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림뉴웨이브 2026 <엇>의 공연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수림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이 공연제는 자기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한 전통음악가들을 소개한다. 9월 소리꾼 추다혜의 공연 감상에 이어 수림뉴웨이브 2026 <엇>의 또다른 공연을 찾은 이유는 악기 자체의 희소함 때문이었다. 가을 바람이 쌀쌀한 10월 말 저녁에 보고 온 공연은 김효영 생황 연주자의 <비껴선 시선>이었다.
공연을 보기 전까지 생황에 대해 갖고 있는 지식은 오로지 시각적 이미지였다. 김홍도가 자신의 문인적 면모를 강조해 그린 <포의풍류>에 독특한 악기가 등장한다. 두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공명통에 여러 개의 대나무 관대가 길게 ‘생물처럼 돋아 있는’ 모양을 한 생황. 실제로 들으면 소리는 어떨까? 어떤 분위기의 음악에 쓰이는 악기일까? 호기심에 대한 답은 광범위했다. 무슨 뜻이냐면, 생황이 내는 소리도 생황이 연주할 수 있는 장르도 매우 다양하더라는 것이다.
첫 번째 연주곡은 배동진 작곡가의 <스밈>이었다. 뉴욕의 다양한 문화가 주는 활기와 긴장감을 주제로 하는 이 곡은 주로 생황의 매우 높은 음역대를 사용했다. 생황의 첫인상은 귀가 아파오는 초고음과 예상보다 큰 성량이었다. 아무래도 대형 공간에서 큰 행사를 치를 때 쓰는 악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클래식 음악으로 치면 생황은 오케스트라 급 구성일 때에야 나오는 악기가 아닐까? 생황은 여러 가지 소리를 냈지만 주된 인상은 ‘오르간 소리 같다’는 것이었다. 오르간 일부를 떼서 피리로 만들어 분다면 이런 느낌일 듯 했다.
생황은 국악기 중 유일한 화음 악기이다. 중국에서 유래한 이 악기는 삼국시대에 유입되었고,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궁중의례 악기 중 하나로 쓰였다. 공명통의 취구를 통해 연주자가 들숨, 날숨을 모두 이용해 소리를 낼 수 있다. 연주자는 두 손으로 공명통을 잡고 생황을 들어올려 연주한다. 혹자는 이 모습을 두고 하늘을 향해 기도를 올리는 모습 같다고도 말한다. 대나무 관대의 수는 악기를 개량함에 따라 다양하게 달라질 수 있다. 관대가 17개 있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구성이다. 관대 수에 따라 운지법을 따로 익혀야 하는 까다로움이 있다. 대나무 관대 안에는 쇠붙이 떨림판(리드)이 있어 금속 음색이 난다. 그러나 이 금속음은 다시 대나무관을 통과하기 때문에 차갑고 쨍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보다 미묘하고 부드러운 음을 낸다.*
다만 오르간과 비슷하게 부드럽고 중후한 소리는 작곡가의 의도에 따라 전혀 다른 소리로도 변했다. 배동진 작곡가의 <스밈>에서 재즈 음악과 닮은 소리를 내다가 이내 불안하고 찢어지는 듯한 고음을 내는가 하면, 김효영 본인이 작곡한 <피닉스>와 <김효영류 생황 산조>에서는 사이키델릭한 소리와 반도네온, 부드러운 피리 소리를 냈다.
피닉스(불사조)와 등치될 수는 없지만 동양 신화 속 비견되는 새를 찾자면 봉황을 들 수 있겠다. 생황은 봉황의 날개를 본따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고보면 새의 날개 한쪽처럼 쭉 뻗어 있는 모양새다. 새들의 왕 봉황은 성군이 태평성대를 이룩할 때 등장하는 영물이다. 봉황의 날갯짓이 세상을 덮었을 것처럼 생황의 음악적 영역은 넓고 크다. 생황은 김효영 연주자의 실험처럼 재즈, 탱고, 클래식, 동서양 악기의 협주와 장르 크로스오버가 가능한 악기다. 또한 봉황의 날개가 오색찬란한 것처럼 생황은 다채로운 정서의 소리를 낸다.
김효영 연주자는 초기 공연 활동에서 생황을 보다 친근하게 알리려는 의도로 피아졸라의 ‘리베르탱고’ 등 대중에게 익숙한 음악을 생황으로 연주했다고 한다. 생황이 생소한 데에는 역사적 이유가 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생황은 국내 제작 기반이 약화되었다. 20세기에는 연주 전통마저 단절될 위기에 처했다. 현재까지도 국내에는 생황을 전문적으로 제작할 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실정이다.** 서양 음악을 연주하여 생황의 연주 범위를 넓히는 실험을 한 김효영 연주자의 이후 활동은 생황을 통한 동서양 음악세계의 적극적인 재해석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 시기에 말러의 음악을 재해석하며 그는 삶과 죽음의 문제에 천착하게 되었다. 이후 생과 사의 사유를 한국의 굿 음악과 연결지은 그는 동해안별신굿으로 해석의 터를 옮겼다.
<비껴선 시선> 종반부는 ‘동해안 심청굿 주제에 의한 물’이었다. 동해안별신굿에 연행되는 심청굿을 김효영 연주자가 생황을 중심으로 재구성했다. 김효영 연주자의 양 옆에는 황민왕과 방지원이 등장해 무가를 부르고 장구, 징, 바라, 꽹과리 등 다른 악기를 연주했다. 공연 설명에 따르면 ‘심청’은 판소리에서 부모를 위한 희생과 효의 이야기로 전해지지만, 동해안 별신굿에서 연행되는 ‘심청굿’ 은 눈을 밝히고, 어둠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게 해 달라는 제의이다. 또한 개인의 소망을 넘어 공동체의 평안과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를 지닌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인당수 가는 길’ 대목이었다. 심청이 인당수에 빠지는 순간에 이르기까지 뱃노래와 상여소리가 교차하는 청각적인 연출이 충격적이었다. 심청이 죽으러 간 건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인데 그것을 직접 상여소리로 듣고 있자니 현실감이 남달랐다. 심청이 물에 빠진 뒤로는 어둠 속에서 빠져나오고 싶어하는 심청의 내면이 느껴졌다. 어둠은 깊고 어두운 수중 공간일 뿐만 아니라 심청 본인의 절망이기도 했다. 터널 끝 빛을 찾아 벽을 더듬는 사람처럼, 이상한 세계에 들어와 그곳을 탐구하는 앨리스처럼 심청은 자기 처지보다 자기 내면을 들여다본다. 어두운 수중세계와 심청의 신체 사이 경계는 칠흑 같은 지하와 그것을 곧 뚫고 나올 씨앗의 경계와 같아진다. ‘연꽃’ 대목에서는 김효영의 생황 독주로 연꽃이 피어오르는 장면을 묘사한다. 이 대목에서는 정말로 상승과 정화의 기운이 느껴진다. 마치 영화음악을 들을 때처럼 인물의 가까운 시야와 마음속이 그려졌다. 그리고 생황 연주자의 양옆에서 무가를 부르는 두 전통음악가의 실력이 이미 어떤 경지에 이른 것이라 그날 그 객석에 있었던 사실이 행운처럼 느껴진다.
공연 제목이 왜 <비껴선 시선>인지 공연 감상 중에도 계속 궁금해 했었다. 공연 감상을 곱씹은 지금은 왜 생황에 비껴선 시선이 필요한지를 알 것 같다. 전시회에서 대형 그림 앞에 서면 한 눈에 그림 면면을 다 담을 수 없어 걸음을 옆으로 옮겨 비껴선 시선으로 그림을 마저 봐야 할 때가 있다. 가끔은 그림을 담은 액자 유리에 빛 반사가 생겨 시선을 비껴야 할 때도 있다. 자개처럼 재료의 성질 자체가 반짝이는 것은 그 아름다움을 모다 눈에 담기 위해 고개를 살짝 틀어야한다. 홀로그램처럼 시야각에 따라 빛이 다르게 반사되기 때문이다. 봉황의 날개는 크고 깃털 빛깔이 오색찬란하다. 그것을 담은 생황 또한 연주의 범위가 동서양과 전통-현대를 아우를 만큼 넓다. 자체로 화음을 만들어내고 여러 악기 소리가 떠오르게 하는 팔색조 같은 매력은 눈을 굴릴 때마다 다르게 반짝이는 자개 표면의 빛 같다. 이렇듯 너르고 큰 생황의 날개에는 비껴선 시선이 필요하다. 앞으로 이 시선에서 파생될 음악들은 또 얼마나 다양하게 반짝거릴까. 이래서 몰랐던 음악 개념과 소리 속에서 다소 어려움을 느껴도 현대를 살아내는 전통 악기, 전통 음악에 흥미를 끊을 수가 없다. 김효영 연주자를 비롯하여 전통을 잇고 전통에 새 옷을 입히는 시도를 하는 음악인들을 다시 한 번 응원하게 되는 공연이었다.
* 국립국악원 아카이브
** <생황 연주자 김효영>, 네이버 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