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시 한 편을 찾아 읽었다. 과거에 구절 하나에 꽂혔던 작품이다. 생각해보니 나는 한 번도 그 작품의 전문을 읽어본 적이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구절이 처음인지, 중간인지, 끝인지도 이번에서야 알았다.
돌아가고 싶은 세상이 있었다
이건 내가 빠졌던 구절이고, 작품 제목은 '지구 6번째 신 대멸종(최백규 시인)'이다.
봄이 와도 죽음은 유행이었다
꽃이 추락하는 날마다 새들은 치솟는다는 소문이 떠돌고
창밖엔 하얀 유령들만 날렸다
네 평 남짓한 공간은 개의 시차를 앓고
핏줄도 쓰다듬지 못한 채 눈을 감으면 손목은 파도의 주파수가 된다 그럴 때마다 불타는 별들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누구나 살아 있는 동안 심장 끝에서 은하가 자전한다는 사실을 안다 늙은 항성보다 천천히 무너져가는 지구라면 사각의 무덤 속에는 더러운 시가 있을까
흙에서 비가 차오르면 일 초마다 꽃이 지는 순간 육십 초는 다음 해 꽃나무
퍼지는 담배 향을 골목에 앉아 있는 무거운 돌이라 생각해보자
얼어붙은 명왕성을 암흑에 번지는 먼 블랙홀이라 해보자
천국은 두 번 다시 공전하지 못할 숨이라 하자
이것을 혁명이자 당신들의 멸망이라 적어놓겠다 몇백억 년을 돌아서 우주가 녹아내릴 때 최초의 중력으로 짖을 수 있도록, 모두의 종교와 역사를 대표하도록
두 발이 서야 할 대지가 떠오르면 세계 너머의 하늘이 가라앉고 나는 그 영원에서 기다릴 것이다
돌아가고 싶은 세상이 있었다
지구 6번째 신 대멸종/최백규
거대하고 광활한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 단어들이 수없이 등장하는 시를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솔직히 '화자는 어디에 그렇게 돌아가고 싶었을까' 하나였다.
이 시는 읽다보면 좀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 든다. 무거운 돌이나 블랙홀, 두 번 다시 공전하지 못할 등의 단어들이 자꾸자꾸 나를 끝없는 우주 어딘가로 내던지는 기분이 든다. 그렇게 무겁게 억누르고 멀리 내던지면서 영원한 건 없다는 걸 상기시키는 기분이 든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굳이 되새기며 살지는 않는 "모든 인간은 결국 죽게 돼 있어"라는 말을 계속해서 내 귀에 속삭이는 것도 같다.
허무함 뒤로 맥 빠지게 만드는 건 그 다음이다. 화자는 그 행동과 대비되게 "그 영원에서 기다린다"고 한다. 이건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는 영원한 불변에서 그럼에도 기다린다는 의미일까, 어차피 세상은 새로운 영원이 찾아오니 그것을 기다린다는 의미일까. (두 가지 다 지극히 개인적인 해석이다.)
내가 분명하다고 느낀 건 화자가 이상을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 하나였다. 이를테면 운명이라거나 다시 만날 거라거나가 아니다. 그저 돌아가고 싶은 세상이 있었다고 할뿐이다. 심지어 돌아가고 싶은 세상의 환상적일 수 있는 모습들은 하나도 알려주지 않는다.
시를 보면서 가진 궁금증을 나는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다. 시인이 혼자만의 마음 속에 숨겨뒀을 수도 있고, 시인도 모른 채 화자만 알고 있을 수도 있다.
그 공백이 무엇보다 마음에 들어서 어느 쪽이든 상관은 없다. 내가 돌아가고 싶은 세상을 독자들은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지 않는가. 그래서 이 시는 앞으로도 나를 돌아가고 싶은 세상으로 데려가줄 것 같다. 다만 그곳은 여전히 돌아가지 못할 세상이겠지만.
이 시를 읽으면서 떠오른 노래가 하나 있다.
하현상의 'US'라는 노래다.
따지고 보면 두 가지가 말하는 방향은 조금 다르다. 시는 "돌아가고 싶은 세상이 있었다"고 말하는 한편 이 노래는 "나는 너의 품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야"라고 말한다. 둘이 바라보고 있는 방향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노래의 다음 가사는 "하지만 너와 나(우리)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다. 어떤 이유에서든 이 가사의 주인공(가수를 말하는 게 아니다)은 그에게로 돌아가지 않을 것 같다. 멀어진 이유를 반복하고 싶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이미 서로는 그때의 서로가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문득 나는 이 주인공에게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들어?"라는 질문을 하고 싶어진다. 지금의 그 사람은 다를 수 있지만 그 시절의 그 사람이라면 다시 보고 싶지 않은가 하는. 다양한 방향을 생각해 본 결과, "아니"라는 답변이 오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럼에도 두 가지가 비슷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왜일까. 결국은 이러나 저러나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인가. 혹은 남아있는 것이 있어서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