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10월 2일인 오늘로부터 약 1년 전, 2025년 10월 19일. 세계 최대 규모 박물관인 루브르 박물관에서 나폴레옹 시대 왕실 보석의 대거 도난 사건이 발생했다. 도둑들이 1370억 원 값어치의 보석을 훔치는 데 든 시간은 단 8분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나폴레옹 1세가 오늘날 루브르의 명성을 만드는 데에 가장 많은 기여를 했다는 사실이다. 유럽에서 이집트에 이르기까지 수천 점의 예술작품을 수집한 방법은 다름 아닌‘약탈'이었다. *: 오마이뉴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끊이지 않는 도난, 눈 뜨고 코 베이는 까닭' 2026년 1월 27일자 기사 참조
작년 천 억대 도난 사건의 대상이 되었던 나폴레옹 시대의 보석. 그리고 과거 나폴레옹 1세의 행적. 카르마 아닌 카르마일까? 훔치는 자와 도둑맞은 자. 무어라 명확히 구분하기 기묘한 관계에 있는 이 도난 릴레이를 무어라 표현하면 좋을까.
‘도둑맞은 미술관’은 <모나리자>부터 <절규>에 이르기까지, 이름만 대면 알법한 명작에서부터 어쩌면 도난되지 않았다면 더욱 명성을 떨쳤을,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미술작품들의 도난의 역사를 보고한다. 절도의 과정, 그리고 미술품을 놓고 벌였던 긴장감 넘치는 협상 과정이 빼곡히 담겼다. 결국 그 끝은 결국 영원한 유실 혹은 되찾음으로 귀결되지만, 대부분의 미술품은 본래의 자리를 잃은 채 어딘가를 떠돌고 있다.
수많은 불행 중 다행으로, ‘되찾음’이라는 결론으로 귀결된 작품 중 오히려 그 값어치가 수직 상승한 작품이 있다. 소장한 방대한 양의 미술품만큼이나, 그것을 노리는 거대한 탐욕에 고통받는 루브르 박물관과 <모나리자>의 이야기이다. 이 도난 사건의 범인인 이탈리아인 빈첸초 페루지아는 애국심이 남다른 자였다. 훗날 그가 검거되고 난 후 밝힌 바로는 <모나리자>가 프랑스가 아닌 자신의 고국인 이탈리아에 있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모나리자>는 이 도난 사건으로 인해 특별한 그림으로 유명세를 치렀다.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그림의 가치는 날로 솟았다. 절도 사건이 너무 떠들썩해져서 부담스러웠던 걸까? ‘애국심 때문에’ 그림을 훔쳤다는 그의 범행 동기와는 다르게 결국 빈첸초 페루지아는 작품 거래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수많은 미술품 절도 사건 중에서도, 돈이 아닌 다른 동기에 의해 범행을 저지르는 경우는 더욱 흥미롭다. ‘라우프쿤스트’라는 단어의 창시자, 히틀러와 나치 정권이 그 주인공이다.‘라우프쿤스트’는 나치가 조직적으로 약탈한 미술품들을 가리키는 독일어이다. 히틀러는 1993년부터 1945년까지 12년간 유럽 전역에서 미술품 65만 점을 강탈했다. 그리고 유대인에게서 훔친 다량의 미술품을 판매하거나 파기해 버렸다.
그가 이전에는 평범한 미술학도였다는 것은 이제 모두가 익히 아는 사실이다. 오스트리아 빈 예술학교에 두 번이나 입학을 거절당하고, 성공한 화가들에 대한 시기와 질투를 불태우던 그는 현대미술과 추상미술을 ‘퇴폐미술’로 규정하고 유대인 화가들의 작품을 박해했다. 뒤틀린 그의 마음이 불러온 이 자비 없는 사태는 유대인의 목숨뿐만 아니라 영혼과도 같은 예술까지도 파괴하는 비극을 낳았다.
철저한 고증과 끈질긴 수사망을 바탕으로, ‘도둑맞은 미술관’에는 이외에도 기상천외한 미술품 도난의 역사를 리포팅한다. 도난당한 그 많은 미술품들은 과연 어디에 있는 걸까? 또, 발각당하지 않기 위해 본래의 모양을 훼손했다면 어떤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 걸까? 수많은 궁금증이 생겨나는 동시에, 예술 한 점의 창작을 위해 누군가 쏟은 열정과 시간까지도 도난당했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게 된다.
도난의 역사는 현재까지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앞서 글의 포문을 열었던 루브르 박물관의 도난 사건에 이어 올해만도 네덜란드의, 스페인과 오스트리아 빈의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크고 작은 절도 사건들이 발생했다. 훔치는 자들의 핑계는 때로 거창하고 때로는 너무 뻔하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훔쳐간 것은 단순 미술품 그 이상의 시간이자 역사라는 사실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