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미술관의 땅을 밟는다는 것 [미술/전시]

가까이서 보고 싶을 때.
글 입력 2023.06.23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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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만약 무언가를 좋아한다면, 그 좋아하는 이유를 일목요연하게 타인에게 설명할 수 있는가.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단계에 도달하려면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하는 절차가 있는데, 바로 경험이다. 사람은 경험에 따라 지식을 습득하고 견문을 넓히며, 알고 있는 것들 사이에서 선호하는 것을 발견한다. 그 선호가 선호의 수준을 넘어 애호로 가기 위해서는, 더 많은 경험과 감상이 필요하다.

 

때문에, 가까이 있는 것들을 좋아하고 즐기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쉬이 접할 수 있는 것을 자주 접하고, 접하는 것을 넘어서서 취미로 삼게 되려면 '나'와 '좋아하는 무언가' 사이의 거리가 멀어선 안 된다. 즉, 내가 시간과 돈과 여유를 감당 가능한 수준에서 투자할 수 있을 만한 것을 좋아하게 되는 것이 순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순리에 의해 좋아하게 된 것을, 왜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다소 당황스러울 수 있다. '그냥' '자주 봐서'인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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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스플래쉬

 

 

그런데 요즘은 꼭 물리적으로, 또는 심적으로 '가까이' 있기 때문에 무언갈 취미로 삼진 않는 것 같다. 아예 모르던 것들을 어딘가의 화면이나 디스플레이, 책 등을 통해 쉬이 접하고, 접한 것에 대한 소식을 원한다면 구독이나 서치를 통해 어렵지 않게 받아볼 수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방식의 취미가 문제가 되는 때가 있는데, 매체를 사이에 두고 만나는 것을 넘어 실제로 보고 싶어질 때다. 매체 건너에 두고 보던 아티스트, 공연, 작품이 실제로 보고 싶어질 때, 우리는 '보러 간다', 또는 '즐기러 간다'라는 간단한 행동 하나가 실은 꽤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그래도 다른 취미들에 비해 미술을 즐기는 것은 쉬운 편이다. 좋은 자리를 위해 피 터지는 티켓팅을 시도해야 할 필요도 없고, 어마어마한 값을 지불해야 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서울에는 좋은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도, 좋은 전시를 여는 미술관도 많다. 전시를 입장하기 위해서 지불할 티켓값도 거의 없는 수준이고, 경우에 따라 내게 되더라도 대부분 만 원대를 넘어가지 않는다. 또, 이 분야에서는 장르 특성상 해외 교류가 활발해, 해외의 원화가 국내에 들어오는 경우도 많다. 때문에, 해외의 작품이더라도 멀리까지 가지 않고 국내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다. 양도 많고 질도 좋은 공급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다만, 딱 '서울'에만 몰려 있다시피 한 것이 흠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사는 곳이 그래도 경기도 안에는 속해 있어서 전철도 연결되어 있고 버스 편도 잘 되어 있어서 하루만 투자하면 가서 좋은 전시를 2개 이상 보고 집에 돌아올 수 있다지만, 지방에 산다면 이야기가 또 달라진다. 극단적으로 예를 들자면, 부산이나 제주, 목포 등 서울로부터 최소 3시간 이상의 거리에 있는 도시들의 경우에는 하루가 아닌 며칠을 투자해야만 문화를 즐길 수 있다. 또한, 타지에서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 적지 않은 돈을 투자해야 한다.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거나, 여유가 없다면 풍부히 공급되는 문화를 수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향유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메타버스와 같은 가상 현실을 통한 전시, 또는 작품 개인 소장 등의 문화적 움직임, 국립 현대 미술관 분관 유치를 위한 지방 자치 단체들의 노력까지. 크게 보면 모두 이동 거리의 감축이라는 효과를 낳는다. 그러나 여유가 확보된다고 해서 모두가 원하는 만큼의 문화적 수요를 충당하는 것은 아니다. 온라인상의 소비는 오프라인에서의 향유와 비교했을 때 그 성질과 가치의 부분에서 큰 격차를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작품의 개인 소장은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만족감을 높일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를 위해 투입되는 비용적인 부분이 만만치 않다. 당장 서울에 쏟아지는 작품의 공급로를 지방으로 분산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는 한, 지방은 수도권을 거쳐 들어오는, 한 철 지난 미술을 향유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단지 미술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닐 테다. 세상의 많은 곳들은 문화 기반의 차이로 인해 차별적으로 문화 예술을 향유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미술은 엘리트 미술과 대중 미술로 그 갈래가 극단화되어 있기 때문에 문화 인프라의 차이가 더욱 큰 파장을 갖게 된다. 서울에 살던 사람은 미술에 대한 흥미가 있다면 어렵지 않게 엘리트 미술과 대중 미술을 모두 접하고 그 안에서 취향을 형성할 수 있지만, 수도권 외 지역에 사는 사람은 사는 곳을 떠나 찾아가는 것은 물론, 한정된 시간 내에 작품을 보아야 하는 만큼, 찾아갈 전시장을 사전에 선별하고 경로를 설정해야 하는 수고를 자처해야만 한다.

 

원하는 전시를 보기 위해 수많은 초행길을 지났다고 하더라도, 그 내용이 항상 기대했던 만큼의 감명을 주는 것도 아니다. 뚜껑을 열었을 때 일반적인 대중의 눈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순수 미술이 튀어나왔다고 생각해 보면, 그 실망감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 같다. 도박이랄까.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수고와 기대를 투자하고서도 그 결과물이 어떨지 상상할 수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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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스플래쉬, 국립경주박물관

 

 

한국의 미술은 앞으로 어떤 방향을 보고 나아가야 하는가. 사견으로는, 서울과 수도권, 그리고 수도권과 지방 간의 격차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이 더 많이 필요한 것 같다.

 

서울의 유명 미술관들이 지방에 내려오더라도 그 영향력이 줄어들지 않을 만큼 브랜드 가치와 정체성을 확립하든지, 지방이라는 단점을 극복하고도 멀리서 찾아올 수 있을 만큼 확실한 콘텐츠를 확보한 미술관이 생기든지. 또는, 해당 지역의 색에 맞는 정체성의 미술을 개발하든지. 다양한 방법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굳이 미술관이 즐비한 땅을 밟지 않더라도, 가까운 곳에서 '선호하는 미술'을 만들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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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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