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원래 진동하지 않는 매체다
사진은 흐르는 시간을 한 장의 이미지로 붙잡는다. 셔터가 열리고 닫히는 찰나, 움직이던 사물은 하나의 상태로 기록되고 이미지는 더 이상 변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사진은 본래 '진동'과 거리가 먼 매체다. 진동이 두 상태 사이를 오간다면, 사진은 그 운동을 하나의 장면으로 남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홉 명의 사진가를 묶은 전시에 굳이 《진동하는 사물들》이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는 무엇일까.
정지된 이미지로 어떻게 존재와 부재 사이의 흔들림, 다시 말해 '진동'을 담아낼 수 있을까.
이러한 관점에서 전시를 바라보면, 아홉 작가의 작업을 잇는 하나의 흐름이 보인다. 한쪽에는 반복과 축적을 통해 정지된 이미지 안에 시간을 쌓아 올리는 작업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사라짐과 결여를 통해 보이지 않는 시간을 환기하는 작업이 있다.
실제 작업들은 이 둘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지만 이러한 구분은 서로 다른 작품 사이에 높인 공통된 문제의식을 살펴보게 한다.
반복과 중첩으로 시간을 담다
참여 작가들은 디지털 후보정이나 AI 기반 이미지 생성을 거치지 않고, 오직 눈과 감각, 카메라의 광학만으로 이미지를 만든다는 원칙을 공유한다. 이는 단순히 사진의 순수성을 강조하기 위한 태도라기보다, 사진이 가진 한계를 넘어서는 각자의 방법과 맞닿아 있다.
김수강은 검프린트 기법을 사용한다. 종이에 안료를 바르고 빛을 쬔 뒤 물속에서 현상하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해야 하나의 이미지가 완성된다. 한 장의 사진에는 하나의 순간이 아니라 반복된 시간이 켜켜이 쌓인다.
김경태는 포커스 스태킹으로 수백 장의 사진을 하나의 이미지로 합성한다. 카메라가 조금씩 달리 기록한 수많은 이미지는 하나의 화면으로 새롭게 응축된다. 박찬우 역시 여러 시점에서 촬영한 이미지를 중첩해 하나의 고정된 시점을 해체한다.
세 작가의 작업은 서로 다른 기법을 사용하지만 공통점이 존재한다. 사진은 본래 하나의 순간을 담는 매체지만, 이들은 반복과 중첩을 통해 한 장의 이미지 안에 여러 시간과 여러 시점을 함께 담아낸다. 정지된 화면 속에 지속과 운동의 감각을 불어넣는 것이다. 전시가 강조하는 'AI 없는 순수한 광학'이라는 원칙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AI가 순식간에 만들어낸 이미지와 달리, 이들의 사진에는 반복된 손의 시간이 물리적인 흔적으로 남아 있다.
사라지는 순간을 붙잡다
반대로 어떤 작가들은 정지된 이미지 안에서 '사라짐'을 통해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이들의 사진은 반복이 아니라 결여를 통해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이미지 자체는 멈춰 있지만, 그것이 가리키는 대상은 이미 사라졌거나 사라지는 과정에 있다. 관람자는 자연스럽게 존재와 부재 사이를 오가게 된다.
조선희는 시들어가는 꽃과 부패하는 과일을 촬영한다. 언뜻 정적인 정물처럼 보이지만, 실은 소멸의 한순간을 붙잡은 이미지다. 사진은 시간을 멈추지만, 관람자는 그 너머에서 계속 이어질 변화를 자연스럽게 상상하게 된다. 섬세하게 포착된 대상의 표면은 사라지는 순간에도 남아있는 생명의 흔적을 보여준다.
정정호는 한국전쟁 당시 노무자였던 조부의 흔적을 탄피와 문서, 오래된 사진으로 재구성한다. 과거의 삶은 남겨진 사물을 통해 다시 현재에 모습을 드러낸다. 군인의 모습과 돌이 함께 구성된 화면은 개인의 기억을 넘어 한 시대의 흔적을 담아내는 벽화처럼 작용한다.
구본창의 〈오브제〉 연작 역시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상자 안의 사물은 이미 사라졌지만, 안감에 남은 흔적은 오히려 부재한 대상을 더욱 선명하게 떠올리게 만든다. 이때 사진은 사물을 기록하는 도구를 넘어, 사라진 것과 남겨진 것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매개가 된다.
아홉 개의 시선, 하나의 질문
이처럼 아홉 작가는 서로 다른 소재와 기법을 사용하면서도 하나의 질문을 공유한다.
정지된 이미지 안에 어떻게 움직임을 담아낼 것인가.
어떤 작가는 반복과 중첩이라는 축적의 방식으로, 또 다른 작가는 사라짐과 결여를 통해 그 질문에 답한다. 이러한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왜 이 전시가 한 사람의 개인전이 아니라 아홉 명의 그룹전이어야 했는지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정지된 이미지를 통해 움직임을 보여주는 방식에는 하나의 답이 없다. 반복으로도, 결여로도 가능하며 그 밖의 다양한 방식으로도 표현될 수 있다.
《진동하는 사물들》은 하나의 결론을 제시하기보다 서로 다른 접근이 만들어내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사진은 정지의 기술이다. 그러나 이 전시에 모인 아홉 개의 화면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 한계를 흔들며, 멈춘 이미지 너머에서도 시간과 기억, 존재는 여전히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