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몸. 몸.
게슈탈트 붕괴가 올 때까지.
몸. 몸. 몸. 몸.
몸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라 아주 작은 모래시계처럼 보일 때까지. 아니면 여왕벌. 아니면 사슬의 일부. 아니면 묘비. 아니면 몸이라는 단어조차 사라지고 그 단어를 반복하는 뻐끔거리는 입술만 남을 때까지.
아니면 그 입술마저도 닳아 없어져 아무 의미도, 소리도 남지 않을 때까지.
몸에 대한 글을 쓰자 생각했다. 막막했다. 왜냐하면 그 글은 몸이라는 단어 밖에서는 하나로 길들일 수 없는 혐오와 연민과 가족과 친구와 춤과 리듬과 요가와 러닝과 폭식과 절식과 두려움과 시기와 질투와 사랑과 그 모든 블라블라블라에 관한 생각이 모두 뭉쳐진 그 커다란 털뭉치가 풀린 뒤에나 쓸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어떤 생각의 실이 어떤 다른 생각의 실과 엮여 있는지, 실타래의 끝과 시작은 또 어디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일단 그 모든 것을 나열해보자 생각했다. 질서없이, 두서없이. 몸, 몸, 몸, 몸, 반복하듯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이야기들이 뒤섞인 주문을 외다 보면 그 말은 붕괴하고 바뀌게 되어 있으니. 이 글은 시간 순도, 중요도 순도 아니다. 이 중에는 나의 글도 있고, 남의 글도 있으며, 몸에서 시작했지만 결국 다른 이야기인 것들도 있다.
내 육체 속에서는 무언가 가끔씩 덜그럭거리는데
그것은 가끔식 덜그럭거리는 무언가가 내 육체 속에 있음을 상기시킨다
심보선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도덕적이고 미적인 명상' 중 일부 발췌.
없어진다는 건 무슨 느낌일까요? 그냥 한순간.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깨끗이 지워진다면. 그럴 수 있으면 참 좋겠다고 종종 생각합니다. 나도, 그 누구도 아프지 않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없어질 수 없으니. 최대한 작아지고 싶습니다.
가장 줄이고 싶은 건 허벅지입니다. 아, 팔뚝도 있지만 그건 2순위로 해 두죠. 중학교 때 체육 시간을 위해 여자아이들이 다 같이 빈 교실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윗도리를 벗고, 바지를 벗었을 때,
“너는 상체는 진짜 말랐다.”
하체 비만. 쇄골이 드러나지만, 허벅지 사이에는 공간이 없는 몸. 그때쯤부터 저는 사람들의 상체와 하체를 따로 보기 시작합니다. 정확히는 또래 여자아이들의 몸을요. 상체는 말랐지만, 하체는 두꺼운 몸. 하체는 말랐지만, 상체는 두꺼운 몸. 상체와 하체 다 두꺼운 몸. 그리고 상체와 하체가 다 마른 몸. 친구들과 놀러 다니던 일산의 시내에서도 끊임없이 여자들의 다리를 관찰합니다. 마른 다리, 덜 마른 다리, 짧은 치마를 입을 수 있는 다리, 허벅지까지 가리면 괜찮은 다리, 긴 다리, 짧은 다리, 다리, 다리, 다리.
(중략)
한국에 돌아와, 공연을 준비하며 살이 급격하게 더 빠집니다. 초등학교 때 이후로 한 번도 찍어보지 못한 40kg대에 진입합니다. 내 몸은 물기 없이 건조합니다. 빠싹하게 말라 있습니다. 아침 일찍 나가 커피로 끼니를 때우고 급한 대로 편의점에서 단백질 바를 사갑니다. 연습을 하고 돌아온 늦은 저녁엔 밥을 할 힘이 없어 배달을 시킵니다. 분리수거통에는 각종 배달음식 용기가, 냉장고에는 먹다 만 음식들이 쌓여갑니다. 하지만 내 망가진 생활에 만족감을 느낍니다. 친구와는 이 과정을 ‘맘고생 다이어트’라 명명합니다. 혁신적인 다이어트 방식! 마음이 비어가면 몸도 비워진다! 몸이 비워지는 만큼 마음은 다시 채워진다! 주변 사람들이 살을 어떻게 뺐냐고 물어볼 때마다, 힘들면 살이 절로 빠진다며 수척한 얼굴로 답합니다. 그것은 내 일종의 즐거움이 됩니다. 이제 거울을 봐도 시선을 피하지 않습니다. 새 옷을 사고, 맞지 않는 옷을 버립니다. 침대에 누웠을 땐 툭 튀어나온 골반을 만져보고, 어깨를 폈을 때 움푹 파인 쇄골을 쓰다듬어 봅니다. 이것이 욕망 당할 수 있는 몸이구나, 이게 내 몸일 수 있구나, 감탄을 금치 못합니다.
수업을 위해 쓴 에세이 '마른 여자 로망' 에서 일부 발췌.
어린 시절의 감촉들. 엄마의 팔꿈치. 주름지고 튼 살의 표면을 손가락으로 비비는 게 이상하게 중독적이었던. 이른 아침 엄마가 나를 깨우며 시원한 손톱으로 등을 긁어주던 것. 키가 크라며 해주던 '쭈빠쭈빠.' 발가락을 손마디 사이에 끼우고 코르크를 뽑듯이 쭉 잡아당겨 뽑는 걸 '쭈빠쭈빠'라고 했었다. 발가락의 뼈마디가 손가락의 뼈마디에 걸려 쭉- 늘어나고 나는 시원한 "뽁!"소리. / 2026 메모기록 중.
나이가 들수록 기운이 없다면 힘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몸의 탄성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탄성은 고무줄처럼 늘어났다가 되돌아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탄성 에너지를 이용하면 스포츠, 춤, 퍼포먼스 등을 향상할 수 있습니다. 탄성을 깨우기 위해서는 리듬이 중요합니다.
첫 번째, 바운스를 유지하면서 가볍게 뒷꿈치를 반복적으로 들어보세요.
두 번째, 한 다리를 올리고, 런지 자세에서 가볍게 점프를 반복합니다. 가능하다면 높게도 뛰어보세요.
세 번째, 공을 번걸아 가면서 톡톡 건드립니다.
네 번째, 스텝을 앞뒤로 번갈아 가면서 짚어보세요.
다섯 번째, 바운스를 유지하면서 파트너와 공을 주고받아 보세요.
마지막으로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바운스를 유지하며 발이 가는 대로 움직여 보세요.
중요한 것은 정확한 자세를 만들기보다는 가볍게 힘을 풀고 접근하는 것입니다. 마치 춤을 추듯이.
이렇게 여러분의 운동 루틴에 춤과 놀이의 요소를 넣어보세요. 가벼운 리듬 훈련으로 일상생활의 활력을 되찾아 보세요.
출처: 인스타그램 @jongdar / 릴스
누군가와 손을 잡고 싶습니다. 꼭 연애를 하고 싶다는 애기는 아니고요. 크고 따뜻하고 거친 손을 잡고 싶습니다.
첫 번째로 생경하게 남아있는 손의 감각은 스무살의 겨울, 서울숲에서 잡았던 손. 손이 시리다길래 그 이유만은 아닌 줄 알면서도 잡았던. 제 손과 비슷한 크기였고, 날씨 때문인지 차가웠던 것 같습니다. 손을 잡는다는 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그때 알았습니다. 낯설어서 그만하고 싶은데 얽혀있는 손가락 마디 마디가 저를 꼭 붙잡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손을 잡은 채 서울숲을 걷고 또 걸었습니다. 어느 순간 화장실을 가야 했었나, 음료수를 사려 했었나, 손을 놔야 하는 순간이 왔는데 막상 놓고 보니 혼자 삐죽 나와 있는 손이 뻘쭘해서 얼른 주머니에 넣어버렸습니다.
두 번째로 기억나는 손의 감각은 꽤나 최근의 일입니다. 손을 잡아주는 것에 재능이 있는 사람도 있다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적절한 크기와 온기를 가지고 있는, 그리고 손바닥이 거칠거칠한 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요. 그런 손을 잡으면, 집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내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아늑한 집. 편안히 누워서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집. / 2025 메모기록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