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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연약한 인간들이 끝내 살아가는 법 - 도대체 '기억을 먹는 아이' [도서/문학]

“세상에서 영- 영- 없어졌으면 하는 거 없어요? 내가 다 먹어줄 수 있거든요.”

by 오가영 에디터
2026.07.13 22:07

 

 

"세상은 살아갈수록 미련이 쌓이고, 후회할 시간이 부족한 곳이군요."

    

「기억을 먹는 아이」 속 눈송이는 세상을 살아본 적도 없으면서, 한 인간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을 이처럼 요약한다. 이 책에는 기억을 먹는 아이부터 은행나무, 풍선, 눈송이까지 인간의 바깥에 있는 존재들이 등장한다. 시대와 장소는 뚜렷이 특정되지 않는다. 이야기마다 현실의 법칙을 벗어난 사건이 펼쳐지며, 화자도 끊임없이 달라진다. 그러나 그들이 들여다보는 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마음이다.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하는 마음,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 다른 삶을 선택하지 못했다는 후회, 아직 겪지 않은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우화적인 설정 속에 담긴다.

 


기억을먹는아이 표지.jpg

 

 

표제작 「기억을 먹는 아이」는 지우고 싶은 기억을 대신 먹어주는 아이의 이야기다. 길에서 슬픈 표정의 사람을 발견한 아이는 이렇게 말을 건다.

 

"세상에서 영- 영- 없어졌으면 하는 거 없어요? 내가 다 먹어줄 수 있거든요."

 

아이는 사람들이 없애고 싶어 하는 기억을 대신 먹어준다.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기억이지만 아이에게는 무엇이든 먹어 없앨 수 있는 것이 된다. 떠올리는 것조차 괴로운 기억 앞에서 아이는 이유를 캐묻거나 섣불리 위로하지 않고,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곁에 다가간다. 기묘한 능력을 지닌 아이가 슬픈 사람을 먼저 알아보는 모습에는 이 책 특유의 엉뚱하고 다정한 위로가 담겨 있다.

 

표제작이 지워버리고 싶은 지난 기억을 들여다본다면, 마지막에 수록된 「눈송이」는 아직 겪어보지 않은 세계를 바라본다. 구름 위에 머무는 눈송이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 알지 못한다. 다른 눈송이들이 구령에 맞춰 세상으로 뛰어내리는 동안, 홀로 남은 눈송이는 바람을 타고 올라온 존재들에게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세상은 어떤 곳인가요?"

 

풍선은 세상을 화려한 곳이라고 말하고, 은행잎은 고요한 곳이라고 답한다. 비닐봉지에게 세상은 무엇이든 사고 버리는 곳이며, 풍등에게는 저마다 소원을 비는 곳이다. 같은 세계를 지나왔지만, 이들이 기억하는 세상의 모습은 제각기 다르다. 눈송이는 여러 존재에게 같은 질문을 건네지만 누구도 같은 세상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는 대답을 들을수록 세상을 알게 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많은 고민에 빠지는 이유다. 세상은 화려하면서도 고요하고, 무언가를 얻는 곳인 동시에 잃고 버리는 곳이며, 희망을 품게 하면서도 미련과 후회를 남기는 곳이다. 작품은 이처럼 겹쳐진 세상의 얼굴 가운데 하나만을 정답으로 고르지 않는다. 눈송이가 서로 다른 대답을 모두 듣고도 망설이는 모습을 통해, 타인의 경험만으로는 아직 살아보지 않은 세계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기억을먹는아이 본문이미지.jpg

 

 

마지막으로 만난 기러기는 세상을 설명하는 대신, 눈송이가 그곳에서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를 말한다.

 

"눈송이로 존재하는 거지. 그리고 눈송이여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되겠지."

 

눈송이는 끝내 세상에 대한 확실한 답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기러기가 건넨 말은, 모든 것을 미리 알아야만 세상으로 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일러준다. 어디에 내려앉고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는 알 수 없어도, 눈송이는 그곳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기억을 먹는 아이」가 건네는 위로도 이와 비슷하다. 상처를 쉽게 치유하거나 삶의 정답을 제시하는 대신, 불완전하고 연약한 존재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기억을 지우고 싶은 사람도, 세상으로 내려가기를 망설이는 눈송이도 단번에 강해지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이야기는 이들이 다시 움직일 수 있는 작은 틈을 마련한다.

 

마침내 커다란 구름이 다가오고, 세상으로 내려갈 준비를 마친 눈송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눈송이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 끝내 하나의 문장으로 정의하지 못한다. 다만 기대와 걱정, 희망이 뒤섞인 채 눈을 감고 깊이 숨을 들이마신다.

 

하나!

두울!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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