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茶)를 마시는 취미가 생겼다.
준비는 간단하다. 물을 끓이고 티백을 넣는다. 티백은 오늘 하루의 맛과 향을 책임져주기 때문에 신중하게 고른다. 고민 끝에 고른 티백을 물에 넣는다. 투명한 물에 은은한 색감이 퍼진다. 모락거리는 김과 점점 더 퍼져나가는 물결을 보고 있으면 왠지 마음이 편해진다.
차를 좋아하게 되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치 나를 오랫동안 짝사랑하던 이에게 끝끝내 마음을 빼앗기는 듯이. 이제 와 생각해보면 내가 차를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알록달록 예쁜 포장과 모양새, 한 편의 스토리텔링 같은 차의 네이밍, 그리고 차가 가지고 있는 어떤 고요함의 이미지까지. 놓고 보니 내 취향의 집합체였다.

진한 향기에 이끌리다
그런데도 이렇게 뒤늦게 빠지게 된 이유는 아무래도 ‘맛’에 있었던 것 같다. 알다시피 차는 자극적인 맛과 거리가 있다. 주변에 차를 즐겨 마시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차의 은은하고 쌉쌀한 맛이 좋아 마신다고 말 하지만, 아무리 마셔도 물에 뭔갈 탄 듯한 밋밋한 맛에 정을 주기 힘들었다. 사람들은 이 싱거운 걸 왜 마시는 걸까? 내가 아직 어른 입맛이 덜된 것일까?
‘무화과 쇼콜라 블랙티’
얼마 전 마셨던 차의 이름이다. 기대를 잔뜩 할 수밖에 없는 네이밍에 홀린 듯 손이 갔다. 우러난 차에서 진한 과일 향과 초콜릿 향이 났다. 순간, 머릿속에서는 이건 차가 아니라 초콜릿 라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기대 속에 한 모금 머금었는데(사실 너무 뜨거워서 반 모금이라 해야 맞겠다), 착각 때문이었을까 유난히 싱겁게 느껴졌다.
실망과 동시에 흥미로움을 느꼈다. 향을 맡고 맛을 보는 과정을 몇 번 더 반복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향에서 이런 맛이 나는 게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티백을 더 오래 우려도 보았지만 만족할 만한 농도는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차의 진정한 힘은 맛보다 ‘향’에 있다는 걸 몸소 깨달은 시간이었다.
이렇게 진한 향에서 어떻게 이런 은은한 맛이 날 수 있을까? 이제 막 좋아지기 시작한 차에 정을 붙일 거리를 찾고 있던 나에게 이것은 크나큰 발견이었다. 마치 나만 빼고 모두가 이미 알고 있을 것 같은 발견이었지만, 이 사실이 무척 마음에 들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차의 무엇이 그렇게 강한 향을 만들어 내는 걸까? 향이 없는 차도 있을까? 어쩌면 직접 맛을 보는 건 부가적인 과정이 아닐까?
감각의 집합체로서의 차
일단 그냥 ‘차’ 하면 떠오르는 것들을 몽땅 적어봤다.
따뜻함 혹은 뜨거움, 꽃내음, 찻잔, 김, 천천히, 휴식, 비. 그리고 등등.
단어들을 적기 위해 차의 심상을 떠올리는 과정에서 곧 깨달을 수 있었다. ‘차’하면 연상되는 단어들에는 인간의 모든 감각이 담겨 있었다. 찻잔의 모양과 차의 색을 감상하는 시각,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과 찻잔을 쥔 손에서 전해지는 따뜻함을 느끼는 촉각, 꽃향기와 허브향, 흙향로 차의 분위기를 먼저 맡는 후각, 그리고 마지막으로 차의 맛을 느끼는 미각까지. 이 모든 심상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청각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비 오는 소리, 대화 소리, 찻잔끼리 부딪치는 소리처럼 차의 분위기를 이루는 모든 소리가 청각이 된다. 나는 이 중에 청각이 가장 좋다.
여기서 나는 첫 번째 답을 어렴풋이 생각해낼 수 있었다. 어쩌면 차의 향이 맛을 온전히 담지 않은 이유는, 아니 굳이 담지 않은 이유는 이런 복합적인 감각의 층위를 느끼게 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향과 맛이 완벽히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향으로 한 번, 맛으로 한 번 즐길 수 있다. 어찌 보면 너무나 뻔한 결론 같았지만, 누군가와 첫인사를 나눈 듯 차와 조금 친해질 수 있었다.

그렇다면 향이 없는 차도 있을까? 아쉽게도 완전히 향이 없는 차는 찾을 수 없었지만, 향의 정도 차이는 있었다. 과일 향이나 꽃 향의 경우 가장 강하고 눈에 띄는 향이라면, 풀향, 흙향 같은 경우엔 강도는 약하지만 묵직하게 남는다고 한다. 어쩌면 차의 향은 강하고 약함의 차이라기보다, 성격의 차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문득 ‘향기’의 정확한 뜻이 궁금해졌다. 지금까지 향을 입으로 맛보는 것과 구분하여 ‘코로 맡는 냄새’로 한정했는데, ‘여름의 향기’같이 더 넓은 의미로 이 단어가 쓰이기도 한다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차생활문화대전’에 따르면 향기(Flavor)란, ‘비강에서 받은 향 이외에 청량감’을 의미한다. 즉 차에서 말하는 향기는 단순히 코로 맡는 냄새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차를 마실 때의 포괄적인 느낌을 뜻한다. 차 문화에서는 ‘향’을 비교적 넓은 개념으로 쓰고 있었다. 향의 개념적 범위가 넓어져서 맛 또한 향의 일부가 되었다. 이해는 쉬웠지만 어쩐지 조금은 시시한 결론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예술을 마시는 차(茶)
조금 더 나아가 보자. 이렇게 다양한 향을 풍기고 복합적인 감각을 한꺼번에 쓰는 일, 어디서 더 본 적이 있지 않은가? 차를 마시는 것은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일과 똑 닮았다. 감상과 음미, 그리고 그 뒤에 남는 여운까지. 차를 한 입 머금었을 때 차의 색과 향, 분위기와 맛이 한꺼번에 몸 안으로 들어오는 느낌은 예술 작품이나 행위를 볼 때의 마음속 일렁임과 다르지 않았다. 차 문화를 종종 문화예술과 관련지어 이야기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차의 향은 맛을 기대하게 한다. 내가 무화과 쇼콜라 블랙티의 향에 반한 것처럼 말이다. 향을 맡고 그 맛을 보기까지의 간극 동안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기대 혹은 호기심은 차를 마시는 경험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작품을 마주했을 때의 첫인상(느낌)과 충분히 음미한 후의 감상은 또 다른 법인 것처럼 예술의 영역에서도 비슷한 원리가 작동한다. 어떤 작품은 꽃 향기가 나는 듯 다가오지만, 끝내 흙 향의 묵직함이 남기기도 한다. 두 번째 답은 ‘예술’이었다.
화려한 향기로 우리를 이끌고 묵직한 여운을 주는 차와 예술. 같은 선상에 놓고 보니 차와 예술이라는 말, 은근히 잘 어울린다. 차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번외로, 차를 내어주는 것이 연극(공연)에 가까운 행위라고 설명하는 연구도 있었다. 차를 만드는 과정에 주목하여, 의도적으로 구성된 행위를 일정한 장소, 시간의 흐름 속에서 손님에게 대접한다는 점에서 공연의 형태를 띤다. 그리고 그 손님이 과정을 감상하고 참여하는 것까지. 차를 만들고, 내어주고, 마시는 모든 과정이 공연과 닮았다는 사실 또한 내 심장을 뛰게 했다.
차향(茶香)이 남기고 간 자리
조그만 찻잔 안에 담긴 세계가 이렇게 깊을 줄이야. 차의 진한 향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만약 그날 마신 차에서 은은한 향과 진한 맛이 났다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향은 역시 사람을 어딘가로 이끄는 힘이 있나 보다.
우러난 색을 보고, 향을 맡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눈과 코로 먼저 맛을 본 뒤 입으로 머금어 음미하는 것. 이 섬세하다 못해 사려 깊은 과정만으로도 여러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마지막으로 이런 생각도 해 본다. 차를 마시는 것처럼 주변을 살피고 대하면 어떨까? 대상의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계속해서 같은 극장을 찾는 관객의 마음으로.
거창한 탐구는 아니었다. 하지만 커다란 비밀을 발견한 듯 어떤 한 대상의 흥미로운 지점을 알아보고 나름의 의미를 만들어 가는 일은, 그 대상을 더욱 소중하게 만든다. 생각으로만 흘려보낼 수 있었던 것들을 정리해냈다는 뿌듯함도 따른다. 빠릿빠릿하고 정신없는 삶 속에서 주변의 향과 맛에 잠시 집중하고 싶을 때, 차를 한 잔 마셔보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