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공생과 공동의 미래를 창조하죠 . 다양한 감각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 구정아, 2024 보그 코리아 인터뷰에서
일상에서 우리는 사물의 형태를 눈으로 확인하고 그 쓰임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주변 환경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어떤 감각은 눈으로 명확하게 확인하기 어렵고, 사물의 의미 역시 처음 마주한 순간에 모두 파악되지 않는다.
구정아의 작업은 연필심과 자석, 목재와 향기처럼 서로 다른 물질과 감각을 전시 공간에 배치함으로써 작품을 경험하는 방식에 질문을 던진다. 관람자는 작품을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전시장을 이동하며 사물의 물성을 살피고, 공간에 퍼진 향기를 감지하거나 자신의 기억을 떠올린다.
작품의 의미는 시각적으로 주어진 형태만이 아니라 관람자의 움직임과 감각, 기억이 개입하면서 형성된다.
구정아의 전시에서 시각은 다른 감각으로 대체되지 않고, 후각과 신체의 움직임과 서로를 거들며 작품의 경험을 만든다.
구정아의 작업 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단서는 작가가 1990년대 중반부터 발전시켜 온 ‘우스(OUSSS)’이다.
하나의 뜻에 고정되지 않고 여러 모습으로 변주되는 이 말에 우주를 뜻하는 ‘코스모스(COSMOS)’를 더한 것이 2026년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구정아: 우스모스》이며, 사물과 힘, 기억과 시간이 서로 맞닿으며 이루는 작가의 작업 세계를 가리킨다.
구정아의 전시에서 작품과 공간은 분리되지 않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시각뿐 아니라 후각과 촉각, 신체의 움직임이 함께 작용한다.
작가는 파리에서 공부하며 작업을 시작한 이래, ‘그저 평범한 것은 없다(Nothing is merely ordinary)’는 태도 아래 일상 속 사소한 것들을 통해 보이지 않는 힘과 감각의 차원을 드러내는 작업을 지속해 왔다. 연필심, 아스피린 가루, 나프탈렌, 각설탕처럼 시간이 지나며 마모되고 증발하는 연약한 물질에서 출발해, 향·빛·자력·인광·소리·온도처럼 형태 없는 것들로 관심을 넓히며 드로잉과 조각, 설치, 영상, 건축을 넘나들었다. 나프탈렌을 사용한〈스웨터의 옷장(Pullover’s Wardrobe)〉(1996)을 시작으로 작가는 향을 작업에 적용해 왔고, 인광 안료를 칠한 스케이트파크 연작도 대표적이다.

숨은그림찾기가 된 전시장
2026년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구정아: 우스모스》는 작가의 30여 년 작업 세계를 현재의 시점에서 다시 펼쳐 보이는 국내 최대 규모 개인전으로, 1990년대 초기작부터 전시를 위해 제작한 신작까지 주요 작품 35점을 선보였다.
일반적으로 캡션은 작품 바로 옆이나 아래에 놓여 관람자가 작품을 확인하면서 관련 정보를 읽을 수 있도록 돕는다. 《우스모스》는 이 관례를 따르지 않는다.
《우스모스》에서 캡션은 작품 곁을 떠나 벽 끝이나 맨유리에 따로 붙어 있었다. 캡션을 발견하고 그것이 가리키는 작품을 찾아 시선을 옮기면, 작품은 벽이 아니라 천장에 매달려 있기도 했다.
이 구조는 숨은그림찾기에 가까웠다.
캡션을 찾는 일과 작품을 찾는 일이 하나의 동작으로 이어지면서, 정보를 건네받는 관람이 단서를 좇아 작품을 발견하는 관람으로 바뀌었다. 이는 이 전시에 정해진 중심이나 하나의 관람 경로가 없다는 소개와도 맞닿아 있다.
그런 점에서 이 배치는 관람을 능동적인 탐색의 경험으로 만드는 효과적인 장치였다고 본다. 이러한 배치는 관람자의 신체를 전시 경험의 일부로 만든다. 작품을 가까이에서 살펴보는 것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것은 서로 다른 관람 경험을 만들어 내며, 전시장 안에서 관람자가 어디에 서 있고 어느 방향으로 이동하는지에 따라 작품을 발견하고 이해하는 과정도 달라진다.
《우스모스》에서 작품은 로비와 전시실뿐 아니라 고미술 상설전시실과 외부 곳곳에 흩어져 배치되어, 관람자가 미술관 전체를 걸으며 작품을 발견하도록 이끈다. 이때 전시 공간은 작품을 배치하는 배경에 머무르지 않고 관람자의 움직임을 통해 경험되는 장소가 된다.

향기를 활용한 작업, 〈FMMA〉(2026)에서는 이러한 신체적 탐색이 후각으로 확장된다.
향기는 시각적 형태처럼 명확한 윤곽을 갖지 않아서 맡더라도 근원을 곧바로 짚기 어렵다. 나 역시 어디선가 향이 나는 것을 느끼고도 출처를 찾지 못해 전시장을 여러 차례 돌았고, 오디오 가이드에 표시된 위치를 확인하고서야 향이 나는 곳을 볼 수 있었다.
눈으로 쉽게 확인되지 않는 것을 찾아 나서게 하는 이 과정은 캡션을 좇던 동작과 같은 결에 놓인다. 후각만으로는 근원에 닿지 못해 다른 정보의 도움을 받았다는 점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감각하게 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잘 드러난 장면으로 읽혔다.
《우스모스》에서는 보는 조건이 바뀌면 작품이 달라지는 장면도 이어진다. 로비에 설치된 대형 곡면 구조물 〈그라비타〉(2025)는 스케이트보더의 속도와 동세에서 비롯된 각도와 곡률을 지닌 채, 멀리서 보면 모양이 독특한 긴 의자처럼도, 스케이트램프처럼도 보이는 형태로 놓여 있다.
표면에 입힌 인광 안료 덕분에, 밝은 곳에서는 평범한 구조물처럼 보이던 것이 불이 꺼진 어둠 속에서 푸른빛을 내며 전혀 다른 존재로 변모한다.
구정아, 2025, 강화 유리 섬유에 인광 페인트, 74.3x1070x1878 (cm), 리움미술관 제공.
이처럼 구정아의 전시에서 관람은 시각적 정보를 받아들이는 행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걷고, 멈추고, 고개를 돌리고, 향기를 맡는 과정이 작품을 경험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중요한 것은 관람자의 신체가 작품 바깥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전시장 안에서 작품을 경험하고 의미를 형성하는 과정에 참여한다는 점이다.
구정아의 작업은 사물의 물성과 관람자의 신체, 감각과 기억이 작품의 경험을 구성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연필심과 자석은 물질의 조건에 따라 형태가 달라질 수 있음을 드러내고, 《우스모스》의 캡션과 작품 배치는 관람자의 이동을 유도하며, 2024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서 선보인《오도라마 시티》는 개인의 기억을 텍스트와 향기로 다른 관람자에게 전달한다.
결국 구정아의 작업에서 다감각적 경험은 시각을 다른 감각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시각을 포함한 여러 감각이 함께 작용하면서 작품과 관람자의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이다. 작품은 단순히 눈앞에 놓인 대상에 머무르지 않고 관람자의 신체와 감각을 거쳐 의미를 형성한다.
한 인터뷰 기사는 불이 꺼져야 푸른빛을 내는 야광 작품들을 두고 ‘보는 조건이 바뀌면 보이는 것이 전혀 달라진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한다고 짚었다.
구정아의 작업은 예술을 이해한다는 것이 작품의 의미를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하는 일만은 아니며, 작품을 경험하는 과정 자체를 살펴보는 일이기도 하다는 점을 일깨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