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스스로 적잖이 충격을 받았던 일화가 하나 있다. 얼마 전까지도 보이지 않던 알록달록한 꽃들이 학교를 가득 뒤덮고 있는 모습을 보며, 어색한 느낌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학교에서 꽃을 왜 이렇게 많이 심었지?’라고. 그리고 한참 뒤에야 그것이 봄이 왔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머리로는 이미 봄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정작 그것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평소 일상에서 오는 기쁨의 중요성을 자주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나 자신부터 그런 순간들을 놓치며 살고 있다는 사실에 순간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타샤 튜더’의 삶은 부러움을 넘어 동경처럼 다가왔다. 그녀는 농가를 짓고, 정원을 가꾸며, 자연 속에서 동물, 그리고 아이들에 둘러싸여 지냈다. 그림을 그리며 홀로 4명의 아이들을 키운 그녀는, 칼데곳 상을 수상하면서 약 100여 권의 그림책을 남기기도 했다.
그녀는 책의 서문에서 ‘살면서 큰 기쁨을 안겨주는 것이 생기면 그게 무엇이든 그림으로 남겼다’라고 말한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행복을 수집한 그녀는, 이제 그림을 통해 그 따스함을 우리에게 넘겨준다.
‘타샤의 기쁨’은 어떤 행복한 인물이 나오는 이야기도 아니고, 그녀 자신의 삶을 풀어낸 에세이도 아니다. 하지만 자연과 동물, 아이들의 모습이 담긴 삽화와 그녀에게 기쁨을 주었다는 그 문장들을 보고 있으면, 그녀가 추구한 삶의 태도에 천천히 공감하게 된다. 이 책은 누군가의 소중한 행복의 순간들을 모아둔 책이었다.
책의 모든 페이지에는 타샤의 그림과 함께 그녀가 선택한 시구와 문장이 실려 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마크 트웨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문장에서부터, 출처 미상의 문장들까지 다양하다. 그림과 함께 그 문장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마음은 아주 고요한 평화로 가득 채워진다. 졸졸 흐르는 개울물, 염소와 함께 뛰노는 아이, 달빛이 비추는 호숫가처럼 그녀가 그림을 통해 간직하려 했던 기쁨은 거창한 순간이 아닌 일상의 작은 조각들이다.
고요함, 그리고 평화로움은 그녀의 평생 모아온 삶의 조각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단어였다.
모래 한 알에서 세상을 보고
야생화 한 송이에서 천국을 보려면,
그대의 손바닥에서 무한을 잡고
찰나에서 영원을 잡으라.
- 윌리엄 블레이크, <순수를 꿈꾸며>
그리고 무엇보다, 책 곳곳에 어떤 순수함이 배어 있었다. 어쩌면 타샤가 바랐던 삶은 ‘찰나를 영원의 기쁨으로 만드는’ 삶에 가까웠던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그녀는 두 눈으로 본 자연의 아름다움과 정원을 가꾸는 시간, 뛰노는 아이들과 동물들을 바라보며 느낀 순간의 감정을 그림으로 담아냄으로써 포착했다. 그것은 어떤 특별한 의미를 덧붙이려는 노력이기보다,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그대로 오래 간직하고 싶었던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 과정에서 기쁨을 느낀다고 하니, 어찌 순수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보고 느낀 것을 다른 것과의 섞임 없이 온전히 품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기에, 그녀의 이러한 태도에 동경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그린 삶은 마치 한 편의 동화 같았다. 영원히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세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차라리 대단한 사건으로부터 큰 행복을 발견하는 일이라면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의 행복은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작고 일상적인 순간들을 놓치지 않는 데서 시작되고 있었다. 당장 계절이 바뀌는 것도 느끼지도 못한 사실에 충격을 받았던 당시의 나에게 타샤의 삶은 너무 먼 이야기처럼 느껴져 막막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상한 위안도 남았다. 그녀의 기쁨이 어떤 특별한 재능이나 삶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단지 일상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일상을 대하는 방식을 조금씩 바꾸다 보면, 나 역시 그녀의 삶의 방식을 흉내라도 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녀가 정원을 가꾸었듯, 내가 사랑하는 것을 부지런히 일구어 나가고, 그것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키워간다면, 우리 역시 충분히 삶 속의 여러 기쁨을 발견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이 내 것이라 말할 수 있는 이,
그만이 행복하다.
진정으로 오늘을 살았기에
내일은 아무 가치 없으리라
말할 수 있는 이가 바로 행복한 사람.
- 존 드라이든, <호레이쇼처럼>
'오늘을 살아가는 감각' 역시 타샤에게서 닮고 싶은 부분 중 하나였다. 작은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붙잡아내는 일은 결국 현재를 살아내고 있을 때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타샤가 이 문장을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가끔은 정말로 순간을 온전히 감각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설명하기 어려운 충만한 감정이 마음 속에 차오르고, 그 순간이 잠깐 영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도 그런 순간들을 잊고 싶지 않아 일기에 기록해놓곤 한다. 하지만 1년을 모아도 손에 꼽을만큼 드문 감정이다. 무엇보다 그것은 재현할 수 없다. 오직 그 순간에만 존재했던 감각이기 때문이다.
'행복의 비밀은 바로 현재를 살기.' 몇 년째 내가 모토처럼 품고 있는, 고전 '키다리 아저씨'의 쥬디로부터 배운 삶의 태도이다. 그렇다면 타샤가 말하는 행복의 비밀은 무엇이었을까, 이 책은 명확한 답을 내려주는 책은 아니다. 대신 그녀의 삶과 그녀가 선택한 문장들 사이에서 조용히 그 답을 엿볼 수는 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꿈'이었다. '아직 멋진 꿈이 살아있다'라는 문장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아직'이라는 말이, 꿈은 최후의 최후까지 놓지 말아야 하는 것이며, 환상을 품듯 꿈을 쫓는 삶이 지속되어야함을 알려주는 듯 했다. '자연' 역시 타샤가 말하는 행복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계절은 늘 우리 곁에 머물며 주변을 물들인다. 꽃과 풀잎을 통해 계절의 속삭임을 느끼는 것, 그녀는 그 순간들에서 오는 기쁨을 그림으로 담아두었다. 삽화의 대부분 그림에 자연물이 있는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앞서 언급한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감각'까지.
가장 나다운 방식으로 꿈을 품고 살아가기. 타샤가 보여준 세계는 어쩌면 그 자체로, 기쁨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을 얼마나 충실히 바라보고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다고 조용히 이야기해주는 듯하다.