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털이 하듯 가볍게 시작했던 플레이리스트 톺아보기 프로젝트가 어느덧 세 번째 에피소드를 맞이했다. 나의 플레이리스트 네이밍은 주로 년도와 계절 명으로 이루어진다. 가령 올 봄에 생성한 리스트의 이름은 ’25 Spring’와 같은 이름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만큼 내게 플레이리스트는 나의 시절 한 구석을 함께하고, 그 계절을 연상시키는 존재이다.
그 중에서도 프로필 뮤직에 올려둔 것들은 더욱이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나는 주로 계절이 끝나감과 함께 질려버린 리스트들은 과감히 처분하고 새 리스트를 생성하지만, 그럼에도 유독 마음에 감겨 잊고 싶지 않은, 언젠가 한번씩 꺼내 듣고 싶어 지는 노래들을 엄선하여 30개로 제한된 프로필 뮤직으로 올려두곤 한다.
새삼 프로필 뮤직을 되새김질하는 이 과정은 지금 생각해보면 나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음악과 함께 찬란했던 나의 시절을 찬미하고, 또 때로는 음악으로 위로 받았던 고통의 시간들을 이미 모두 겪어낸 현재의 내가 보듬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준다.
그리하여 나는 이번에도 다시 되새김질을 해보려 한다.
송소희 – 진한 바다를 거슬러
나는 물과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 참 좋다. 그것이 강이든, 바다든 간에. 도심에 있을 때는 한강 곁을 찾아가고, 여행지에서는 가능하면 꼭 바닷가에 가려고 한다. 끝없이 밀려 가다 밀려오는 물결을 바라보다 보면 온갖 번민들이 그저 그런 것들로 느껴지곤 한다. 저 거대한 물결 앞에서 그런 것들은 작아지고 말아서, 그게 참 위로가 되는 것이다.
때로는 물고기가 되고 싶기도 했다. 현실의 나는 수영조차 못하는 인간이지만, 상상 속에서나마 나는 아가미와 비늘을 가진 물고기가 되어 동경하던 물결 속에 몸을 맡긴다. 그럼 바라다 보기만 했던 그들이 나의 온 살결을 스치고 다가와 말해줄 것만 같았다. ‘가까이 와, 평안을 나눠 줄게, 생각보다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헤엄치는 이 진한 바다 안
옅은 위의 바다 저 멀리 보이니
시리고도 어두운 물결 거슬러
가자 다시
하염없이 잠겨
우리의 잘못이 아니야
가까이 더 와줘
숨을 후 나눌래”
송소희가 창작하는 독특한 음악 세계를 처음 접한 것은 그녀의 미발매곡 ‘Not a dream’을 통해서였다.
국악 특유의 창을 하듯 묵직한 감정이 서린 목소리가 독특한 멜로디 위로 얹어지는 것이 참 취향이어서, 프로필 뮤직에 넣으려고 보니 미발매곡이라 서칭이 되지 않았다. 대신하여 넣을 곡을 찾다가 만나게 된 것이 이 곡이다.
물결을 보며 내가 느끼던 이루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들은 이 곡을 통해 되살아 나곤 한다. 얼마전 떠났던 강릉 여행에서 밤바다를 보며 이 곡을 다시 꺼내 들었다. 시리고도 어두운 그 물결이 무섭다기보다 안온하게 느껴졌다.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켜온 잃어버린 고향을 마주한 것 같이.
허회경 – 그렇게 살아가는 것
나의 어린 시절 주말의 시작과 끝은 거의 대부분 덜컹거리는 자동차 뒷좌석이었다. 지금은 그리운 추억으로 남겨져 있지만, 그 시절 우리 가족은 주말이면 따로 약속하지 않고도 차를 타고 어디든 떠났다. 부모님이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 소리를 뒤로 하고 덜 자란 몸을 뉘인 채 차창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던 그 순간.
그 순간이 나에게는 평안과 동시에 ‘죽음’에 대해 몰입하는 시간들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별났지만, 나는 초등학생 저학년 시절부터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죽으면 다 끝인걸까, 나의 지금 이 생각도, 내 존재도, 내가 사랑하던 모든 것들도.
그렇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면 문득 차라리 죽는게 나을 것만 같은 공포가 찾아오곤 했다.
“익숙한 듯이 살아가는 게
가끔은 너무 무서워 나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저
조용히 생각에 잠겨
정답을 찾아 헤매이다가
그렇게 눈을 감는 것“
지금 당장 그런 생각들을 멈추고 익숙한 듯 살아가는 것이 최선임을 알고 있음에도 돌아오는 차 뒷좌석에 누우면 그런 생각들이 문득 문득 들이치곤 했다. 그렇다고 아무리 골똘히 생각해보아도 마땅히 거창한 삶의 의미나 이유를 찾아내지도 못해 끝도 없이 생각에 잠기던 시간들이었다.
지금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허회경의 노래 속 가삿말처럼 내가 그 시절 찾아 헤매이던 정답은 사실 정해진 것이 아니라는 걸 말이다. 누군가가 정해준 정답이 있다면 참 좋겠지만, 그렇지 않기에 결국 나의 익숙한 삶들은 지속될 것이다.
그 안에서 내 나름의 답을 찾아가는 이 여정에서 이제는 조금쯤 덜 무서웠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