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이 터진 호텔에서 빠져나온 쿠도 히나를 구동매가 업고 걷는다.
히나는 동매가 고애신을 사랑한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음에도, 자신이 동매를 오랫동안 기다려 왔다고 말한다. 얼마 뒤 히나가 숨을 거두자 동매는 그를 ‘양화야’라고 부른다. 애신을 사랑한 동매가 히나의 마지막을 지키는 이 장면을 보고 나면, 두 사람의 관계를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 쉽게 답을 내리기가 어려워진다.
작중 동매가 애신을 사랑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다만 그 마음을 어릴적 자신을 구해준 사람에 대한 동경으로만 본다면, 동매가 애신에게 건넨 ‘호강에 겨운 양반 계집’이라는 말을 설명할 수 없게 된다.
애신은 쫓기던 동매를 가마에 태워 살려주었지만, 동매는 여전히 백정의 아들이고, 애신은 양반집 여식이었다. 동매가 내뱉은 그 말에는 애신에게 느낀 고마움과 더불어 멸시받는 본인의 처지에 대한 분노가 함께 묻어 있는 것이다. 애신은 그에게 은인이라는 한마디로 정리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마지막으로 만난 애신은 어린 동매가 내뱉은 말이 자신을 오래 괴롭혔다고 고백한다. 동매는 애신이 그 말을 아주 잊었기를 바라면서도 그토록 아팠다는 말을 듣고는, 그렇게라도 자신이 애신의 삶에 한순간이라도 가졌다면 만족한다는 듯한 마음을 보인다. 애신이 괴롭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자신을 어떤 방식으로든 기억했다는 사실에는 위안을 느끼는 것이다.
동매가 스스로를 ‘안 될 놈’이라 부르는 건 그 위안이 애신의 아픔에서 왔다는 걸 알기 때문일 것이다.
히나와 동매의 관계는 서로가 서로를 대하는 모습에서 드러난다.
히나는 동매에게 아버지에게 뺏긴 자신의 본명이 ‘이양화’라고 알려준다. 어머니의 죽음을 알고 동매 앞에서 무너져 울었을 때, 동매는 마음을 다해 히나를 위로한다. 히나에게 동매는 사랑하는 사람이면서, 슬픔을 숨기지 않고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둘 사이의 그 가까움이 동매의 연정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히나의 마음은 동매를 오랜 시간 기다려왔다는 마지막 고백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동매의 마음 또한 같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은 작중에 등장하지 않는다. 둘을 서로 사랑한 연인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단순한 우정이라고 말하기에도 이들 관계의 농도는 너무나 짙었다.
동매가 누구에게 연정을 품었는가를 묻는다면 답은 애신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히나는 동매를 마음을 다해 아꼈고, 동매 역시 히나를 진심으로 위했다. 두 사람이 같은 마음을 주고받았는지는 끝내 알 수 없다.
그러나 연인이라는 이름으로 묶을 수 없더라도, 서로에게 기댈 수 있었던 그 관계에는 분명히 사랑이 존재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