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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너무 많은 여름과

지겨울 듯 늘어진 여름의 날들에

by 차승환 에디터
2026.08.20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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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아직 끝이 아닌가 싶을 때면 찾아오는 선선한 바람, 이제 끝인가 싶을 때면 다시 밀려드는 무더위. 달궈지다가 식어가다가 또 끓어 넘치는 날씨에 익숙해져버린 탓일까. 이제 여름은 개운한 맛이 없고 청량한 향이 없어지고 그래서 아무런 기대도 없이 맞이하다가 미련도 없이 보내버린다면 너는 얼마나 서운하니 매서운 여름아. 좋은 여름의 조건: 봄이 심심하다 싶을 때 찾아와 가을이 생각날 즈음에 빠져주는 눈치. 먼저 오지 말고 늦게 가지 말고 그저 적당히 놀다 가주는 손님의 미덕과 그 거룩함이 없는 날씨들의 연속.


1.

더 많은 것을 얻으려다가 더 많이 잃고 마는 일들을 목격하면 덜컥 겁이 난다. 생전 가져본 적 없는 것을 가진다는 상상은 나를 좀 무섭게 하고. 좋은 집, 멋진 차, 많은 돈. 내가 갖기에 여전히 터무니없는 것들의 목록을 쓰고 지운다. 검색 목록에 한가득 들어찼던 무서운 꿈들이 깰 수 없는 꿈이 되어 꿈속에서조차 나를 압도할 것만 같고 나는 눈을 질끈 감아 그것들을 가져본 다음 금세 잃어버리기. 가져본 적 없는 것들을 버리는 일은 가진 것을 버리는 일만큼이나 어렵다. 삶의 정수는 애초에 버리는 일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 요즘. 그리고 돌아서면 다시 무수하게 쌓여있는 갖고 싶은 것들.


2.

자다가 눈을 떴을 때 커튼 친 창틈을 파고드는 빛이 가을의 햇살이라면

나는 기분 좋게 눈을 비비고 이불 속에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릴 텐데.

한참을,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꾸다가 말았던 달콤한 꿈을 되찾으려 얕은 잠 속으로 천천히 되돌아갈 텐데.


3.

뜨거운 여름에 드리우는 새벽은 축복일까. 여름은 해가 유독 일찍 뜨는 계절, 해보다 일찍 일어나 집을 나서는 아버지의 등을 본다. 비추지 마, 비추지 마라 태양아. 아버지 이름 차마 못 부르고 애꿎은 태양만 원망하던 어느 여름의 새벽. 아무렴 동이 트기 전까지도 열기는 식지 않았고, 키가 아주 큰 누군가 지난밤 지구에 한바탕 물과 얼음을 쏟아주었길 바라는 가여운 순진함만이 머물던 어스름의 기억. 쨍한 햇볕이 뜨기 전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 사람, 집밖을 나서면 숨까지 틀어막는 여름, 그 질긴, 여전히 덥고 눅눅한 새벽의 공기를 들이쉬며, 오늘도 뜨거울 햇볕을 운명처럼 기다리는 이들에게, 심술 난 지구의 열기를 온몸으로 맞아야 할 이들에게, 가져가야 할 마땅한 것들이 충분히 함께 하길. 너무 긴 여름의 끝,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꼭 그러하길.


4.

너무 많은 여름과 지겨울 듯 늘어진 여름의 날들 속에서 선택지가 있다면 내가 고를 것은 꿋꿋한 인내와 땀을 흘릴 용기. 시원한 얼음물 한 병과 이글거리는 거리에서도 꼭 잡은 손 놓지 않을 당신. 많이 가질수록 자꾸만 무더워질 여름이라면 해변의 옷처럼 훌러덩 다 벗어버리면 돼요. 여름의 다이어트는 그거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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