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을 지어준 건 내 동생이었다. 그 뜻은 나중에 알게 됐다. 태어났을 때 너무 못생겨서 예쁘게 크라고 지어준 이름이었다.
2년 정도 지났을까. 나에게 막내 동생이 생겼다. 미신 아닌 미신으로 너의 털이 아기에게 좋지 않다고 하여 너는 이모네 집에 맡겨졌다. 이모 집은 마당도 넓으니 네가 훨씬 자유로울 거라고 생각했다.
매달 너를 보러 가다가 몇 개월 정도 못 가게 된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친척 언니에게 너의 엄마를 찾았냐고 연락이 왔다. 이모가 잃어버린 걸 말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분명 이모에게 따지고 화를 냈어야 하는데, 고작 11살이었던 나는 그때는 몰랐다. 그저 너의 엄마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낮이고 밤이고 울며 보호소를 찾아다녔다.
하교를 하고 왔을 때, 너의 엄마를 닮은 아이를 찾은 것 같다고 했다. 보자마자 너의 엄마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전단지를 몇 개월을 돌리고, 전국 보호소를 찾아다녀도 찾을 수 없었다.
너의 엄마는 사람들을 너무 좋아했고, 케이지를 넘어 자주 탈출을 시도했으니 분명 좋은 주인을 만나 자유로워졌을 것이라고 위로했다.
나는 고등학교를 가서도 꿈에서 너의 엄마를 가끔 만날 수 있었다. 일어나면 숨이 넘어가라 울어대서 부모님이 진정시켜주곤 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 술에 취하면, 번번이 너를 끌어안고 미안하다고 오열을 하는 바람에 온 집안 식구들의 잠을 깨웠다. 나중에는 내가 울면 “또 시작이구나” 하고 다들 방문을 닫았다.
경기도에 살던 나는 서울로 대학교를 다니면서 너와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매일 같이 있어도 나를 거들떠도 안 보던 너의 엄마와는 달리, 너는 그럼에도 나만 쫓아다녔다. 보통 밥을 주는 사람을 따라다닌다던데, 너는 내가 집에 있는 모든 시간에 내 무릎에, 내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 있었다.
지인 분이 키울 상황이 안 돼서 우리 집에서 너의 친구를 키우게 된 적이 있었다. 너의 질투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둘이 꼭 붙어서 자는 걸 보니 너의 외로움이 덜어졌겠구나 싶었다.
또 2년 정도 흘러, 지인 분이 너의 친구를 다시 데리러 오셨다.
부모님은 너와 보낼 수 있는 시간도 줄었는데 외롭게 혼자 두지 말고 같이 보내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다. 데리고 문밖을 나가시기 전, 나는 너를 두 번은 보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파트에 사는 나보다 전원주택의 풀밭을 뛰어노는 게 너한테는 더 좋을 수 있었지만, 분명 너는 나와 같이 있는 게 더 좋을 거라고 이기적인 생각을 했다.
너는 이제 10일이 지나면 18살이 된다.
작년에 첫 목디스크로 발작을 일으키며, 치매가 생겼는지 같은 곳을 빙빙 돌거나 구석에 짱 박혀서 꺼내달라고 화를 냈다. 카페트를 깔아줘도 꼭 카페트가 없는 곳에서만 걷기를 좋아했고, 신기하게도 화장실은 카페트에만 갔다.
공주처럼 키워서 훈련을 거친 적이 없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패드에만 화장실을 갔던 네가 기억났다. 또 몸에 뭐가 묻으면 어찌나 화를 내는지, 바로 씻겨주지 않으면 내내 화를 내서 너를 두고 외출하는 날에는 기저귀가 필수였다. 휠체어를 타고 볼일을 볼 때면 발바닥에 묻지 않게 두 발 다 드는 게 너의 주특기 중 하나다.
약을 먹으면서 근육이 감소해 넘어지는 횟수가 점점 늘었는데, 너는 절대 약에 지지 않겠다는 듯 일어나겠다고 발버둥치다 허벅지가 다 까졌었다. 허벅지가 까지든 말든 너는 곧 일어나서 또 구석에 짱 박혀서 화를 냈다.
올해 7월에는 두 번째 발작이 있었다.
첫 발작 때 너의 근육 유지를 위해 휠체어를 맞췄었는데, 이제는 휠체어 없이는 서 있지 못한다. 밥을 먹여줄 때는 먹기 싫어하던 너가 이제는 스스로 먹을 수가 없다.
여전한 건, 푹신한 곳이 아니면 잠을 안 자기 때문에 늘 내 침대에서 베개를 배고 같이 자는 것과 입맛이 까다로워 밥 냄새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코를 뿌리고 성을 내는 것이다. 과일은 사과만 먹던 너의 입맛도 변하지 않았다. 내 뽀뽀도 여전히 거부한다. 또, 더위도 추위도 많이 타서 우리집은 늘 겨울엔 덥고 여름엔 춥다.
잘 때 눈에 빛이 들면 네가 자꾸 깨서 내 방은 암막커튼이 없던 적이 없다. 누워 있는 게 마음에 안 들거나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일으켜달라 몸부림치며 화를 내고, 몸에 뭐가 묻어 씻겨주면 꼬리를 흔든다.
가끔 산책을 안 좋아하는 아이도 있다던데, 외출만 나가면 기절잠을 자는 너를 보며 산책을 좋아했던 게 아니라 나랑 같이 있는 순간이 좋았던 걸까 싶기도 하다.
너는 알지 모르지만 요즘 너의 별명은 아기 토끼다.
어느 순간부터 덮여 있던 귀가 쫑긋 서더니 제법 토끼스러워졌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으면 바로바로 성을 내고, 가끔 꼬리를 흔드는 묘기를 보여주기도 한다.
나는 대학원에 왔다.
공부를 좋아하는 것도 있고, 더 배워보고 싶은 분야이기도 했지만 사실 선택의 이유 중 가장 컸던 것은 너와 조금이라도 시간을 더 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해외 유학이 꿈이었던 터라 가끔 역마살이 도지긴 하지만, 옆에 누워서 두 눈 꼭 감고 아기처럼 자고 있는 널 보면 부풀었던 마음이 싹 가라앉는다.
가끔은 그래도 너의 인생도 한 번뿐인데 때를 놓치면 어떡하냐는 조언도 듣는다. 하지만 그렇기에 너의 옆에 있는 것이 행복하다. 너와 있느라 ‘때’를 놓치더라도 후회는 전혀 없다. 그건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하다.
6년 전인데도 아는 언니의 글 중에 명확하게 기억에 남는, 좋아하는 글이 있다.
“반짝이는 눈을 보면 내가 얼마나 너에게 중요한 존재인 지 알 수 있다고. 주는 것보다 더한 사랑을 받고 있다고. 사랑이 뭔지 헷갈리다가도 너를 보면 이리 명확해지는 걸. 너는 상처받더라도 내 곁에서 떠나지 않고 가장 여린 부분을 내게 맡겨두는 아이. 나는 너한테 사랑을 배워.”
너를 보면서 나는 사랑이 뭔지 생각하게 됐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보다, 네가 나를 얼마나 믿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그 믿음을 보면서 내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도 조금씩 알게 됐다.
나는 여전히 너에게 사랑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