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덮고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리뷰 기사에 쓸 사진이었다. 사진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이 사진은 어떻게 음성해설 할 수 있을까? 시각 장애인이 이 기사를 읽는다면 기사 첫머리에 있는 이 사진을 어떻게 설명하는 것이 적절할까? 책을 읽고 생긴 자연스러운 궁금증이었다. 나는 이 책 속 음성해설 예시와 책의 표지를 음성해설 한 영상을 참고해 몇 줄 적어 보았다.
기사 상단에 있는 사진 설명입니다. 부드러운 연갈색 원목 책상 위에 도서 <보이지 않지만 볼 수 있는>이 놓여 있습니다. 차분한 하늘색 책 표지 위에는 '보이지 않지만 볼 수 있는'이라는 제목이 희미한 회색으로 적혀 있습니다. 책은 왼쪽으로 40도 정도 기울어져 있고, 카메라 각도에 의해 표지 하단이 약간 잘려 있습니다.
고작 네 문장을 적으면서도 몇 번을 멈칫 했다. 무엇을 설명할지, 어떤 단어가 가장 알맞을지 쉽게 결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표지 하단이 약간 잘려 있습니다."라는 표현이 고민되었다. 혹여나 누군가는 책이 훼손되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싶어, '카메라 각도에 의해'라는 어구를 덧붙였다. 그제야 저자가 말한 '방법(how)'과 '무엇(what)'보다 앞서는 '마음(mind)'이 무엇인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눈앞의 풍경을 빠짐없이 옮기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필요한 정보를 적확한 언어로 전달하는 것. 잘못 받아들이지는 않을까, 이해하기 쉬울까, 상대의 관점에서 한 번 더 고민하는 마음이었다.

도서 <보이지 않지만 볼 수 있는>(도서출판 어떤책, 2026)의 저자 서수연은 우리나라 1호 음성해설 작가이자 성우이다. 2003년 드라마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의 음성해설을 쓴 이후로 20여 년간 약 7,800개의 드라마, 영화, 연극, 뮤지컬, 코미디 프로그램, 전시 등의 음성해설을 써 왔다. "음성해설에 미친 사람"(196p)이었던 그는 우리나라의 음성해설 발전과 발맞추어 음성해설 작가로서의 커리어를 이어왔다. 그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이 에세이는 거창하게 말하자면 국내 음성해설의 역사서이기도 하다.
그래서 책에는 음성해설이 발전되는 흐름과 함께, 음성해설 작가의 현실적인 고민이 세밀하게 담겨 있다. 실제로 음성해설 업계에 있지 않다면, '보이지 않는' 고민을 비로소 '볼 수 있게' 해 주는 데 이 책의 가치가 있다. 업계 밖에 있는 사람에게 음성해설 작가는 화면 속 내용을 "받아쓰기"하는 직업으로 생각되기 쉽다. 그러나 그가 털어놓는 음성해설 작가로서의 고민과 딜레마를 읽다 보면 이 직업에 대한 해상도가 자연스럽게 높아진다.
서수연 작가는 음성해설을 쓸 때, 대사와 대사 사이의 한정된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무엇을 설명하고 무엇을 설명하지 않을 것인지, 화면 앞에 해설을 넣을 것인지 뒤에 넣을 것인지를 고민한다. 그가 벼려낸 언어로 화면 속 세계를 이해해야 하는 시각 장애인을 생각하면 한 문장, 한 단어를 고르는 것도 쉽지 않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객관성과 주관성에 관한 고민이었는데, 가령 "기쁜 얼굴"처럼 작가의 주관이 들어간 표현이 과연 음성해설에 온당한 것인가 하는 물음이었다. 그는 현장에서, 또 학문의 영역에서 음성해설을 고민하며 객관과 주관이 무 자르듯 나눌 수 없다는 점을 깨닫고, 음성해설 작가를 "중재자"로 인식하기에 이른다. "화면과 청자 사이에서, 장면의 서사와 정서, 상징이라는 다층적인 의미 중 무엇을 언어로 끄집어내고 무엇을 생략할지 끊임없이 조율하는 사람"(171p)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 중재의 범위는 점점 넓어지고 있다. 이제 음성해설 작가는 작품이 완성된 뒤 후반 작업으로 해설을 덧붙이는 위치에 머물지 않는다. 공연, 전시 등 작품의 기획 단계부터 함께 접근성을 고민하는 접근성 기획자로, 현장의 창작진들과 함께하는 것이다. 이때 저자가 말하는 현장의 '접근성'은 A부터 Z까지 모든 불편함을 제거하는 완벽한 성취가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노력이다. 팸플릿의 글자를 키워 '큰 글씨 팸플릿'을 제작하는 일, 음성해설이나 한글 자막해설 또는 수어통역을 제공하는 일, 좌석 안내원에게 장애인 관객 응대법을 교육하는 일 등은 저자를 비롯해 수많은 문화예술단체의 실무자들이 하나씩 시도하고 있는 접근성 사례들이다.
접근(access)은 기본적으로 움직임을 의미한다. 'access'의 어원인 라틴어 'accedere'에서 접두사 'ad-'는 '~를 향하여'를, 'cedere'는 '가다', '이동하다'를 의미한다. 보통 접근성이라고 하면 다수의 사람이 교통, 디자인, 서비스 등을 불편함 없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을 일컫는다. 그런데 이는 동시에 창작자들의 움직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공연장을, 전시관을, OTT를, 영화관을 찾아 움직이는 사용자들, 그리고 최대한 많은 사용자들에게 가 닿으려고 움직이는 창작자들의 이 양방향 움직임이 '접근성'이 아닌가 생각한다.
서수연 작가는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같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며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날도 올 것이다."(287p)라고 썼다. 그의 바람처럼 우리는 조금씩 서로를 향하여(ad) 움직이고(cedere)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조건으로 서로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 같은 것을 보며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곳, 너와 나의 차이를 불편하게 여기지 않는 곳. 그곳에서 '우리'를 만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