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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행복을 찾는 감각은 귀하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 역시 귀하다. 커리어의 최정점에 놓인 뉴욕 탐사의 편집장 오웬 그린은 후자에 치중을 한 나머지 전자의 일에는 소홀하고 만다. 그가 애정하는 기자 줄리아 로빈슨 역시 그의 젊은 날의 닮아서인지 저널리즘계의 최고가 되기 위해 밤낮없이 일한다. 그리고 알렉스 쿡. 뉴욕 탐사 사장의 아들로 비록 낙하산이지만,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자신이 존경하는 상사 오웬 그린과 동료 줄리아 로빈슨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라도.


세 명의 인물들은 왜인지 이상한 직감에 휩싸인다. 행복보다는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이 먼저였던 그들도 어딘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그래서 종국에 우선순위에서 제쳐두었던 행복조차 망칠지도 모른다는 직감에 그들의 커리어를 건 대담한 탐사가 시작된다.


3월 30일부터 4월 25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열리는 연극 <빅 마더>는 서울시극단의 최연소로 취임한 연출 이준우의 첫 작품이다. 기술의 진보로 미래에는 모두가 행복한 유토피아가 열릴지, 혹은 모두가 절망하는 디스토피아가 열릴지에 대한 이야기는 늘 빠지지 않는 소재이다. 그러나 과거의 어떤 때보다 지금처럼 그 미래가 시시각각 피부로 와닿는 때는 없었다. 연극 <빅 마더>는 정교한 가짜 데이터와 알고리즘으로 인해 분별력이 사라진 개인들이 더 이상 사고하기를 멈췄을 때의 디스토피아를 그린다. 익숙함을 행복으로 착각한 이들이 옳고 그름의 감각을 잠시 제쳐둔 그런 미래의 일면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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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연극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시각적"인 무대

 

<빅 마더>는 내용에 걸맞게 각종 기술, 이전까지는 (아마도) 시도되지 않았을 시도들이 등장했다. 연극을 보고 나서 든 첫 감상은 매우 "시각적"이라는 느낌이었다. 물론 '미디어'에 관한 내용이기에 각종 영상들이 활용되어서 그런 인상을 받았던 것도 있겠지만. 더 자세히 말하면 무대 배경에 커다란 스크린이 달려 있고 이를 통해 실시간 영상이 송출되었다. 실제 저널리즘의 현장감을 생생하게 연출했을 뿐 아니라 녹화된 영상이 아닌 무대 어디선가 뉴스 속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를 실제로 생중계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면과 더불어 100분의 공연 시간 안에 무려 60개의 장면이 나열되었다. 이는 마치 장편 영화의 호흡과 일치했고 빠른 장면 전환과 많은 양의 대사는 흡사 미국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또한 무대는 객석 쪽이 열린 디귿자의 유리 박스가 설치되어 있었고 배우들은 이 박스를 넘나들 때마다 문을 열고 닫고 혹은 뛰어다니며 연기했다. 깊이가 매우 깊은 무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켜켜이 쌓인 사각형의 면들이 평면적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이 느낌이 '시각적'이라는 감상과 연결되는 걸까? 평소 연극 무대에서 느꼈던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어쩌면 고전적인 연극이 익숙했던 이에게는 매우 생소한 감각이었다. 무대의 매력은 과연 뭘까? 본질은 뭘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했다. 서울시극단의 단장으로 취임한 이준우의 책임감이 막중했을 수도 있다. 공공성과 대중성과 함께 사로잡기 위한 선택으로 <빅 마더>는 매우 적합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매체에 비해 관객과의 친밀함을 일으키는 무대의 특성, 즉 무언의 약속에 의해 최소한의 양식만 남기는 무대를 상기시켰을 때 <빅 마더>는 관객에게 칼자루를 돌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매우 직관적이고 시각적인 연극이 탄생했다. 이번 작품의 바탕이 된 프랑스 극작가 멜로디 무레의 작품은 보다 작은 극장에서 공연되었다고 한다. 세종문화회관처럼 보다 커진 극장에서 그가 새로운 시도를 보여줄 수 있고 각 캐릭터의 애환까지 담아내기 위해서는 100분 안의 휘몰아치는 사건 전개와 무대장치들이 필요했다.

 

 


캐릭터 간의 탁월한 앙상블 그리고 다르지 않은 두 감각.

행복을 찾는 감각, 시시비비를 가리는 감각.


 

다시 내용적인 면으로 돌아오자. 굉장히 많은 인물이 나온다. 조연 배우들은 여러 역할을 겸하기도 한다. 앞서 언급했던 오웬 그린 역에는 드라마, 영화에서도 많이 활동한 조한철 배우가 (더블캐스팅은 유성주) 줄리아 로빈슨 역에는 배우 신윤지, 알렉스 쿡 역에는 이강욱 배우가 (더블캐스팅은 김세환) 맡았다.


오웬 그린에게는 헤어진 아내와 딸이 있다. 이익을 내야 하는 사기업의 편집국장인 그의 현실적인 고충과 일 때문에 소홀해진 딸과의 관계에서 갈등하는 인물이다. 줄리아 로빈슨은 이상을 위해, 인정받는 기자가 되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지만 실은 사랑했던 과거의 남자와의 죽음이 버거웠던 연약한 인물이다. 알렉스 쿡은 자신의 상황과 위치 때문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지만 끝에는 옳음을 위해 할 말 할 줄 아는 의외로 강단 있는 인물이다.


사실 각 캐릭터의 매력이 너무 뚜렷하지만 줄거리가 너무 휘몰아치는 바람에 음미할 시간이 없었다는 점이 매우 아쉽다. 대신 이들의 앙상블은 매우 탁월하다. 더불어 중간중간에 여러 역할을 분했던 조연 배우들은 저널리즘 소재 특유의 팍팍한 긴장감 사이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특히 현장에서 분위기가 좋았던 김신기 배우는 특유의 육중하고 엄정한 톤은 잭슨역으로 완벽히 중심을 잡았고, 가끔씩 그 톤의 일관성이 관객들을 웃게 했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와! 했던 순간이 있다. 기존의 디귿자의 유리 박스만이 놓여있던 무대의 뒤편이 열리면서, 마치 사건의 거대한 내막이 드러나듯 더 깊은 공간감이 연출되었던 장면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더 좋은 세상을 위해 더 민주적인 세상을 위한 슬로건을 내걸었던 회사의 어두운 이면이 드러나면서 극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공연 끝까지 관객들이 원했던 결말을 내주지 않으면서 <빅 마더>는 그렇게 장엄하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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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찾는 감각과 옳고 그름을 가리는 감각. 이 둘은 과연 다른 것일까? 사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위해,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이 아닐까? 기술의 진보 이면에는 더 나은 인류의 행복과 안녕이 바탕이 있다. 시스템을 뒤바꾸고자 많은 일을 벌였던 이들도 나름의 행복을 찾게 되면 어느새 그 동력은 약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AI? 인공지능? 있는데 왜 안 써? 안 쓰는 사람이 뒤처지고 바보여 보이는 이 시대에서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하려면 우리는 깨달아야 하는 게 한 가지 있다. 둘은 다른 게 아니라는 사실을.


오웬 그린에게는 자신의 딸에게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일을 끝마쳐야 했음을, 알렉스 쿡에게는 사랑하는 아버지에게 저널리즘을 저버리지 말자고 통렬하게 외치며 바른 길로 인도해야 했음을, 그 둘은 다르지 않음을, 연극 <빅 마더>는 보여주고 있다. 우리에게 어떤 이상한 직감을 외면하지 말자고 <빅 마더>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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