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때 묻은 물건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손과 손을 거치고 흔적을 남기며 그것은 거대한 역사가 되기도 한다.
그 이야기를 끝까지 파고드는 건 흔히 예술가, 혹은 역사가의 일이라고 여겨진다. 사물(혹은 사람)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탐구하고, 그것이 거쳐온 발자취를 분석하는 것. 이러한 행위는 그것의, 혹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이 아닐까. 시공간을 넘어 어떤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여기, 오래된 장총의 이야기를 듣는 한 작가가 있다.
연극 '빵야'는 번번이 편성에 실패하는 드라마 작가 '나나'가 영화 소품 창고에서 한 99식 소총을 발견하며 시작된다. 이후 극은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나나의 이야기와, 여러 주인을 거치며 장총이 겪어온 전쟁의 역사를 극중극 형식으로 교차해 보여준다. 빠르게 전개되는 역사적 흐름과 현재를 살아가는 나나의 현실이 반복되며 극의 템포를 조절하고, 17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동안 관객의 몰입을 효과적으로 이끈다.
이 극에서 특히 인상적인 것은, 장총이 '빵야'라는 이름의 의인화된 인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일련번호와 각종 마크로 '총'임을 드러내는 그의 외형, 긴 세월을 견뎌낸 듯한 표정과 목소리는 그가 단순한 소품이 아닌, 하나의 삶을 가진 존재임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관객은 그가 풀어내는 그 참담한 전쟁의 역사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한 빵야는 나나에게 묻는다.
'너한테 내 이야기를 들려주면
나를 편안하게 해줄 수 있어?
내 소원을 들어줄 수 있어?'
평생 타의로 사람을 죽이고, 그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끔찍한 세월을 보냈던 빵야에게도 한가지 꿈이 있다. 나나 역시 빵야를 자신의 트리거로 삼아 멈춰 있던 삶을 다시 움직이기로 결심한다. 빵야도, 나나도, 각자의 모든 것을 걸고 저마다의 꿈을 향한 여정을 시작한다.
역사를 관통한 빵야의 삶
1945년 인천의 조병창 창고에서 만들어져 지금의 소품 창고로 옮겨져 나나에게 발견되기까지, 빵야는 총 17명의 주인을 거친다. 극에서는 그 중 9명의 주인을 다룬다. 기무라, 길남, 선녀, 무근, 신출, 원교, 아미, 동식, 마지막 설화까지. 일본군 장교, 국방경비대, 인민군, 국군 등의 손에 쥐어져 만주에서, 제주에서, 한국 전쟁에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방아쇠를 당기고 또 당겼다.
'쾅'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일생이 마감되며 슬퍼할 겨를도 없이 다음 주인의 손에 넘어가 또다시 살육전에 동원된다.
하나의 에피소드가 끝나고 빵야는 괴로워한다. 또 분노한다. 자신이 목격했던 안타까운 사연에 대한 슬픔이자, 대신 죽지 못한 자신에 대한 분노였다. 빵야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주인의 정보를 전달하는 대신 감정을 담아 이야기한다. 조선인임에도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같은 조선인을 해치던 기무라를 향해 분노하고, 그저 배불리 먹는 것이 소원이었던 무근이를 애틋하게 바라본다. 특히 마지막 주인 설화가 자신을 이용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할 때 살리고 싶어 버텼다는 그의 말이 빵야가 단순히 가해자로만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줬다. 비록 그의 본질은 총이지만, 극은 그를 폭력의 도구가 아닌 증언자로서, 그리고 끝내 인간적인 마음을 잃지 않은 존재로 그려낸다.
모든 것을 쏟아내고 편안해지고 싶은 마음에서일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려는 나나의 진심을 보아서였을까. 둘 중 무엇이 되었든 그는 길고 힘겨웠던 증언을 마친다. 이제 남은 건 무사히 이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드는 나나의 몫이다.
'고마웠어.
내 이야기 들어줘서 고마웠어.
많이 무서웠었어.
조금 나아졌어.
나를 봐줘서 고마웠어.
조금이나마 털어놓을 수 있어서 좋았어.'
나나의 꿈
드라마 작가인 나나의 꿈은 자신이 쓴 글이 편성되는 것이다. 빵야를 본 첫눈에 마음을 빼앗긴 그녀는 그것을 소재로 집필을 다짐하지만, 거대한 상업자본 앞에서 자주 길을 잃어버린다.
'어떻게 하면 은하수를 끌어와서 무기를 씻을 수 있을까?'
중국 시인 두보의 시를 인용한 이 말은 전쟁의 참혹함을 묻는다. 동시에 빵야에게 남아있는 괴로운 기억을 지워내주고 싶다는 나나의 염원처럼 들리기도 한다. 빵야는 나나에게 다시 일어날 힘과 용기를 주었고, 나나는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지키려는 노력을 통해 빵야의 아픔을 나눈다.
그녀의 고민은 작가로서 무엇을 써야 하는지, 그리고 그렇게 써낸 글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빵야를 통해 들은 비극적인 역사를 이야기로 써내는 행위에 대해서 그녀는 '기억하고 기록하고 증언하는 의미가 있다'라고 답하지만, 그것이 순전히 작가적 욕심 때문에, 대본의 성공을 위한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한다. 무언가를 쓸 자격에 대해 논하는 일은, 글을 쓰는 사람으로 하여금 두려움에 휩싸이게 만든다.
결국 마지막에 그녀는 작품의 판권을 팔지 않음으로써 빵야의 이야기가 전쟁을 팔아먹는 엉터리 이야기가 되는 것으로부터 지켜낸다. 꿈을 이루는 대신 작가적 윤리를 선택한 것이다.
'내가 이야기 하나를 힘들게 쓰면 힘든 사람 하나가 잠시 쉬게 될지도 몰라요.
내가 이야기 하나를 아프게 쓰면 아픈 사람 하나가 조금은 나아질지도 몰라요.'
비록 끝맺은 이야기는 아니었으나, 빵야의 이야기를 정성스럽게 글로 옮기고자 한 나나의 마음은 비로소 빵야가 조금이나마 자신의 이야기를 내려놓을 수 있게 했다. 그녀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빵야의 꿈을 이루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빵야의 꿈
극을 보러 가기 전 짤막하게 기대평을 남겼다. '과연 장총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전쟁의 역사를 다루는 극에서 총이 가진 꿈이라니,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동시에 이 극에서 총을 단순히 가해의 도구로만 그리지 않을 것이라는 작은 암시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처음 빵야에게서 그 대답을 들었을 때,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말로 설명 못할 어떤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빵야의 꿈은 '악기'가 되는 것이었다. 극 중 총소리는 흔히 쓰이는 '탕'이나 '빵' 대신 '쾅'으로 표현되는데, 방아쇠가 당겨질 때마다 빵야 역의 배우가 직접 내뱉는다. 여러 번 반복되는 그 목소리의 울림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들은 악기라는 꿈은, 복합적인 감정을 이끌어 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터져 나오는 그 소리가 얼마나 끔찍했을까, 생각해보면 더욱 납득이 된다. 이 소리에 집중해보면 총의 입장에서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내는 악기 소리가 얼마나 부러웠을까 짐작할 수 있다.
'아무리 험한 시절 이야기가 나와도
그래도 선해. 여려. 맑아.'
나나는 그 꿈을 이루어주기 위해서 오케스트라를 조직한다. 빵야의 기억 속 사람들이 하나 둘 등장해 악기를 연주한다. 하모니카, 기타, 호른, 드럼... 그리고 빵야. 빵야는 그대로 총이다. 마지막 한 발을 쏘며 본연의 총 소리 그대로 악기로서 연주에 참여하고는 터져버린다. 조명 아래 환하게 웃으며 바스라지는 그 배우의 표정이 아직도 선하다. 꿈을 이루고 비로소 편안해진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총이라는 빵야의 정체성은 그를 전쟁의 가해자로부터 완전히 분리해 생각할 수 없게 한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자신의 존재를 괴로워했고, 자신이 남긴 상처를 외면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의 꿈은 어떤 용서나 과거 기억으로부터의 탈피라기보다 증언자로서 비로소 편안해질 자격, 혹은 작은 구원에 가까워 보였다.
기록과 증언, 그 이후의 삶
아직도 처음 공연을 본 날의 감정이 선명하다. 교회로 향하던 나나의 모습, 자기 없으면 우리 집은 누가 지키냐는 쇠붙이들의 탄식, 설화가 부르던 '오빠는 풍각쟁이' 노래 등. 극 곳곳의 흔적이 공연이 끝난 뒤에도 먹먹함을 주었다.
공연장을 나와서 그대로 30분을 내리 걸었다. 어딘가 모르게 씁쓸함이 남았다. 나나와 빵야 둘은 서로의 꿈을 안고 시작했고, 빵야는 나나의 도움으로 꿈을 이룬다. 그러면 나나는 어떻게 된걸까? 드라마화에 실패한 나나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이 극을 보는 내내 뮤지컬 '윌리엄과 윌리엄의 윌리엄들'이 떠올랐다. 극 중 인물 '헨리'가 가진 사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귀중한 마음이 나나에게서도 보였던 것 같다. 바로 이 마음을 가진 그녀이기에, 또다시 무언가를 트리거 삼아 삶을 이어나갈 나나의 모습이 그려진다. 빵야의 이야기를 끝까지 놓지 않으려 한 그 귀중한 마음만으로도, 나나는 다시 자기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갈 사람처럼 보였다.
과거를 기록하고 증언하는 일은, 결국 현재의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며 살아갈 것인지를 선택하는 일이다. 나나가 빵야의 이야기로 다시 펜을 들었듯, 결국 우리를 다시 살아가게 만드는 것도 어떤 이야기를 끝내 놓지 않으려는 마음인지도 모른다. 기록과 증언은 우리의 삶에 남기는 조용한 위로의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