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일주일간 제주로 떠났다. 계획 없이 떠난 첫 여행이었다. 나는 극 J다. 여행은 적지 않은 돈과 시간을 들이는 일이기에 그만큼 많은 것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늘 여행을 준비할 때면 많은 것을 보고, 먹고, 경험하기 위해 철저하게 계획을 세웠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플랜 B, C까지 마련했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이미 지쳐버렸다. 설렘으로 시작해야 할 여행이 어느새 부담으로 다가왔다.
이번 제주 여행은 달랐다. 계획 없이 떠났고, 걱정도 많았지만, 돌이켜보면 그간의 여행 중 가장 알차고 오래 기억에 남을 일주일을 보냈다. 매일 어디를 갈지, 무엇을 먹을지 당일에 정했다. 집 앞 카페에 잠깐 나가는 일에도 계획이 필요했던 나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여행의 마지막 무렵,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이때 제주에서 만난 도민 언니의 추천으로 한 카페를 찾았다. 언니는 그곳의 바나나 푸딩이 맛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바나나도, 푸딩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평소 같았으면 절대 시키지 않았을 테지만 그날따라 이상하게 바나나 푸딩이 먹어보고 싶었다.
싫어한다고 믿었던 것
사실 처음부터 그 카페를 목적지로 정했던 것도 아니었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우연히 들른 문구점 근처에 그 카페가 있었다. 그렇게 나는 별다른 계획 없이 도착한 카페에서 처음으로 바나나 푸딩을 주문했다. 시키지 말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들 때쯤 푸딩 한 입을 먹고 나니 생각이 바뀌었다.
그날 먹은 바나나 푸딩의 맛은 지금도 생생하다. 차갑고 달콤한 맛에 은은하게 바나나 맛이 느껴졌고, 아래에 깔린 쿠키가 식감의 재미를 더했다. 지금까지 먹었던 디저트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기억에 남는 맛이었다.
바나나 푸딩이 유독 기억에 남는 이유는 맛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음식이 사실은 내 취향일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당연히 싫어하는 맛일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그것을 직접 맛볼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결국 내가 안다고 믿었던 취향은 몇 번의 경험과 막연한 짐작을 쌓아 만든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다른 일에서도 비슷했다. 잘할 수 없을 것 같으면 미리 겁을 먹었고, 실패할 가능성이 보이면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나에 대해 나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할 기회는 스스로 차단하고 있었던 셈이다.
카페를 나서며 사장님께 바나나 푸딩이 정말 맛있었다고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사장님은 머쓱하게 웃으시며 좋은 여행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해 주셨다. 예상치 못한 메뉴 하나를 골랐을 뿐인데 새로운 취향을 발견했고, 낯선 사람과 짧은 인사까지 나눴다. 직접 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분명히 있었다.
싫으면 다시 하지 않으면 그만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음에는 다른 선택을 하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니 무언가를 시도하는 일이 전보다 가볍게 느껴졌다. 이번 여행에서 배운 것은 계획 없이 흘러가는 대로 살아도 괜찮다는 사실만이 아니었다.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순간을 즐기게 될지 알 수 없다는 것. 내가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도, 아직 경험하지 않은 나의 모습까지 미리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달라진 나를 반기는 일
취향은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 어릴 때는 맛없게만 느껴지던 채소나 나물이 어느 날 문득 맛있어질 때가 있다. 누군가 "너 원래 이런 거 싫어하지 않았어?"라고 물으면 "오랜만에 먹어 보니까 맛있더라고."라고 답한다. 분명 예전에는 싫어했지만 지금은 좋아한다. 그렇다고 예전의 내가 틀렸던 것도, 지금의 내가 변덕스러운 것도 아니다. 그저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달라진 것이다.
나를 잘 안다는 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할 수 있는 상태라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잘하는 것과 어려워하는 것을 알고 있다면 그것이 나를 충분히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의 나를 설명할 수 있다고 해서 앞으로의 나까지 정해둘 필요는 없는 것이었다. 오늘의 좋았던 것이 내일은 별로일 수도 있고, 지금은 상상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 수도 있으니까.
어쩌면 나를 알아간다는 건 나에 대한 답을 모두 찾아내는 일이 아니라 달라지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그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의 나와 조금 다른 선택을 하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직 알지 못하는 나의 모습이 남아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