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 <곡성> 이후로 10년 만에 개봉한 차기작이라고 한다. 나홍진 감독의 이전 작품들을 흥미롭게 봤던 터라 이번 작품 역시 꽤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호프>의 평은 극단적으로 갈렸다. 1점 아니면 4점뿐인 극단적인 후기 글들이 넘쳐났다. 심지어 이동진 평론가는 영화에 4점을 줬다는 이후로 사람들에게 악플 테러를 받아 해명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쯤 되니 <호프>가 도대체 어떤 영화길래 이렇게 극단적으로 평이 갈리는지 너무 궁금해졌다. 그리고 과연 나는 악평을 남길지 호평을 남길지도 궁금해졌다.
한국 SF 장르의 새로운 발견
영화를 보고 난 후 가장 처음 든 생각은 ‘재밌는데?’였다. 영화는 SF 장르에 맞게 외계인들이 대거 등장한다. 외계인들은 지구인인 호포리 사람들과 대적하며 영화의 러닝타임 내내 공격성을 띠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서 재밌는 점은 외계인의 생김새다. 외계인의 생김새는 한국 영화에서 보기 힘든 ‘에일리언’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초록빛 피부에 공룡처럼 거대한 몸집, 그리고 다소 기괴한 신체 구조까지. 한국 시골 마을인 ‘호포리’에 등장하기엔 다소 이질적인 모습이지만, 오히려 그런 언발란스함이 영화의 매력을 돋보이게 했다.
외계인이 등장하기 전 초반 40분 동안 호프는 관객들로 하여금 그들의 모습을 상상에 맡긴다. 다소 일상적인 느낌의 영화 초반부는 소가 죽은 모습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이후 범석과 성기의 일행이 각각 소를 죽게 만든 정체를 찾아가는 것으로 영화가 전개된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되며 그 정체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언제 그 생물체가 등장할지 모른다는 긴장감이 나의 공포심을 점점 고조시켰다. 마침내 외계인의 모습이 등장했을 때는 그 생명체에 압도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내 영화의 2막이 열리는 기분이었다. 본격적인 외계인과 인간의 추격 액션극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적인 감성에서 느껴지는 매력
범석은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여 호포리를 쑥대밭으로 만든 외계인 ‘바미기르’가 어린 외계인 ‘칼리’의 부모라는 오해를 하게 된다. 여기서 '칼리'는 양배가 산에서 죽였던 외계인으로, 어린아이의 모습과 닮아있는 것이 특징이다. 범석은 성애의 차를 타고 마을 사람들을 모조리 죽여버린 바미기르를 죽이려고 총을 쏜다. 그런데 그 순간, 눈물을 흘리는 그의 모습을 보며 범석은 마음이 약해지게 된다.
이후 범석은 양배가 바미기르의 아이를 쏴 죽였다고 생각하여 ‘이런 행동을 하고도 웃음이 나오냐’라며 아이를 잃은 바미기르에 이입한다. 이 부분이 재미있었다. 외계인이라는 인간과 전혀 다르게 생긴 종족에 이입하며 모성애를 느끼는 범석의 모습은 한국인 특유의 ‘정’을 드러내는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더더욱 범석은 작은 항구 마을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공동체적인 유대감을 더 깊게 느꼈을 것이다.
성기가 외계인 ‘마베이요’에게 도발하는 장면도 재미있었다. 크기와 힘에서 압도적으로 강력한 상대인 마베이요에게 계속해서 공격을 당하자, 성기는 화가 나서 ‘지구인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나 보여줄게.’라며 도발한다. 결과는 당연하게도 성기의 패배였다. 그렇지만 이 장면에서 한국 영화 특유의 감성이 느껴졌다. 영화 ‘괴물’이나 ‘타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같은 2000년대 초반 한국 영화 말이다. 상대를 도발하며 싸움을 유발하는 한국 범죄 영화 특유의 클리셰가 외계인을 상대로 나타나니 재미있었다.
성애, 범석, 그리고 호포리 사람들
호포리 사람들은 정말 대담하고 정의롭다. 외계인을 인생에서 처음 마주친 사람들치고는 아주 의연하게 대처하고, 어디서 구해온 건지 모르겠는 각종 총과 무기들로 외계인에 맞선다. 마을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총으로 무장하여 트럭에서 외계인에 맞서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이들의 전투력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그래서 그런지 호포리 사람들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특히 성애는 ‘아무리 괴물이라도 이럴 순 없는 거예요!’라며 괴물에 맞서 끝까지 싸운다. 성애는 경찰이라고 하기엔 다소 허술하고 말투도 어린애 같지만, 본인이 생각한 것은 끝까지 밀고 나간다. 특유의 명랑함과 당찬 모습으로 말이다.
범석도 마찬가지로 마을의 권위 있는 경찰 경위치고는 다소 허술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범석은 미지의 존재를 향한 두려움과 공포감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데, 이는 우리가 주인공에게 더 몰입할 수 있는 하나의 장치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개연성과 현실성을 떠나 호포리의 상황 속에서 범석은 슈퍼 히어로처럼 그려지기보단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인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앞으로 나아갈 희망
영화의 결말은 함선이 침몰하며 극으로 치닫는다. 범석 일행과 외계인의 스릴 있는 카체이싱 장면 이후로 성기는 표지판에 부딪혀 떨어지고, 외계 함선이 산에 떨어지며 이들은 마을로 무작정 뛰기 시작한다. 범석은 성기를 잃은 후 성애와 대화하던 중, 머릿속이 잘 정리가 안되고 마음이 이상하다며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여기서 솔직히 뛴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인간으로서 이들이 느낄 수 있는 건 무력감과 허탈감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범석과 성애, 낙연은 계속 달린다. 아무것도 바꿀 수 없을지라도 무작정 달려서 사람들을 구하러 간다. 왠지 이 장면에서 호프의 제목이 왜 '호프’인지 깨달았다. 어쨌든 이 영화도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던 것 아닐까? 불가항력의 상황 속에서도 앞으로 달려 나가는 인간의 끈기와 존엄성을 말이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과거의 것은 이미 버려둔 채 앞으로만 나아가는 인간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전 우주적 관점에서 인간은 한낱 작은 먼지일 뿐이니까.
영화를 보는 내내 계속 웃음이 나왔다. 이 영화에선 외계인이 어떻게 등장했는지, 이들이 어떻게 총을 가졌는지, 대한민국 정부는 이 긴박한 상황 속에서 도대체 뭘 하고 있는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호프에서 중요한 것은 미지의 존재에 맞서 싸우는 것뿐이다. 진지한 고찰이 들어가는 순간 이 영화는 맛이 없어진다. 대한민국의 뿌리 깊은 전투 민족정신. 이것이 호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