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디자인적인 것에 거부감이 있었던 것 같다. 특히 한국인은 디자인에 유달리 예민하다. 무릇 많은 세계인들이 한국인은 옷도 잘 입고, 잘 꾸민다고 말하는 말이 그냥 나온 소리는 아닐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반골기질이 있던 나에게는 길을 가더라도 너무 완벽한 브랜딩이 되어있는 (디자인이 예쁜) 가게보다, 어딘가가 허술한 부분이 인간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가게를 더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러나 우리나라 속담 중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라는 말이 있듯이, 실제로 보기도 좋은 떡이 먹기도 좋을 때가 있다. 단순히 겉모습만 그럴싸한 게 아니라 밖과 안이 일치하는, 디자인뿐 아니라 콘텐츠 내용물까지 조화를 이루는 쾌감이 느껴지는 작품이 있다. 오늘 소개할 영화 속 주인공 “제프 맥페트리지”의 디자인이 그렇다. <제프 맥페트리지: 드로잉라이프>는 그를 흠모했던 감독, 댄 코버트가 만든 첫 다큐멘터리이고, 지난 8월 13일에 개봉을 했다.
무릇 상업 예술은 자본주의에 영혼이라도 판 듯, 돈 많이 버는 예술가들에 대한 시기와 질투가 많은데 많은 아티스트들을 알아야 한다. 진짜 클래식은 형식과 가치 둘 다가 모두 된다는 사실을. 유명하다고 해서 다 허풍스러운 건 아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싫은 소리를 할지언정, 클래식은 어떤 방식으로든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싫은데도 끌리는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아티스트들은 예술을 하기에 어두운 진실을 밝혀내야 할 때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고민할 건, 어떻게 하면 소통할 수 있을까여야 한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나의 예술에 초대하지?
제프는 그 방법으로 Common thing을 채택한다. 일상적이고 흔한 것. 그의 영감은 일상으로부터 온다. 단순히 look around 해서 얻어지는 재료들이라기보다는 일상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끌어올린 정수를 담아낸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쉬워 보일 수 있지만, 굉장히 섬세한 방식으로 혹은 익숙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자신의 작품에 초대한다. 그에게는 그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가 아는 현대의 사람들은 문해력을 지니고 있고, 상징언어가 숱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이를 관찰하다 보니 자연히 그의 그림에 반영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애플, 나이키, 에르메스 등 글로벌 브랜드의 숱한 러브콜을 받는다. 보기에 아름다울 뿐 아니라, 심플하고 직관적이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그림에 여지도 남겨놓는다. 처음에 눈길이 사로잡혀 그림을 바라보다 보면 더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말 그대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완벽한 밸런스를 지닌 디자인은 보기에 아름다워 잠깐의 감탄을 자아낼지라도, 사람들 머릿속에 각인되는 건 다른 문제이다. 그 또한 제프의 디자인은 해낸다.
그래서 그가 작업한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그는 그래픽 아티스트이자 화이트큐브에서 전시도 하는 예술가이다. 그가 통제와 규율로 자신의 호흡과 리듬을 유지하는 것을 보면, 확실한 사명감을 지닌 아티스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그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소통하기 위해서 많은 인내를 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 부분이 궁금하긴 했는데, 영화에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아 아쉽기는 했다. 어쨌든 그가 작업을 하면서 색을 칠할 때가 가장 고통스럽다는 말이 기억이 난다. 작업이 늘 즐겁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일이면서 가장 중요한 파트이기에 색칠하는 것이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의 작품에 담긴 색만 봐도 알 수 있다. 허투루 쓰지 않았다는 게 여실히 느껴지기에.
또한 영화에는 가족 이야기도 많이 나오는데, 특히 아내와의 관계성이 흥미로웠다. 아내는 자신과 매우 다르고, 자신의 작업에 늘 도움을 많이 주었다고 한다. 자신의 예술작업을 전개해 나가는 데에 있어서 같이 봐줄 수 있는 평생의 동료가 있다니, 그만큼 좋은 게 없다는 생각을 했다. 다소 이성적인 그가, 감성적인 아내에게서 배운 것도 분명 있을 테니 말이다.
영화 자체는 한가롭고 아름답다. 제프를 담고 있으면서도, 제프를 바라보는 댄 코버트의 경외와 조심스러움이 한껏 느껴진다. 어느 인터뷰에서 영화에 대해서 감독이 스스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제프의 유머를 담지 못했다는 점을 언급했다. 분명 제프의 그림에는 유머가 담겨있다. 그래서 제프 또한 유머러스했을 것 같다. 그런 유머도 파헤치는 다음 편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도 생긴다. 제프 맥페트리지에 대해 더욱 궁금함이 남는 영화였다.
제프 맥페트리지의 가족, 아내와 두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