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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Oxis, 물고기가 사람이 된다면 [음악]

마린 일렉트로니카, 바다 밑바닥에서 올라온 소리

by 서지민 에디터
2026.11.07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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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고기가 사람이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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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고기가 사람이 된다면 어떤 음악을 만들까. 아마 이런 소리일 것이다. 물속에서 듣는 것처럼 둥글게 뭉개진 전자음, 잘게 잘려 소용돌이치듯 돌아오는 목소리, 밀려왔다 빠져나가는 리듬. Oxis는 자신의 음악을 '마린 일렉트로니카'라고 부른다. 바다를 직접 들려주는 음악은 아니다. 파도 소리를 녹음해 넣은 상쾌한 여름 노래도 아니다. 그보다는 어릴 적 귀가 먹먹한 채로 잠겨 있던 물속에 가깝다. 어두운 수영장, 어두운 바다 안에서 눈을 떠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숨이 차오르다가 어느새 익숙해져 밑바닥으로 천천히 가라앉던 그 조용한 물속. 아무도 없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잠깐 무섭지만, 그 시간을 지나고 나면 이상한 평온함이 찾아온다. 분명 물속에 있는데 물속이 아닌 것 같은, 나는 물고기가 아니고 아가미도 없는데 괜찮은 느낌. 그녀의 음악은 그 기분을 선사한다.

       


      그녀는 자신의 음악을 듣기 가장 좋은 장소로 옷장 안을 추천한다.

      문을 닫고, 불을 끄고, 줄이 달린 싸구려 이어폰을 끼고. 좁고 어둡고 조용한 곳. 바다 밑바닥과 가장 닮은, 한 사람이 만들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
       

       

       

      참치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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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xis는 어릴 적 선생님이 그녀의 이름 발렌티나를 잘못 부르면서 '튜나', 참치가 되었다. 그 별명이 괜스레 그녀에게 더 깊이 남았다. 별명 중에도 유독 마음에 남는, 꼭 내 이름 같은 별명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녀는 참치 무리를 가리키는 라틴어 학명 Auxis에서 지금의 이름 Oxis를 가져왔다. 그녀는 Oxis를 자기 안에서 가장 연약한 부분이라고 말한다. 언젠가는 꺼내야만 했던 것. 남이 잘못 붙인 이름 중에도 자기 것으로 들리는 이름이 있다. 사실 이름은 원래 오해에서 시작된다. 스스로 자기 이름을 붙이는 사람은 없다. 내가 좋아하는 이소라의 노래에도 그런 가사가 나온다.


       
      나는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 날 만났고

      내가 짓지도 않은 이름으로 불렸네
      걷고 말하고 배우고 난 후로 난 좀 변했고

      나대로 가고 멈추고 풀었네


      Track 9 _ 이소라

       

       

      그래도 사람은 마음에 드는 이름은 오랫동안 기억한다. 그래서 그녀는 그 이름 안으로 헤엄쳐 들어갔다. 그녀의 곡에는 물고기들이 산다. 첫 곡의 제목은 그냥 ‘Fish’였고, 그 뒤로 ‘Goldfish’, ‘Piranha’, ‘Pike’, ‘Jawless’가 이어졌다. 바다에는 물고기가 3만 종쯤 있고, 그 이름들은 하나같이 재밌는 라틴어나 그리스어로 되어 있어서, 만들 노래가 아직 한참 남았다고 그녀는 말한다.

       

      그녀는 구글에서 아주 작은 물고기 사진을 찾아 앨범 커버를 만든다. 앨범마다 찾을 수 있는 가장 작은 물고기를. 큰 바다 속의 아주 작은 물고기, 우리 대부분이 느끼는 기분이 그렇다고. 생각해 보면 우리는 물고기 이름을 잘 모른다. 땅 위에 사는 동물에게는 사자, 판다, 소, 말, 양처럼 하나하나 이름을 붙여 부르면서, 바닷속 물고기들은 대부분 그냥 물고기라고 부른다. 큰 바다 속 작은 물고기는 아무도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다. 그래서 자유롭고, 그래서 외로움도 모른다. 원래 아무도 부르지 않았으니까.

       

       

       

      태평양


       

      가장 좋아하는 바다를 묻자 그녀는 태평양을 골랐다. 거기에 바다에서 가장 깊은 곳, 마리아나 해구가 있어서다. 그 바닥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참 좋겠다고 했다. 불안하거나 화가 날 때면 그녀는 실제로 그 깊은 바닥에 혼자 앉아 있는 자기를 떠올리고, 그녀의 음악은 바로 그런 감정이 가장 세게 차오르는 순간, 물 밖으로 터져 나오기 직전의 순간에서 흘러나온다.

       

      물속에서는 소리가 둥글어진다. 멀리서 들리는 것처럼 뭉개지고, 무게가 생기고, 천천히 움직인다. 반면 물 밖에서 감정은 시끄럽고 요란하기 마련이다. 소리는 날카롭고, 모든 것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기가 어렵다. 사람들 사이에 나가기만 하면 머릿속에 생각이 수십억 개씩 돌아간다고 그녀는 말한다. 감정이 격해지는 순간에 바다 밑으로 내려간다는 건, 감정을 없애는 게 아니라 감정이 들리는 방식을 바꾸는 일이다. 그녀의 전자음이 그렇다. 분명 무언가 끓어오르고 있지만, 그 끓음이 물을 한 겹 통과해서 거품처럼 전해져 온다.

       

      그녀의 음악에는 어둠과 빛, 침묵과 소음이 나란히 있다. 미니멀한 미감을 추구하는 그녀는 비어 있는 자리가 있어야 소리가 들린다고 말한다. 바다에서 모두가 적당한 거리를 두고 헤엄치듯이, 조용하기 때문에 작은 움직임 하나도 부드럽게 느껴지는 것처럼.

       

      싸구려 줄 이어폰을 끼고 Oxis의 노래를 들으면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싸구려 모텔 방이 떠오른다. 물고기 그림자가 천장과 벽을 헤엄치는 방에서, 조제는 츠네오에게 눈을 감아보라고 하고 무엇이 보이냐고 묻는다. 아무것도 안 보인다는 그에게 조제는, 그곳이 자기가 예전에 살던 곳이라고 말한다. "깊고 깊은 바다 밑바닥." 빛도 소리도 없고, 바람도 비도 없고, 정적만 있는 곳. 거기서 그를 만나러 헤엄쳐 올라온 거라고. 그래도 그다지 외롭지는 않았다고 한다. 애초에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저 시간이 천천히 흐를 뿐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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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제: 눈 감아봐. 뭐가 보여?
      츠네오: 그냥 깜깜하기만 해. 아무것도 안 보여. 
      조제: 거기가 옛날에 내가 살던 곳이야. 
      츠네오: 어딘데? 
      조제: 깊고 깊은 바다 밑바닥.

      난 거기서 헤엄쳐 나왔어. 

      츠네오: 왜?
      조제: 너랑 세상에서 가장 야한 섹스를 하려고. 
      츠네오: 그랬구나. 조제는 해저에서 살았구나. 
      조제: (독백) 그곳은 빛도 소리도 없고, 바람도 안 불고 비도 안 와. 정적만 있을 뿐이지.

      외롭지도 않아.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느리게, 느리게 시간이 흐를 뿐이야.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2003)
       

       

      아무것도 없어서 평온하고, 아무것도 없어서 외로움이라는 말조차 모르는 상태. Oxis가 앉아 있고 싶다던 마리아나 해구의 바닥도 그런 곳일 것이다. 그녀의 음악을 옷장 안에서 들으면, 잠깐 그 바닥 안에 가만히 앉아 있는 기분이 든다.

       

       

       

      에피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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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노래 ‘Goldfish’ 와 각종 뮤직비디오에는 스킨스의 흔적이 남겨져 있다. 그녀는 스킨스의 엄청난 팬이다. 열여섯 살, 막 세상을 의식하기 시작하던 나이에 그 드라마를 봤고, 그게 아주 세게 와닿았다고 한다. 지금 다시 봐도 너무 아프고 너무 진짜라서 견디기 힘들 정도라고. 그리고 그게 스킨스이고, 자기 음악도 그런 것이었으면 한다고 했다. 향수를 느끼게 하면서 동시에 마음을 열고 약해질 수 있게 하는 것.

       

      스킨스 속 인물 중 누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그녀는 에피를 골랐다. 트라우마를 딱 적당히 갖고 있으면서도 아이 같은 즉흥성이 있는 사람. 분노가 많지만, 자연과 고독 속에서 작은 평화를 찾는 사람. 바다 밑바닥에 앉아 있고 싶다던 그녀와 겹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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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뮤직비디오 에딧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섞여 있다. 스킨스, 이터널 선샤인, 트레인스포팅, 지브리 영화의 장면들, 그리고 그 위를 덮는 노이즈 낀 소리. 깨끗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그 지글거림이 오히려 화면 속 공간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오래된 비디오테이프를 돌려보는 것처럼, 기억 속 장면을 다시 꺼내보는 것처럼. 그녀가 직접 배워 만든다는 영상들도 그렇다. 소리에 반응해 움직이는 선과 덩어리들이, 완벽을 좇는 정밀함과 오래된 카메라의 지저분함 사이에서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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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스킨스를 보며 크게 상처 입었다. 너무 아프고 진짜라서. 이렇게 좋아하는 음악이 생겼을 때, 그 음악을 만든 사람이 숨겨놓은 이스터 에그를 발견하는 건 기쁜 일이다. 그녀의 뮤직비디오에서 지브리 영화의 장면들과 스킨스의 파편을 보았을 때, 그 음악이 조금 더 내 것처럼 다가왔다. 같은 드라마를 보며 같은 통증을 느낀 사람이 만든 파동이라는 걸 알고 나면, 그 소리 안의 날카로움도 괜스레 더 잘 느껴진다.

       

       

       

      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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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xis라는 소리가 처음 나온 건 2023년이었다. 그녀는 아무런 행복도, 의욕도 느끼지 못하던 때였다고 말한다. 메이저 레이블에서 막 계약이 끊긴 참이었다. 전자음악을 많이 듣지도 않았지만, 속에서 느끼는 이상한 것들을 표현하려고 할 수 있는 가장 이상한 걸 만들었다. 그게 Oxis였다. 오랫동안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녀는 한 곡에 하루 이상을 쓰지 않는다. 만들 때는 거의 정신을 놓은 채로 만든다고, 머릿속에 있던 걸 그대로 게워내는 거라고. 그녀는 완벽한 걸 좋아하는데, 감정적이라는 건 완벽주의의 정반대라서, 그래서 만들어 내놓을 음악이 그렇게나 많다고 했다. 어릴 적엔 피아노를 치고, 뮤지컬을 하고, 재즈 밴드를 하고, 클래식 성악 훈련을 받았다. 오랫동안 그 훈련을 미워했지만, 이제야 그 도구들을 자기 앨범에 하나씩 꺼내 쓴다.

       

      물고기는 헤엄치는 법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물의 흐름을 몸으로 안다. 그녀의 음악이 계산된 구조라기보다 조류처럼 들리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어디로 갈지 정해두지 않고, 물이 미는 쪽으로 간다. 그렇게 일곱 번째 앨범이 나왔고, 첫 투어에서 지칠 대로 지치면서도 그녀는 이미 여덟 번째 앨범을 만들고 있었다.

       

       

       

      물고기가 사람이 된다면


       

      물고기가 사람이 된다면, 아마 계속 물을 그리워할 것이다. 땅 위에서는 모든 게 너무 또렷하고, 너무 빠르고, 너무 시끄러우니까. 이름이 불리고, 얼굴이 보이고, 사람들 사이에서 생각이 수십억 개씩 돌아가니까. 그래서 숨이 막힐 때마다 몸속 어딘가에 남아 있는 바다로 돌아가려 할 것이다. 문 닫힌 옷장 안으로, 불 꺼진 방의 바닥으로. 하지만 한 번 물 위로 올라와 버린 물고기는 예전의 바닥으로 온전히 돌아갈 수 없다. 츠네오를 만나러 헤엄쳐 올라온 조제가 그랬다. 조제는 그가 떠난 뒤의 자신을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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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두 번 다시 그곳으로는 돌아갈 수 없겠지.
      언젠가 네가 사라지고 나면, 난 길 잃은 조개껍데기처럼 혼자 깊은 해저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겠지.

      ...그래, 하지만 그것도 나쁘진 않아."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2003)
       

       

      아무것도 없어서 외롭지도 않던 그 바닥은, 누군가를 만나고 난 뒤에는 더 이상 같은 바닥이 아니다. 이제 그곳에서 혼자 굴러다니는 건 외롭다는 걸 알아버렸으니까. 그래도 조제는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한다. 만났던 기억이 남아 있으니까. Oxis의 음악도 그렇다. 돌아갈 수 없는 바닥을 그리워하면서, 물 위에서 만난 것들을 노래에 담는다. 그녀의 곡들은 그렇게, 바닥으로 다시 가라앉는 대신 그 바닥에서 올라온 뒤의 기억을 품고 굴러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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