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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타인을 들여다보다가 나를 발견하는 일 [도서]

누군가의 문장에서 나의 마음을 발견하기까지

by 강효정 에디터
2026.08.19 15:49

빛과 실 표지.jpg

 

 

한강의 책 <빛과 실>을 읽으며 계속해서 생각한 것은 ‘나는 왜 살아가는가’라는 질문이었다.


거창한 답을 찾으려는 것은 아니었다. 한 생명이 다른 생명을 보듬고 구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같은 사건을 마주하고도 누군가는 오해하고 화를 내는 반면 누군가는 공감하고 따뜻하게 배려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책을 읽는 동안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들이 떠올랐다.


질문을 떠올렸다고 해서 당장 답을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물음은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아 있다가 어느 날 문득 답을 보여주기도 한다. 생각하는 일은 답을 얻기 위한 과정이라기보다, 질문을 품은 채 살아가는 과정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나는 책을 읽는 일이 결국 타인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삶을 따라가고, 내가 보지 못했던 시선을 경험하면서 조금씩 나 자신을 이해하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책을 읽는 동시에, 나를 이해하기 위해 타인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문장 속에서 ‘나와 같은 생각’을 발견할 때


 

책을 읽으며 유독 반가운 순간이 있다. 평소 혼자만 품고 있던 생각을 누군가가 정확한 문장으로 표현해 놓았을 때다.


‘나도 이런 생각을 했는데.’


그 순간 묘한 쾌감이 든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는 안도감과 함께, 내가 막연하게 느끼고 있던 감정에 이름이 생기는 것 같다.


한강 작가가 책에서 ‘일인칭’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나 역시 오래전부터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생각한 적이 있다.


나는 정말 우주 먼지 같은 존재가 아닐까.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 잠시 스쳐 지나가는 한 사람일 뿐이고, 내가 죽은 뒤에도 내가 다녔던 장소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오히려 주변의 사람들이 궁금해진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창밖으로 걸어가는 사람을 바라보며 ‘저 사람은 어디로 가는 걸까’ 생각한다. 몇 살쯤 되었을까, 지금 휴대전화로 누구와 대화하고 있을까. 연인일까, 부모님일까, 친구일까. 가방에 달린 인형은 어디에서 받았을까. 직접 산 것일까. 타인에 관한 궁금증이 꽃을 피운다.


목적지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조금 전까지 품었던 궁금증은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보고 듣고 궁금해한 것들이 은연중에 남아 기억 창고에 쌓인다. 누군가의 기억은 소금 한 톨만큼 가볍게, 누군가의 기억은 습한 날 내리는 폭우만큼 무겁고 끈적이게.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 동안 나는 변하고 있다


 

인생은 어쩌면 자기 의심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여러 선택지 가운데 무엇을 골라야 할지 고민하면서 나는 끊임없이 나 자신과 싸운다. 이전의 나는 ‘그걸’ 선택하지 않았을 텐데, 지금의 나는 ‘이게’ 더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는 왜 바뀌었을까.


사람과의 관계 때문일까. 혼자 있는 시간에 했던 생각 때문일까. 가족의 영향일까. 사회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 때문일까.


수많은 시각 정보가 매일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그 모든 것을 똑같이 기억하지는 않는다. 그중 유난히 마음에 와닿는 것들이 있고, 이상하게 오래 기억에 남는 것들이 있다. 내가 무엇에 반응하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지금의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도 조금씩 보인다.


따라서 나는 내가 변해가는 과정을 너무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맞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나를 믿어주자. 일단 믿고 가보자.’


물론 다른 사람의 말을 전부 무시하자는 뜻은 아니다. 다만 다른 사람의 시선만큼 내 선택과 안목도 믿어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돌이켜보면 나는 나 자신에게 꽤 가혹했다.

 

 

P.12

'하나의 장편소설을 쓸 때마다 나는 질문들을 견디며 그 안에 산다. 그 질문들의 끝에 다다를 때 – 대답을 찾아낼 때가 아니라 – 그 소설을 완성하게 된다.

 

그 소설을 시작하던 시점과 같은 사람일 수 없는, 그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변형된 나는 그 상태에서 다시 출발한다. 다음의 질문들이 사슬처럼, 또는 도미노처럼 포개어지고 이어지며 새로운 소설을 시작하게 된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보이는 것들


 

고등학생 때는 어느 분야를 선택해야 할지, 어떤 학과를 가야 할지 고민했다. 대학에 들어간 뒤에는 취업 걱정 때문에 힘들었고, 인턴으로 회사에 다닐 때는 이 직업과 업무가 정말 나에게 맞는지 다시 의심했다.


계속해서 선택하고, 의심하고, 다시 선택한다.


생각해보면 그 모든 과정이 나를 조금씩 바꾸어 놓았다.


부모님이 아침마다 만들어주신 밥을 먹던 고등학생이 어느새 성인이 되어 회사에 다니고 있다. 같은 방에서, 같은 집에서 살던 나는 이제 매일 아침 집을 나서며 가족에게 인사를 한다.


“갔다 올게.”


별것 아닌 한마디인데 어느 순간부터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난다.


내가 벌써 20대 중반이라고?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나를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 역시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지 알 수 없다. 지금 떠오르는 질문에 당장 완벽한 답을 내리지 않아도 괜찮다. 어쩌면 몇 년 뒤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답을 건네줄 수도 있으니까.

 

 


아픈 기억을 잊지 않고 현재까지 데려오는 것



 

P.20

‘할 수 있는 것은 내 몸의 감각과 감정과 생명을 빌려드리는 것뿐이었다.’

 

 

<빛과 실>을 읽으며 나는 내가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도 생각했다.


나는 타인의 아픈 사건을 기록하는 글을 쓰고 싶다. 잊어서는 안 되는 사건을 현재까지 끌어오는 글이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처럼 과거의 고통을 단순히 지나간 사건으로 남겨두지 않고,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속에 다시 불러오는 글을 쓰고 싶다. 기억한다는 것은 사건의 날짜와 내용을 외우는 일이 아닐 것이다. 그때 누군가가 무엇을 느꼈는지, 어떤 삶을 살고 있었는지를 바라보는 일이다.


내 감정에도 솔직해지고 싶다. 자세히, 천천히 들여다보고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 무엇을 보았는지, 무엇을 들었는지, 무엇을 먹고 만졌는지를 기록하고 싶다. 기록은 지나간 것을 붙잡아두는 일이면서 동시에 현재의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남기는 일이기도 하다.

 

 

 

답을 찾는 삶보다 질문을 품는 삶


 

 

P.34

‘우리는 왜 태어났는지. 왜 고통과 사랑이 존재하는지. 그것들은 수천 년 동안 문학이 던졌고, 지금도 던지고 있는 질문들입니다.


이 세계에서 우리가 끝끝내 인간으로 남는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가장 어두운 밤에 우리의 본성에 대해 질문하는, 이 행성에 깃들인 사람들과 생명체들의 일인칭을 끈질기게 상상하는, 끝끝내 우리를 연결하는 언어를 다루는 문학에는 필연적으로 체온이 깃들어 있습니다.’

 

 

<빛과 실>을 덮고 나서도 질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왜 살아가는가. 무엇이 한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가. 왜 같은 사건 앞에서 사람마다 다른 감정을 느끼는가. 나는 무엇에 영향받으며 지금의 내가 되었는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어갈 것인가.


아직 명확한 답은 없다.


하지만 이제는 답이 바로 나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질문을 품고 살아가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지나간 시간 속에서 답을 발견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누군가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타인의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이상하게도 마지막에는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나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무엇에 마음이 움직이고 있는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가.


어쩌면 인생은 그 질문들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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