다.


골드베르크를 들을 우리를 염려한 건지, 혹은 유달리 따뜻했던 한낮을 경계한 것인지, 이날 공연장은 마침 선선했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드러난 손목 사이로 바람이 유유히 지나갔다.


딱 봄날에만 느낄 수 있는 바람.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기분 좋은 온도가 우리를 스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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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호 피아니스트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전곡 연주를 이어가면서도 쉼 없이 몰아치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아니, 과장해서 말하면 딱히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어찌나 묵묵히 골드베르크를 펼쳐내는지, 소리만 들으면 어딘가 어린 존재의 모습이 느껴졌다. 반면 건반 위를 움직이는 모습은 기예에 가까웠다. 와라락 움직이며 변주를 건너간다.


초중반에는 예술에 몰입한, 어딘가 사회성이 결여된 아이의 소리 같기도 했다. 그 어떤 작은 여파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악보를 보지 않고 거의 눈을 감은 채 변함없이 나아간다.


나였으면 이쯤에서 한 번쯤 삐끗했을 텐데, 그는 그저 익숙한 일처럼 변주곡 사이를 건너간다.


어둑한 기색의 음표를 노래할 때는 더 차분하게 이어간다. 건반을 누르는 방식도 인상적이었다. 깃털처럼 가볍지도, 대단히 깊지도 않은데 소리는 또렷했다. 한 번씩은 저 연주자가 오르간을 연주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래서 오늘의 공연은 한지호라는 연주자가 아니라, 바흐의 골드베르크 자체가 중심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한지호라는 피아노가 상영하는 바흐의 골드베르크라. 그 애정의 깊이와 시간의 누적을 전해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 

 

 

 

한지호의 골드베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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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의 아리아는 담담한 쪽에 가까웠다. 종이를 한 장씩 넘기듯, 고개를 완전히 내린 채 바닥을 보며 걷는 사람처럼 나지막하게 시작된다.


온갖 잡동사니가 가득했던 주머니를 비워낸 채 길에 오른 사람이 거기 있었다. 미련 없이 다 놓아두고 가는구나. 정말로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은 상태로, 가볍게.


가벼워진 상태 덕분인지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다. 아리아의 나긋함은 어느새 옅어지고, 기분 좋은 들뜸이 퍼진다.


그 상태를 그대로 이어받은 싱그러운 낮의 풍경이다. 왜 밀짚모자일까. 모르겠다. 다만 한밤에 걷는 이는 아니다. 햇볕이 있고, 빛이 곳곳에 스며든다. 그 빛이 천천히 번진다.


조금 해가 기울어도 인사는 여전히 맑다. 애초부터 소리가 웃상이다. 또렷하게 길을 안내하는데, 막 리드해주지는 않지만 너무 빨리 앞장서 걷지도 않는다. 그 적당한 친절함이 편안했다.


다만 늘 씩씩함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분명히 일러준다. 까만 눈 안에 저마다의 별을 박아야 한다고. 반드시.


요술.

은하수가 쏟아져 내린다.

 

그냥 반짝이는 게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한 번에 무너져 내리듯 쏟아진다.


소리는 또렷하다기보다, 땡글거리며 굴러간다. 별무리 사이를 구르는 기분이다. 그 안에서 몇 번이고 방향을 바꿔가며, 계속해서 굴러간다. 롤러코스터를 탈 생각은 없었는데, 이미 올라타 버렸다.


그러다 문득, 숨 쉴 구간이 찾아온다. 조금 전까지의 속도를 잊게 만드는, 잠깐의 정지.


공연장에서 만난 골드베르크는 왼손의 소리가 잘 들려 좋았다. 관객석에서 보면 오른손보다 멀리 있는 왼손의 이야기가 괜히 궁금해진다. 너는 어찌 그리 둥근 소리를 내는 거니, 하고 한 번 더 귀를 기울이게 된다.


가벼운 춤을 출 때에도, 굳건한 음성이 중심을 지키고 있다. 중심이 있는 사람이구나. 초반에 건반을 꾹 눌렀다가 탁 하고 멀어지는 짧은 이별들을 듣는 재미가 있다.


이쯤에서야, 내가 진짜 ‘골드베르크’를 보러 왔구나 하는 생각이 앞장섰다. 아니, 저 노오란 빛 가운데서 저렇게 살아나버리지 않는가.


들을 적엔, 이 곡을 들으며 지나온 길을 되돌아봤던 ‘나’를 떠올렸다. 그때에는 무슨 생각을 했더라. 머뭇거리기도 자주였지. 언제 다 자라날까.


주저앉아 추억에 잠긴 이에게, 뭔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하냐고 답해주더라. 양옆구리에 손을 얹은 채 어찌나 당당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가던지. 든든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같이 춤을 추고 있었다. 언제 내 발이 이렇게 움직이고 있었지.


내 춤사위가 그야말로 얼결이라, 추는 이도 같이 팔을 잡고 있는 이도 마음 한켠은 우왕좌왕하지만, 뭐 어때. 다 꿈인데. 엉망인 채로 얽혀들어 가기 시작한다.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고개를 들어보란다.


오늘따라 함께 걷는 길이 진취적이다. 뭐든 더 할 수 있다고, 내가 생각한 한계선의 끝은 사실 또 다른 시작점이라고 말해준다. 이 길에 끝이 있다고? 천만에.


마치 1번의 기색을 닮은 것처럼, 다만 그때와는 다른 또 다른 다정함으로 시간을 내어준다. 곁에 없어도 느껴지는 마음결 하나가 한들한들 건너온다.


피아노가 눈을 번쩍 떠버린다. 세상이 이렇게 재밌는 곳이냐고 들뜸을 내비친다. 이 신이 난 요동침이 절로 흥겹다. 예쁜 소리가 힘과 추진력까지 가져버리면 이렇게 바쁘다.


그러다 문득, 해가 지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사람이 늘 밝을 수만은 없으니까.


가장 높이 날아오르다, 조금 전을 잊게 만드는 내려앉은 서정성. 무엇을 상상하고 있기에 그러는 걸까. 그 생각을 조금 더 오래 붙잡고 있으니, 마음이 슬그머니 편안해졌다.


이봐, 금방 기운 차릴 거면서. 망토도 둘러입을 거면서. 홀로 부르는 노래도 이만큼 당찰 거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변주곡 18이 등장하자 눈이 반짝였다. 왼편으로 팔을 툭툭 치며 ‘여기야’ 하고 소리 없이 말을 걸었다. 친구가 끄덕이는 걸 보고는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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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이렇게 생겼구나. 연예인을 보듯 한참을 바라봤다. 안녕, 안녕.


긴 옷자락을 살짝 들어 올리고, 한 발씩 자국을 남긴다. 한 발에 하나, 두 발에 둘. 나만이 이어갈 수 있는 장난 같은 시간이다. 그러다 다시, 데굴거리는 시간이 돌아온다. 오늘의 곡에는 울상이 없다. 어찌 이리 가볍게 뛰어오를 수 있지.


소리가 꿈뻑꿈뻑, 사람 대신 눈을 크게 뜨고 가라앉는다. 오래 놀고 싶다는 마음이 묻어난다. 이윽고, 새근새근 잠든 아이의 꿈속이다. 꿈 안에서도 놀이터를 찾아낸다. 온 동네가 그의 장난감이다.


언제부터 선장의 모자를 쓰고 있었나. 한 손에는 망원경까지 들고 사뭇 진지한 얼굴로 이곳저곳을 살핀다. 항해를 떠나는 모습일까, 아니면 웃음 짓는 얼굴일까.


신명나는 몸짓에 나도 모르게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게 된다. 그러다 문득, 지켜보는 것을 넘어 나도 따라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팔은 이 정도, 발은 이 정도. 에잇, 뭐든 괜찮겠지. 일단 따라가 보자. 길게 긴 노래를 천처럼 땅 위에 펼쳐놓기도 한다. 그때는 정말 가만히 따라갔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저 기다리며.


시야가 보다 분명해졌다. 끝이 다가오고, 다시 돌아갈 시간이 가까워졌음을 느낀다. 애초에 비워두고 걸어온 길이지만 마음은 더 가벼워졌다. 곳곳에서 보석 같은 순간들이 바쁘게 춤춘다. 오른손과 왼손이 서로를 향해 끊임없이 대화를 나눈다.


점점 속도를 올리는 것을 보니 이제 정말 돌아가고 있나 보다. 끝이 다가오는 아쉬움보다, 저 장면을 더 오래 담지 못하는 것이 더 아쉬웠다. 

 

진짜 이별이 코앞이다. 손을 높이 들어 힘껏 흔들며 인사한다. 어디에든 너의 친구가 있다. 끝에 다다르니 시작이 다시 찾아왔다.


되돌아온 아리아가 반갑기도 하고, 여전히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는 그 모습이 부럽다. 잠깐이나마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뻤다.

 

 


밤 10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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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끝나고, 앙코르로 분위기가 이어진 뒤 정재승 교수와의 화기애애한 대담까지 마치고 남부터미널역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자리에 앉자마자 언니의 빼곡한 노트를 구경했다. 우리는 한 곡씩 적혀 있는 짧은 감상평을 보며 주변에 사람이 많은 줄도 모르고 깔깔 웃었다.


“언니, 1번에서 졸리고, 2번에서 바로 잠 깼다고?”

(끄덕끄덕)

(같이 웃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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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언니가 말했다.

“외계인이 들으면 예술인은 살려주지 않을까? 

나는 잡혀가겠지만.”


나는 또 한 번 웃었다.

아참, 3월 21일 바흐 생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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