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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이 어디든, 오랜 외로움. 그 반대말을 찾아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Love Wins All’의 가사 한 구절이다. 왜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나는 것도 아니고, 멀어지는 것도 아닌 외로움의 ‘반대말’을 찾으려 했을까. 특이하면서도 참신하다고 생각했다. 나중에야 외로움의 반대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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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실을 알고 나서 언젠가 편지 답장 봉사 활동을 하던 때에 'Love Wins All'의 가사와 함께 위로의 말을 전해 보냈던 기억도 있다.


"혹시 외로움의 반대말은 없다는 것 들어보셨나요? 차가움-뜨거움, 오르막-내리막, 왼쪽-오른쪽처럼 확실한 반대말이 있는 단어와 달리, ‘외로움’이라는 상태에는 명확한 반대말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요. 그만큼 복잡하고 등지기 쉬운 감정이 아니다 보니, 진지하게 외로움에 대해 고민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 일거예요." 라고.


복잡하고 등지기 쉽지 않은 감정. 동시에 자연스러운 감정. 가사 한 줄에서 시작해 나의 생각과 말로 정의를 내리기까지 외로움이라는 단어는 한동안 마음을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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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외로움의 함정’에서는 우리가 영원히 반대말을 찾아 헤멜 외로움에 대해 구석구석 살핀다. 일상-심화-고립적 단계로 구분되는 외로움의 정도부터 국가별 현황, 사회구조적 고립의 원인, 개인과 사회가 외로움에 맞설 수 있는 파훼법까지.


책을 읽으며 생각보다도 어두운 외로움의 얼굴을 마주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왔을 때, 만날 누군가가 없는 기분에 괜스레 우울해지는 것은 문제라 불릴 정도의 외로움은 아니다. 하지만 장기적인 사회적 고립은 스트레스 인자로 작용해 체내 염증을 활성화시켜 심혈관 질환, 당뇨병, 알츠하이머병등 만성질환의 위험을 높이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내용에 충격을 느끼고 관련 자료를 찾아본 결과, 외로움의 해악은 한 번에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과 비슷한 정도라고 한다.


또, 우리나라는 특히 외로움과 고립의 안전지대에 있지 않았다. 서적에서 인용한 OECD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2006년에서 2014년까지의 국가별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을 사람이 없는 비율은 우리나라가 50세 이상에서 40% 이상으로 13개국 중 가장 높았다고 한다. 조사로부터 11년이 지난 지금은 50만명에 달하는 20대 고립/은둔 청년이 외로움의 그늘 아래 있다. 우울증 환자는 100만 명에 달한다. 그 사이 도래한 기술적 변화와 경제 위기는 나이대를 가리지 않고 외로움의 벽을 만들었다.


이유는 제각기 다르지만, 한국은 모두가 더 외로운 사회로 가고 있다. 그리고 외로움은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생각보다도 더 나쁜 놈이다.

 

영국은 2018년 최초로 고독(외로움) 부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을 임명하고 외로움 문제의 극복을 위한 국가 전략을 발표했다고 한다. 심각한 히키코모리 문제로 외로움의 병폐를 먼저 경험한 일본 역시 2021년 외로움 장관을 임명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외로움이 깊고 넓게 퍼진 한국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서울시에서 2024년에 ‘고독 대응과’를 신설하고 ‘외로움 없는 서울’이라는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출퇴근 시간만 되면 도로도, 지하철도 사람으로 넘쳐 틈 하나 없이 촘촘한 서울에서 ‘외로움 없는 서울’을 슬로건으로 내걸기까지 어떤 시간들이 있었던 건지. 아이러니하면서도 씁쓸한 기분이 든다.


*


그렇다면 어떻게 속수무책 외로움에 대응해야 할까.


외로움을 느끼기는 참 쉽다 친구, 가족들과 만나 시간을 보내도, 정작 하고픈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놓지 못한다면 자신도 모르는 외로움이 하나 쌓인다. 사람에 둘러싸인 하루를 보내더라도 자신만의 이유로 고립되고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 인간이다.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런 외로움의 속성을 이해하고, 자신이 외로운 순간이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인지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책에서는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은 나도, 어쩌면 너도 외롭다는 것을 자각한다면 조금은 더 ‘의도적으로’ 누군가에게 안부를 묻고,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도록 편안한 인간이 되는 것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앞서 이야기한 편지의 답장에서 나는 뒷 내용으로 ‘외로움의 반대말’을 자신 나름대로 만들어보면 어떻겠느냐고 했었다. 반대말이 없다는 건, 되려 외로움은 어느 것으로도 ‘반대’ 상태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이 아니겠냐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취향을 알아가는 것 또한 얼마든지 외로움의 반대가 될 수 있다고 얘기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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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그리고 지금까지 줄곧 외로움쯤은 혼자서 견디고 이겨내는 게 인간의 숙명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책을 통해 외로움을 이해할수록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기대고 있는 한자의 모습이 여느 때보다 따듯하면서도 필연과 같은 운명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굳이, 애써 부정하지 않고 외로움의 반대말은 ‘우리’로 하면 어떨까.


외로움을 이해하며, 기꺼이 사람에게 등을 내주고 또 기댈 여지를 많이 남겨두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외로움의 함정’을 읽어보기를 적극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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